송이의 지우개 下

“벌써 내일이군!”
“그러게, 더 신경 써서 붓털을 빗어야겠어.”
“나는 물감이 쭉 잘 나오게 마사지 좀 해야겠다.”
도내 그림 대회를 앞두고 붓과 물감 친구들이 분주해요. 지우개 친구들도 소란스럽네요.
“모모야, 내일이 대회야. 너 오랫동안 지우는 일 쉬었잖아. 오늘이라도 스트레칭 해두는 게 어때? 몸이 부드러우면 훨씬 지우기 쉬울 거야.”
모모는 들은 체도 안 했어요.
‘내 생각하는 척하기는. 난 스트레칭 같은 거 안 해도 유연하다고!’
송이는 그림 대회 준비물을 챙기면서 모모를 필통에 넣었어요.
“이번에는 모모가 가네.”
“부럽다, 모모야. 잘 다녀와!”
친구들이 자기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모모는 그제야 기분이 나아졌어요.
‘그래, 송이는 나를 아껴둔 거였어!’

송이는 도내 어린이 그림 대회에서 열심히 밑그림을 그렸어요. 종이 위에 펼쳐진 꽃밭이 예뻐서 모모는 넋 놓고 송이의 그림을 감상했어요. 그런데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송이는 모모를 종이에 문질렀어요.
“아얏! 윽, 너무 아파.”
모모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부러질 것 같았어요. 모모가 몸에 힘을 꽉 주는 바람에 송이가 세게 문질러도 그림이 잘 지워지지 않았지요.
북-

이런! 도화지가 찢어지고 말았네요. 송이는 도화지를 새로 받아 다시 그림을 그렸어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 그림을 다 그리지 못했어요.
집에 온 송이는 가방에서 그림 도구를 꺼내 정리하더니 모모를 서랍에 던지듯 넣었어요.
“모모야, 괜찮니?”
“다친 데는 없어?”
동동이와 랑랑이가 모모를 일으켜 세웠어요.
“송이가… 송이가 나 때문에…. 으앙.”
모모의 울음소리를 듣고, 키가 엄청 작은 미술 연필, 몽당 아주머니가 왔어요.
“무슨 일이니?”
모모는 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았어요. 몽당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다 듣고 모모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어요.

“모모야, 아줌마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아줌마는 필통에서 가장 키가 큰 연필이었어. 그런데 송이가 그림 그리는 연습을 많이 해서 지금처럼 몽당연필이 되어버렸지. 몸이 깎일 때마다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
“맞아요. 아픈 건 정말 싫어요.”
“그런데 그림 그릴 때 연필이나 다른 도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림을 그릴 수 없겠죠.”
“그래, 맞아.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났어. 내가 아파도 그림을 그릴 때 진짜 기쁨을 누릴 수 있지. 그럼 지우개는 어떨까?”
모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연필들의 실수를 지워주는 것이 지우개란다. 지우개가 있어서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지울 때마다 몸이 울퉁불퉁해지고 멍이 들겠지만, 네가 있기에 연필들이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아프더라도 네가 만들어낼 멋진 작품들을 생각해 보렴. 힘이 불끈 날 거야. 그리고 모모, 너의 지우기 실력은 우리 연필들이 다 알고 있는걸?”
“하지만… 오늘처럼 송이의 그림을 망치면 어떡하죠?”
“아줌마도 처음에는 몸에 무조건 힘을 줘서 그림을 그렸단다. 나보다 색이 진한 연필이 없어서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거든. 그런 나 때문에 송이가 애를 많이 먹었지. 이후로는 몸에 힘을 빼고 송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녔어. 욕심을 버리니까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단다. 모모도 욕심을 조금만 버려보는 게 어때?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
“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모모가 몽당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했어요. 동동이와 랑랑이는 흐뭇하게 모모를 바라봤어요.
“동동아 랑랑아, 너희도 고마워. 내가 잘난 체해도 미워하지 않고 한결같이 대해줬잖아. 나는 지금까지 내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어. 내가 너무 자만했나 봐. 미안해.”
“아니야, 우리는 너와 함께 지우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쁜걸!”
모모의 입이 귀에 걸렸어요.
“그럼… 나 오늘부터 너희와 함께 운동해도 될까?”
“뭘 물어. 자, 지금부터 누가 더 서랍 안쪽에 묻은 얼룩을 많이 지우나 대결할까?”
“좋아, 봐주는 거 없다.”

송이의 지우개 친구들은 매일매일 바빠요. 송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 송이가 원하는 대로 연필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주지요. 서랍으로 돌아와서는 서랍 속 얼룩을 지우거나 그림 도구 친구들의 몸에 묻은 얼룩을 지워줘요.
모모랑 랑랑이는 그동안 열심히 지웠나 봐요. 세모 모양, 하트 모양의 몸이 동동이처럼 동글동글해졌네요. 요즘 송이의 책상 서랍 속은 지우개 친구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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