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의 지우개 上

송이의 책상 서랍 속에서 속닥속닥 이야기 소리가 들려요. 지우개 친구들이로군요. 무슨 일이 있는지 세모 모양 모모가 한껏 얼굴을 찡그리고 있네요.
“아, 진짜! 송이는 왜 이렇게 글씨를 잘 틀리는 거야?”
“모모야, 무슨 일이야?”
하트 모양 랑랑이가 서랍 안쪽 벽에 그려진 연필 자국을 지우다 말고 물었어요.
“아니, 송이가 자꾸 글씨를 틀리니까 내가 다 지워야 하잖아. 힘쓰다 보면 진땀이 다 난다고.”
“에이, 그게 원래 우리 일이잖아.”
동그란 동동이의 말에 랑랑이가 맞장구쳤어요.
“맞아, 그리고 송이는 분홍색인 너를 제일 좋아해서 네가 일을 많이 하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힘든 건 딱 질색이야.”
그때 서랍 구석에 있던 초록색 크레파스 초롱이가 지우개 친구들 쪽으로 데구루루 굴러왔어요.
“얘들아, 소식 들었어? 송이네 학교에서 그림 대회가 열린대!”
“우아, 그림 대회라고?”
“우리도 갈 수 있는 거야?”
동동이와 랑랑이가 설레서 이야기하는 동안 모모는 작게 속삭였어요.
“어차피 송이는 나를 데려갈 텐데. 다들 웬 기대람.”

그림 대회 전날, 송이가 책상 서랍을 열었어요.
“얘들아, 송이가 왔어! 그림 대회 준비물을 챙기려나 봐!”
랑랑이의 말에 다들 긴장했어요.
“으, 떨린다. 누가 그림 대회에 갈까?”
“당연히 나 아니겠어? 송이는 나를 제일 좋아하니까.”
모모가 팔짱을 끼고 어깨를 으쓱거렸어요.
“나도 그림 대회에 가고 싶은데… 몸을 부드럽게 만들려고 스트레칭도 많이 했는데….”
동동이가 풀이 죽어 말했어요.

송이는 지우개 통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다 새하얀 동동이를 골랐어요.
“송이가 날 집었어! 나 그림 대회 갈 수 있다, 야호!”
랑랑이는 다정한 목소리로 동동이에게 힘을 주었어요.
“동동아, 잘 다녀와!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송이는 동동이와 연필, 물감, 스케치북을 챙겨 가방에 넣었어요. 모모는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어요.
“치, 송이는 매일 나만 고생시키더니 오늘 같은 날은 왜 안 데려가는 거야? 흥! 나 없이는 절대 1등 못할걸.”

쓱. 쓱.
송이네 교실에 스케치하는 소리가 가득해요. 새하얀 아이들의 스케치북이 여러 그림들로 채워지고 있네요. 로봇을 좋아하는 민석이는 멋진 로봇을, 동물을 좋아하는 여진이는 강아지를, 꽃을 좋아하는 송이는 예쁜 꽃을 그렸어요. 그사이 하얗던 동동이는 까매지고, 동그랗던 몸은 울퉁불퉁해졌어요.
밑그림을 다 그린 송이는 물감을 풀어 색칠을 시작했어요. 동동이는 쉬면서 송이의 스케치북을 들여다봤어요. 연필로 그렸을 때와는 달리 스케치북은 알록달록하게 물들었어요. 동동이는 예쁜 그림을 그리는 데 자신도 함께해서 너무너무 기뻤어요.
“얘들아, 나 왔어!”
“새까매진 것 좀 봐. 힘들었지?”
랑랑이가 동동이를 반갑게 맞았어요.
“힘들긴. 재밌기만 했는걸.”
“그래, 얼굴이 밝아 보여. 송이는 어떤 그림을 그렸어?”
“꽃밭을 그렸어. 노란 꽃, 빨간 꽃, 분홍 꽃. 정말 정말 예뻤어!”
옆에서 대화를 듣던 모모가 슬며시 물었어요.
“송이는 몇 등 했어?”
“3등!”
“뭐야, 겨우 3등?”
모모와 달리 동동이와 랑랑이는 신이 났네요.
“전교에서 3등이면 엄청 잘한 거지.”
“이번 그림 대회 3등까지의 학생들은 도내 어린이 그림 대회에도 출전한대.”
“그럼 더 큰 대회에 송이가 나가는 거야?”
‘송이가 날 데려갔으면 1등 했을 텐데.’
모모의 쀼루퉁한 표정을 보고 랑랑이가 말했어요.
“모모야, 이번에 송이가 안 데려가서 속상했지? 다음에는 송이랑 같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야.”
“하나도 안 속상하거든? 그런 말 안 해도 어차피 다음에 송이가 날 데려갈 텐데, 뭐. 너희들이나 괜한 기대하지 마!”
모모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지우개 통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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