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없는 하루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 조명을 받으며 별이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고 있네요. 흰색 검은색 건반 위로 이리저리 춤출 때마다 아름다운 하모니가 들려요.
피아노 학원 친구들은 별이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감탄했어요. 그때, 학원 선생님이 박수를 두 번 치며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집중시켰어요.
“얘들아, 한 달 뒤에 학원에서 가족들을 초대해서 연주회를 열 거야. 열심히 연습해서 멋진 모습 보여주자!”
“네!”
집에 돌아온 별이는 청소하는 엄마를 도와 설거지를 했어요.
쨍그랑!
별이가 오른손 엄지를 움켜쥐었어요.
“별아, 괜찮니?”
“네, 그냥 살짝 베었어요.”
엄마는 별이의 엄지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어요. 그날 저녁, 별이는 엄지를 조심스레 감싸고 잠이 들었지요.
그런데 별이의 손가락들이 소란스러워졌어요. 집게손가락이 흥분된 목소리로 다른 손가락들을 불렀어요.
“다들 아까 들었지? 다음 달에 별이네 학원에서 열린다는 연주회 말이야.”
“별이는 어려운 곡을 준비하겠지? 별이는 피아노를 잘 치니까! 그런데 너 나갈 수 있어?”
가운뎃손가락이 엄지에게 말했어요.
“응! 나가야지. 빨리 나을 거야.”
“원래 작고 뚱뚱한데 밴드까지 붙이니까 더 뚱뚱해 보인다. 그 몸으로 뭘 할 수 있겠어?”
엄지 옆에 있던 집게손가락이 비꼬며 말했어요.
“넌 항상 내가 키 작고 뚱뚱하다고 무시하더라?”
“그럼 작은 걸 작다 하고, 뚱뚱한 걸 뚱뚱하다고 하지 뭐라고 해? 이번에는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그냥 빠져.”
집게손가락의 말에 끝에 있던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도 엄지를 약 올렸어요.
“엄지는 키가 작대요~ 뚱뚱하대요~”
엄지는 울상이 되어서 밴드 속으로 움츠러들었어요.

“별아, 일어나자. 학교 가야지.”
별이는 엄마 목소리를 듣고 일어났어요. 세수를 하려는데 비누가 잘 잡히지 않았어요. 평소 같으면 엄지가 몸을 둥글게 말아 비누를 집었을 텐데, 엄지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별이는 네 손가락으로 비누를 비벼서 거품을 내고 어설프게 얼굴을 닦았어요.
별이가 아침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어요. 이번에는 젓가락질이 잘 되지 않네요.
“손이 많이 아픈가 보구나. 어디 다시 보자.”
엄마는 별이의 엄지에 붙인 밴드를 떼어 상처를 봤어요.
“이런, 상처가 더 벌어졌네. 엄마가 붕대 감아줄게. 우선 포크로 밥 먹자.”

손가락들은 경악했어요.
“포크라고? 말도 안 돼!”
“세상에. 열 살이나 돼서 포크를 쓰다니.”
“어우, 자존심 상해. 차라리 왼손을 쓰든가.”
“엄지야, 너 어떻게 좀 해 봐.”
그러나 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결국 별이가 포크를 집어 드네요.
학교에서도 손가락들은 난리였어요. 연필을 제대로 잡을 수 없어서 별이가 이상하게 연필을 쥐었거든요.
“야, 집게손가락! 글씨 좀 더 또박또박 쓸 수 없어? 하나도 못 알아보겠다.”
“약손가락 네가 해보든가.”
“너희 그만해. 어차피 다음 수업은 미술 시간이니까 글씨 쓸 일은 없을 거야.”
가운뎃손가락의 말에 잠시 싸움이 멈추는 듯했지만 더 큰일이 일어났어요.
“여러분, 오늘은 색지를 오려서 예쁜 꽃밭을 만들 거예요.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잘 따라 하세요.”
“으, 가위를 제대로 못 잡겠는걸. 잘 자를 수 있을까? 이러다 나까지 다치는 거 아니야?”
가운뎃손가락이 잔뜩 긴장했어요. 힘 조절이 안 되니 계속 울퉁불퉁한 꽃만 만들어졌어요.
다른 손가락들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엄지는 여전히 붕대 속에 온몸을 숨기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학교가 끝난 뒤, 별이는 친구들과 피아노 학원으로 갔어요. 선생님이 새로 뽑은 악보를 나눠줬어요. 한눈에 봐도 음표가 많아 어지러울 정도였죠. 연습을 많이 해야 했지만 별이는 악보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엄지가 아파 피아노를 제대로 칠 수 없었거든요.
그제야 손가락들은 작고 뚱뚱하다고 놀린 엄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느끼게 되었어요. 별이가 잠든 사이 손가락들이 붕대에 감긴 엄지를 향해 사과했어요.
“엄지야, 미안. 나는 키가 제일 크다고 으스대면서 너를 놀려왔어.”
가운뎃손가락이 먼저 사과하자 새끼손가락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젓가락질할 때도, 연필을 잡을 때도, 컵을 들 때도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 네가 힘을 주면 나는 아래에서 거들 뿐이었어.”
약손가락도 그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마음을 털어놓았어요.
“나야말로 하는 일도 별로 없고, 키도 크지 않아. 하지만 너희들을 따라 다니면서 피아노 건반에 올라 화음을 넣을 때마다 엄청 행복했어. 이제 싸우지 않고, 예전처럼 너랑 같이 즐겁게 피아노를 치고 싶어.”
엄지는 말이 없었어요. 붕대에 칭칭 감겨 표정도 볼 수 없었죠. 손가락들은 애가 탔지만 그저 빨리 엄지가 낫기를 기다렸어요.
다음 날, 별이의 엄마는 엄지에 감긴 붕대를 풀어줬어요.
“많이 아물었네. 오늘은 붕대 안 해도 되겠다.”
엄지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손가락들이 기뻐했어요. 엄지는 얼굴이 붉어져서 말했어요.
“뭐, 뭐야. 나 놀릴 때는 언제고.”
“어제 하루 종일 너 없이 지내려니까 정말 불편하더라. 네가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지 알았어.”
“사실… 나도 어제 혼자 심심했어. 너희랑 같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지. 붕대 속이 워낙 답답해서 말야. 먼저 사과해 줘서 정말 고마워.”

연주회 날, 별이가 무대 위에 올랐어요. 긴장되는지 계속 손가락을 푸네요. 손가락들은 서로를 응원했어요.
“얘들아! 잘할 수 있지?”
“그럼. 오늘 컨디션 최고야.”
“자, 그럼 모두 파이팅!”
♬♪~♩
어느새 손가락들이 하나 되어 나비처럼 춤을 추고 있어요. 흰색 검은색 건반 위로 이리저리 날아다닐 때마다 환상의 하모니가 들려요. 연주가 끝나자 가족과 친구들이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어요. 손가락들도 서로를 칭찬했어요.
“우리 호흡이 딱딱 맞아서 화음이 엄청 아름다웠어.”
“오늘 진짜 건반 위를 나는 기분이었다니까.”
“역시 우리는 함께해야 돼.”
그리고 손가락들이 다 같이 외쳤어요.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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