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이끌어준 새노래


정확히 1년 전, 하계 학생캠프 기간이었습니다. 중1 때부터 의무적으로 참가했던 터라 마음이 내키는 날만 띄엄띄엄 시온에 나갔습니다.

별다를 바 없던 어느 날, 시온에서 처음 듣는 피아노 소리가 들렸습니다. 새로 나온 새노래였습니다. 학생캠프 기간에 새노래 페스티벌이 열려 학생들이 성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노래는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지만 믿음이 없어서인지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들은 새노래는 경쾌하면서도 웅장했고, 듣는 순간 가슴이 떨릴 정도로 끌렸습니다. 피아노를 잘 치지는 못해도 꼭 한번 제 손으로 새노래를 연주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후로 학생부실에서 매일같이 피아노로 새노래를 쳤습니다. 하도 많이 쳐서 나중에는 새노래 악보를 다 외웠지요. 제가 새노래를 치고 있으면 학생들이 몰려와 새노래를 불렀습니다. 형제자매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새노래를 연주하는 만큼 시온에 있는 시간도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성경 말씀도 살피게 되었습니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진리는 새 언약 유월절입니다. 만약 저에게 살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마지막까지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바로 우리인 것입니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장 15절)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과 멀어진 저에게 계속 손을 내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동안은 단지 새노래가 좋아서 모임에 나가는 수준이었다면 성경 공부도 더 열심히, 행실도 더 바르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자녀가 되고 싶었습니다.

문득 어릴 적부터 시온에서 형, 동생 하며 지냈던 형제님들이 떠올랐습니다. 저 혼자 변화되고 복 받는 것보다 형제님들과 다 같이 복 받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린 후, 형제님들에게 학생부 활동을 열심히 해보자고 연락했습니다. 많이 형제님이 선뜻 시온으로 나와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나중에는 소원했던 학생부 성가도 함께 섰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뭘 해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저는 컴퓨터와 휴대폰에 있는 게임을 모조리 지우고 진짜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결심대로, 올해 고등학생이 된 저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전에는 화를 잘 내고 게임하느라 거짓말을 자주 해서 부모님과 다투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집에 오면 게임 대신 새노래를 연주하고 부모님과 시온의 향기를 나누며 웃고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는 당당하게 우리 교회를 소개했습니다. 영국 여왕상과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고, 성경의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라고 설명하자 친구들은 “대단한 교회”라고 호응해 주었습니다. 조만간 교회에 같이 다닐 친구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생활은 중학생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바쁩니다. 학교 공부도 늘고, 시온에서도 학생부 동생들 챙기랴 교회 실내악단에서 플루트 연주하랴 할 일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버겁게 느껴질 때면 좋아하는 새노래를 연주하면서 마음을 달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엄청난 축복을 생각합니다. 그럼 제게 주어진 일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모임 한번 간다고 큰 변화가 있을까?’

믿음이 없을 때 했던 생각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온에 와서 한 말씀이라도 듣고, 조금이라도 청소 봉사 하는 잠깐의 순간들이 하나님께서 저를 차근차근 변화시켜 주시려는 과정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날 시온에 가지 않았다면, 새노래를 듣지 못했다면 지금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처럼 방황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꼭 새노래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깨달음의 기회가 옵니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일단 시온에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시온에 있는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시간 같아도 결코 스치고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많은 학생들이 시온에 모이기를 기도합니다. 또 학생들이 시온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새노래가 가득한 은혜로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터닝포인트는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 옵니다. 그때가 ‘지금’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그 기회를 바로 지금,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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