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빠의 직장 문제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중학교를 다녀 어느 정도 영어 회화가 가능했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마리오를 부탁했고, 신기하게 마리오도 저와 같이 앉고 싶다고 해서 짝꿍이 되었습니다.
마리오가 한국에서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저도 외국에 있을 때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정말 답답했습니다. 살기 위해 언어를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리오가 한국어를 알아듣는다 해도 수업이 한국어로만 진행되고, 교과서 내용은 전문 지식이라 힘들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수업 내용을 영어로 필기해 주거나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바로바로 통역해서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마리오가 자신과 다른 외국인들 사이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낄 때면 중학교 시절 제 이야기를 해주며 위로해 줬습니다.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이니 한국에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라고요.
마리오는 낯을 많이 가렸지만 저와는 같이 지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 금방 친해졌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자주 만나 놀았는데, 예배가 있는 날에는 같이 교회에 갔습니다.
마리오는 가족처럼 따뜻하게 챙겨주는 시온의 식구들을 좋아했습니다. 핀란드에 계신 마리오의 부모님도 교회를 다니라고 흔쾌히 허락하셨지요. 하지만 정작 마리오가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말씀을 알려주면 집중하지 못하고 듣고도 모른 척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사이 마리오와 저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까워지는 만큼 충돌하는 일이 잦아진 것입니다. 문화 차이이기도 했고, 성격 차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3학년으로 올라가고 마리오는 2학년에 남아 한 학기를 더 보내게 되면서 사이는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학생의 시온의 향기를 들었습니다. 100일의 기다림 끝에 친구를 열매 맺은 이야기였습니다. 또 당회에서 친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고민하는 한 자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리오가 생각났습니다.
돌이켜보면 마리오와 사이가 틀어진 것은 제 잘못이 컸습니다. 마리오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이건 이렇게 하면 안되고, 저건 이렇게 고쳐야 한다는 식으로 자주 질책했으니까요. 마리오는 먼 유럽 핀란드에서 대한민국으로, 많은 지역 중에서도 대구로, 그것도 제가 다니는 학교, 같은 반으로 왔습니다. 이 귀한 인연을 제가 너무 쉽게 여긴 것입니다. 마리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기도 주간을 맞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리오와 화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마리오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리고 오순절 날, 마리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동안 생각해 봤는데 내가 너무 경솔했어. 널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해.」
기다리던 답장이 왔습니다.
「나를 용서해 준 거야? 우리 이제 괜찮은 거지? 사실 나도 네가 많이 그리웠어.」
화해한 후 마리오가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말을 먼저 꺼냈습니다. 교회 주위를 지날 때면 들어가 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교회에 온 마리오는 전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성경 공부를 제대로 시작해 보겠다며 “네가 직접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콕 집어 말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마리오에게 영어나 핀란드어 더빙 진리 영상만 보여줬을 뿐 성경으로 말씀을 알려준 적이 없었습니다. 성경 용어가 일상에서 쓰는 영어와 달라서 어려웠고, 외국인인 마리오가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열심히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밤늦게까지 영어로 진리 발표를 공부하고, 하고 싶은 말을 노트에 정리해서 계속 읽으며 짬짬이 연습했습니다. 막상 마리오에게 말씀을 알려줄 때는 흥분해서 문장이 엉키고 곧잘 발음이 뭉개졌습니다. 그러나 마리오는 웃으며 끝까지 잘 들어주었습니다. 제가 자기 성경 선생님이라면서요.
말씀을 부정하기만 했던 마리오는 제가 묻는 질문마다 “Yes”를 외쳤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고 왜 고민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마리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런 저에게 마리오가 말했습니다.
“진짜 기뻐해야 할 사람은 나야. 성경 말씀도 흥미롭고,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 같아서 나에게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오는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 핀란드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오는 핀란드로 돌아가기 전, 자신이 제 첫 열매라서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마리오가 교회에 처음 와서 식구들에게 저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에 이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 첫 열매가 핀란드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마리오가 저를 핀란드로 초대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같이 좋은 추억을 만들자고요.
핀란드에서 보낸 여름방학은 최고였습니다. 당연 핀란드 시온에도 찾아갔습니다. 핀란드 시온은 마리오 집에서 차로 45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시온으로 우리를 데리러 온 마리오의 언니에게 마리오는 시온에서 공부한 성경 말씀을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마리오가 말하길 그날 성경을 배우면서 자신의 눈이 뜨이는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니에게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펴서 언니에게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전했습니다. 언니는 그동안 마리오에게 말로만 들었던 진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는 교회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오의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도 이미 마리오가 교회 자랑을 했던 터라 교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습니다.
핀란드에 다녀오고 나서 진로를 다시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래 오빠가 있는 프랑스에 가서 대학을 진학할 계획이었는데 핀란드도 고심 중입니다. 드넓은 핀란드 땅에 하나뿐인 시온 그리고 마리오와 마리오의 가족들이 계속 생각나서입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해보고 싶습니다. 반드시 핀란드로 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제가 어디로 가든 그곳에서 마리오 같은 영혼을 꼭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올라와 여러 친구들에게 말씀을 전해도 별 반응이 없어 자괴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오를 통해 자괴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또 처음으로 성경 말씀을 직접 가르치면서 저절로 눈물이 맺히고 목이 메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마리오는 정말 소중한 친구이자 자매입니다. 인종과 문화, 언어가 달라서 서로를 100%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하늘 가족이 되었지요. 나중에 천사의 모습으로, 하나의 언어를 쓰는 천국에서 마리오를 만나면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고 더 즐겁게 놀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꼭 천국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