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춘기의 10대를 비유하는 말들이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처럼 통제 불능, 어디로 튈지 예측 불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대략 난감이다. 감히 그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전쟁을 불사할 기세로 덤빈다(오죽하면 이들이 무서워서 전쟁을 못 일으킨다는 말이 있을까).
10대에 들어서면 2차 성징이 나타나 몸이 변한다. 그리고 뇌도 변하기 시작한다. 합리적인 행동과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가면서 이성적인 행동이 어려워진다. 완성된 뇌라고는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뿐이라 감정만 펄떡펄떡 살아 날뛴다. 버럭 화내거나 상식 밖의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이유다.
사춘기는 자신도, 보는 사람도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잘만 거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심은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자세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심으로 승화될 수 있다.
역사의 거인(巨人), 학생
한국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독립운동이다. 애국지사들의 목숨 건 독립운동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독립운동이 3·1 운동,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이다. 독립운동은 앞서 민중을 선도한 선각자의 역할도 컸지만 매번 주역이 되어 독립운동을 이끈 이들이 있다. 바로 ‘학생’이다.1919년 3월 1일, 서울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 후 일제히 외쳤던 “대한 독립 만세”. 이 외침이 전국으로 퍼지는 데 학생의 역할이 컸다. 학생들은 경성(서울) 시내를 돌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일제가 경성 지역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자 이를 기회 삼아 지방으로 내려가 제2, 3의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이후 일제의 철저한 감시 아래 침체됐던 항일 운동은 1926년 다시 타올랐다. 6월 10일, 순종의 인산(因山·태상황, 황제, 황태자, 황태손과 그 비들의 장례) 때 인파 속에서 미리 계획한 대로 학생 1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했다. 곧 저지당했지만 이어 300명의 학생이 외쳤고, 만세의 울림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1929년 11월 3일에는 광주 학생들이 일어났다. 기차로 통학하던 한일 중학생 사이의 싸움이 도화선이 되어 2000여 학생이 궐기해 항일 투쟁을 한 것이다. 이 투쟁은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전개됐는데, 총 194개 학교에서 5만 4000여 학생이 참여했다. 3·1 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투쟁이었다. 항일 학생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53년 국회는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했고, 2006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이름이 바뀌었다.
누군가는 학생을 가리켜 ‘역사의 거인’이라고 말했다. 공포와 암울이 지배하던 시대, 학생은 어른 뒤에 숨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부조리한 현실에 꺾이지 않는 신념으로 앞장선 거인이었다.
평범한 10대들의 용기 있는 발걸음
1865년, 미국 링컨 대통령이 흑인노예제도를 폐지했다. 하지만 남부 지역은 100년이 지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남부 도시 중에서도 앨라배마주 버밍햄의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학교, 버스, 화장실, 예배당 등 모든 시설이 백인과 흑인으로 엄격히 분리 사용됐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폭탄 테러의 표적이 되었고, 백인뿐인 경찰은 테러범을 잡지 않았다.버밍햄 흑인민권운동 지도부는 황당한 시위를 계획했다. 백인만 출입 가능한 식당에 앉아 음식 주문하기, 백인 상점에서 물건 사기 등 흑백분리정책을 어기되 어떠한 경우도 폭력을 쓰지 말고 순순히 체포당하는 것. 버밍햄의 교도소를 꽉 채워 행정을 마비시키고 미국 전역에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알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무자비한 폭력과 물대포까지 쏘는 경찰이 두려웠고, 직장 문제와 가족의 생계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계획이 무산되려던 때, 한 무리가 나섰다. 어린 학생들이었다.
“감옥에 가고 싶어요.”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아이들을 감옥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의지가 확고해 지도부는 긴 논의 끝에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체제를 아이들 스스로 무너뜨리도록’ 그 뜻을 받아들였다.
1963년 5월 2일, 수백 명의 학생이 흑백분리정책에 맞섰다. 경찰이 출동하자 학생들은 소풍을 나온 양 웃으며 붙잡혔다. 경찰은 학생들을 연행하기 위해 스쿨버스까지 동원해야 했다. 다음 날은 학생 2000여 명이 시위에 가담했다. 감옥은 이미 포화 상태. 헛간과 외양간이 임시 수용소가 됐다.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학생들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소극적이던 어른들도 생각을 바꾸고 시위에 동참했다. 나중에는 미국 연방 정부가 중재에 나섰고, 전 세계가 주목했다. 마침내 버밍햄 당국은 인종분리 시설을 철거하고 흑인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미국 전역에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제정됐고, 1965년에는 유색인종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투표권리법이 제정된 것이다.
수백 년간 받은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소년 소녀들은 물대포가 쏟아지고 사나운 경찰견이 달려드는 곳으로 용감하게 나아갔다. 흔히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은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멋모를 것 같은 평범한 아이들이 ‘제대로’ 사고 치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0대의 힘
6개 점으로 된 점자, 아이스바, 텔레비전.우리 일상에 당연하게 사용되는 이것들은 한때 일상을 변화시킨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6개의 점으로 된 점자는 1824년 루이 브라유(15세)가, 아이스바는 1905년 프랭크 에퍼슨(11세)이, 전자식 텔레비전은 1921년 필로 테일러 판스워스(14세)가 처음 구상했다. 개발자가 다 10대다.
아이스바는 막대를 꽂아놨던 음료가 밤사이 얼어 우연히 발명됐지만, 점자는 시각장애인 소년 브라유가 시각장애인도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을 열기 위해 3년간 연구해서 개발한 문자다. 극소수의 사람만 알았다가 그가 죽은 후 1932년에 정식 기호로 인정받았다. 텔레비전의 발명에는 우여곡절이 많다. 처음 ‘영상 재생 장치’라는 이름으로 구상도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당시 기술력으로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판스워스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였다.
오늘날에도 인류에 기여하는 10대들의 발명은 계속된다. 터키의 14세 소녀 엘리프 빌긴은 플라스틱 쓰레기 산을 보고, 자연분해 되는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2년 동안 연구해 바나나 껍질에서 바이오 플라스틱 제조물 추출에 성공했다. 네덜란드의 보얀 슬랫은 16세에 수영 중 바닷속 쓰레기를 보고 해류를 이용한 바다 쓰레기 청소법을 고안했다.
의학계의 난제라는 암. 그중 췌장암은 조기 진단이 어려워 사망률이 95%다. 미국의 잭 안드라카는 15세에 가족처럼 지내던 이웃집 아저씨가 췌장암으로 죽자 췌장암에 대해 검색했다. 그리고 오래되고 비싼, 기존의 췌장암 진단 방식보다 나은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독학하며 실험에 몰두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연구였다. 그러나 놀라운 집념으로 7개월 만에 췌장암 진단 센서를 만들어냈다. 검사 시간 5분, 비용 3센트(약 35원)면 충분했다. 기존 방식보다 168배 빠르고, 2만 6000배 저렴하고, 400배 더 민감해 정확도는 거의 100%였다. 세계 최초 췌장암 조기 진단 기술에 전 세계 의학계는 뒤집혔다. 청년이 된 그는 말한다.
“저는 그때 열다섯 살에 불과했어요. 췌장이 뭔지도 몰랐고 암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었죠. 하지만, 그랬기에 선입견이 없었고 무엇이든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여러분이라고 안될 이유가 뭐 있나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당신도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아직 틀이 갖춰지지 않은 10대. 그래서 기존의 틀도 쉽게 깰 수 있다. 모두가 ‘안된다’고 비웃어도 ‘왜 안돼?’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아무렇지 않게 엉뚱한 도전을 한다. 모를 일이다. 그 엉뚱함이 어떤 위대한 걸작을 낳을지.
옛날에 한 어린 소년이 있었다. 심부름 차 전쟁터에 갔다가 적군 대장이 하는 말을 듣고 열이 올라서 자기가 그와 싸우겠다고 나섰다. 백전노장들도 선뜻 나서지 못한 대치 상황이었다. 형들은 혼냈고 왕도 말렸다. 그래도 끝끝내 싸워야겠다고 우기고 우겨서 창도 방패도 없이 적군 대장 앞에 갔다. 결국 그를 물리쳤다.
소년 다윗의 이야기다. 언뜻 보면 다윗은 무모하기 짝이 없고 치기 가득한 어린애였다. 하지만 무모함만 있던 것이 아니다. 중심에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적을 가만히 볼 수 없었고, 무서웠겠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갔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적과 같은 승리를 주셨고, 다윗은 지금까지 영웅이라 불린다. 문제아와 영웅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 ‘감정에 치우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나섰는가’, ‘신념을 갖고 옳은 일에 나섰는가’ 하는 작은 차이가 상반된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10대의 넘치는 에너지는 세상을 보다 위대하게 변화시켰다. 10대는 어리지만 질풍노도의 속도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큰 힘이 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10대라면, 그 능력은 무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