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2가 되고, 식구들을 챙기게 됐다. 처음에는 식구들의 본이 되도록 더 열심히 발표하고 식구들을 섬기며, 맡은 본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점점 버거워졌다. 아무리 참고 노력해도 식구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했다.
때마침 사춘기가 찾아왔다. 모든 것이 삐뚤게 보이고, 안 좋게 들렸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시하고 반항하고 짜증 냈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집중이 안됐고, 학교 끝나면 집에 가방을 던져 놓고 친구들과 노느라 공부는 뒷전이 됐다. 학교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시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배는 빠지지 않았지만 빠듯하게 시간 맞춰 교회에 가서 그냥 앉아 있다가 집에 가는 식이었다. 갈수록 모임에 나가는 횟수도 줄었다. 이런 내 모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하나님과 멀어져갔다.
엄마와의 사이도 나빠졌다. 예전에는 엄마와 대화도 많이 나누고 아주 친했는데 사춘기가 오고 나서는 집에 와도 방으로 쏙 들어가 휴대폰만 만졌다. 엄마가 뭐라 하면 간섭처럼 느껴져서 엄마가 하는 말마다 무조건 “싫다”며 툭툭거렸다. 엄마와 싸우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나한테 관심을 갖지 말라”는 심한 말을 하기도 했다. 정말 ‘중2병’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요즘 무슨 일 있니?”
진지하게 묻는 엄마에게 나는 그동안 힘들었던 일과 속상했던 마음을 다 털어놓았다.
“네가 사춘기라 몇 번은 이해해 줄 수 있어도 계속 그러면 안 돼. 학생 모임도 그렇고.”
나를 달래주기보다 훈계하는 엄마에게 너무 서운했다.
“엄마가 힘든 거 말하라고 해서 했잖아. 근데 그렇게 말하는 게 다야?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고!”
마음이 상한 나는 엄마가 하는 말에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는 갑자기 일어나 집안일을 하더니 잠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생각해 보면 네 잘못만은 아니야. 요즘 엄마가 바쁘다는 이유로 너한테 신경을 못 썼어. 그래서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눈물을 보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나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엄마한테 투정부리고 짜증 냈던 일들이 너무 미안했다. 엄마를 안고 함께 울었다. 나는 학교생활도 믿음 생활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고, 앞으로 시온에 잘 가겠다고 엄마와 약속했다, 내 영혼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어긋났던 나의 일상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늘 어머니에 관한 설교를 들을 때였다. 그날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나 하나로도 가슴 아파하는데 하늘 어머니께서는 나와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자녀들로 인해 얼마나 많이 애태우셨을까.
사실 그때까지 나는 엄마와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하나님의 일에 열심 내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온으로 가기 시작했다.
어느 학생 모임 날, 소울에 글을 올려보자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지난날을 반성하며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나니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시간 맞춰 가던 학생 모임에 일찍 나갔다. 식구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려준 식구들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그간 식구들에게 섭섭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지금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좀 더 성숙해진 느낌이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해도 무턱대고 화내기보다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 마음을 안다고 해야 하나. 시온에서 기운이 없어 보이는 식구가 있으면 웃겨주고, 그러다 식구가 웃으면 나도 기분이 좋다. 문득 날 달래주느라 마음고생 했을 식구들이 생각났다. 지금 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이제 내가 받은 사랑을 식구들에게 베풀고 싶다.
엄마와는 더 끈끈한 사이가 됐다. 이야기도 더 많이 하고, 설거지나 빨래를 도와드리기도 한다. 난생처음 엄마한테 편지도 썼다. 엄마를 힘들게 했던 일이 미안하고, 엄마에게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해본 적 없던 말도 썼다.
「엄마,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사랑해.」
편지를 받은 엄마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 딸. 엄마가 더 사랑해.”
나에게는 절대 사춘기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시온의 학생들 중에는 현재 사춘기를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학생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자기 자신도 어떻게 할지 모른다. 다른 학생들은 나처럼 하나님을 잊으면서까지 방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이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곁에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과 가족 그리고 하늘 가족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