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

초등학생 때부터 게임에 푹 빠져 살다 중학생 때는 반에서 게임을 제일 잘하는 아이로 통했습니다. 눈뜨면 게임, 밥 먹고 게임, 수업 마치고 게임이 제 일상이었습니다. 예절은 존댓말밖에 몰랐고, 성적은 밑바닥에, 교회는 그저 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몸만 왔다 가는 곳이었습니다.
게임 중독이 절정에 치닫던 중2를 지나 중3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게임을 즐기던 친구 형제님이 이상했습니다. 게임은 하지 않고 계속 교회에 가는 겁니다. 일단은 저도 학교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을 때라 친구 형제님을 따라 학생부 활동에 하나둘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딱히 즐겁다거나 믿음이 자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제 머릿속은 게임으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자전거로 인천에서 서울까지 다녀와보라고 하셨습니다. 게임 외에 제가 그나마 좋아하는 자전거 타기로 게임 시간을 줄이려는 엄마의 대책이었습니다. 엄마 말대로 해보니 힘들기는 했지만 해볼 만했습니다. 오히려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이는 게임보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재활치료를 하는 것처럼 자전거로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게임하는 시간이 살짝살짝 줄다가 확 줄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정할 시기가 왔습니다. 진학 상담에서 제 성적으로는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하면 되지!’
자전거 탈 때도 그랬습니다. 제가 자전거로 먼 지역을 간다고 하면 친구들은 못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당당하게 완주하고 왔지요. 고등학교 진학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단정 짓기 싫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원하는 곳을 가라는 엄마의 조언도 들었기에 마음을 다잡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기초조차 모르던 제가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과목은 100점을 맞을 만큼 성적을 크게 올렸습니다. 스스로도 놀랐고, 친구들도 저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하게 봤습니다. 일요일에는 늦잠을 뒤로하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 봉사상까지 받았습니다. 마지막 고입 면접도 순탄하게 마무리되어 원하던 고등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역시, 하면 불가능한 일은 없었습니다.
특별한 계기를 콕 집을 수 없지만 이후로 아주 서서히 믿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각종 행사에 관심이 생기더니 예배 날에는 단정히 옷을 갖춰 입었습니다. 게임 생각이 줄어 머리가 맑아져서인지 지루하기만 하던 설교 말씀이 조금씩 귀에 들어왔고, 형제자매님들에게 쳤던 마음의 벽을 치워버리고 모두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부끄럽지만 진리 발표는 엄마가 햄버거를 사주겠다는 말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발표를 하다 보니 말씀이 너무 재미있고,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무엇보다 저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 같던 성경이 제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새 언약 유월절을 세우신 것… 전부 저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도 저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나한테 왜 알려주지 않았냐”는 원망을 듣지 않게, 곧바로 모든 친구에게 진리를 전했습니다. 듣지 않으려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주었습니다. 전도 또한 전하려는 열정과 실천만 있다면 거뜬히 해낼 일이었습니다. 바뀐 제 모습에 엄마는 팔짝팔짝 뛰며 기뻐하셨고, 주위 분들은 “시작은 미약했으나 지금은 창대하다”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창대’라는 제 이름이 드디어 빛을 보는 순간이었지요.
반 전체가 제 신앙을 알고 나서는 고등학교 생활 내내 행실에 신경 썼습니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게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게임을 완전히 놓지 못해 괴로웠습니다. 게임을 안 해야지 하면서 돌아서면 게임하고, 죄책감에 회개 기도 하는 날이 반복됐습니다. 대체 방안으로 게임이 하고 싶어지면 자전거를 탔습니다. 오랜 노력 끝에 게임을 끊을 수 있었지요. 게임에 중학교 시절을 바쳤던 것을 생각하면 기적 같기만 합니다.
친구들에게는 비속어 사용을 자제하고 친절하게 말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제 말투가 의도치 않게 상대를 불쾌하게 해서 최대한 말을 조심하려고 애썼습니다. 놀랍게도 나중에 친구들까지 제 앞에서 비속어를 쓰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또 예전에는 감사할 상황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더한 것을 욕심부리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 잠들기 전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을 5가지 이상 회상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수록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지요. 감사에 관한 새노래도 자주 듣는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져서 화낼 상황을 웃으며 넘기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정말 감사한 변화입니다.
저의 과거는 세 시절로 나뉩니다. 까불까불했던 어린 시절, 게임에 매달렸던 사춘기 시절, 믿음이 좋아진 시절. 이 모든 시절에 많은 분들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철없이 방황할 때면 훈계보다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선택을 믿고 지원해 주셨지요. 학생부 담당 선생님들은 예의 없고 믿음 없는 저를 위해 참 많이 기도해 주셨을 겁니다. 엄마의 위로와 학생부 선생님들의 기도, 하나님의 인도 덕분에 제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잊지 않고 항상 겸손히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예전의 저와 같은 형제님들이 있다면 사랑으로 이해해주고 하나님께로 잘 이끌어주고 싶습니다.
졸업을 앞둔 지금, 철도 관련 학과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일 때문에 타 지역에서 지내셔서 종종 기차를 타고 아빠를 보러 갔는데,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그때의 추억으로 기관사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대학교 면접도 진리 발표 경험 덕분에 떨지 않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겠지만 대학교에서든, 머지않아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가게 될 군대에서든 언제 어디서나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모든 일에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부딪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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