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의 여행 上

안녕하세요! 저는 행복이라고 해요. 이름 참 좋죠? 그런데 저는 쇠고래예요. 좀 많이 못생긴 고래죠. 몸은 잿빛이고 곳곳에 흰 점이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점이 아니고 ‘따개비’ 자국이에요. 왜 따개비들은 자꾸 제 몸에 붙을까요? 따개비 때문에 바다 이까지 들러붙는다니까요. 너무 가려우면 바위에 몸을 문질러요. 따개비가 붙었을 때는 몸이 얼룩덜룩해 보였다가 떨어져 나가면 이렇게 하얀 상처가 남아요. 아직 흰 점이 세 군데밖에 없지만 엄마 아빠처럼, 갈수록 몸 여기저기 뒤덮일 거래요. 우리 엄마 아빠는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대요. 하지만 친구들은….
“앗, 깜짝이야! 너는 어떻게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될까.”
“너 자꾸 몸에 곰팡이 피어서 어떡하니?”
“곰팡이 아니라고!”
“크크큭, 곰팡이다, 곰팡이.”

이렇게 맨날 놀려요.
저를 가장 심하게 놀리는 애가 솔피랑 똘이예요. 범고래랑 돌고래인데, 얘들은 사람들이 참 귀여워해요. 뾰족한 이빨이 있어서 큰 물고기 사냥도 잘하고요. 특히 솔피는요, 빠르고 힘도 세고 머리도 좋고 피부도 매끈하게 까매요. 옆구리와 눈언저리에 있는 흰 반점도 멋져요. 똑같은 흰 점이라도 저와 비교가 안 되죠. 저는 입안에 이빨 대신 수염이 있고, 덩치만 크지 목구멍은 작은 공만 해서 새우같이 작은 생물만 먹을 수 있어요. 저 같은 수염고래 종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라는데 ―아직 저는 작지만요.― 아주 작은 생물을 먹고 산다니 웃기지 않나요?
다른 고래들처럼 우리 쇠고래도 오래전에 사람들에게 많이 잡혀서 사라질 뻔했대요. 지금은 나아졌지만 엄마 아빠나 주위 어른들은 항상 조심해서 다니라고 신신당부하세요. 그런데 저는요, 사람보다 친구들의 놀림이 더 무서워요.
“우리 예쁜 아가!”
“으악, 엄마!”
엄마가 저를 등에 휙 태웠어요. 제가 울상이면 꼭 이렇게 몰래 다가와서는 저를 태우고 나들이를 나간다니까요.
“오늘도 친구들이 놀렸어?”
“….”
“행복이는 예쁘고 착한 아이인데, 친구들이 왜 못살게 굴까?”
“엄마 아빠 눈에나 예쁜 거예요. 제가 봐도 저는 너무 못생겼어요. 친구들이 저랑 안 놀아줄 만해요. 오늘은 저보고 곰팡이라고 했어요.”
엄마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는 한숨을 크게 쉬어요. 곰팡이 이야기는 하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알지? 엄마도 어릴 때 놀림받은 거. 놀림뿐이겠니, 벌벌 떨며 살았지. 사람들 피하느라….”
엄마는 어릴 적에 엄마를 잃었어요. 엄마가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으슥한 데로 가서 혼자 울고 있는데 배들이 다가왔대요. 얼른 물속으로 숨었지만 이미 배들에 둘러싸여 죽겠구나 했지요. 그때 할머니가 달려온 거예요. 할머니는 온몸으로 배를 쳐서 사람들을 공격했어요. 사람들이 작살을 마구 날리니까 할머니는 엄마에게 빨리 깊은 데로, 멀리 가라고 소리쳤어요. 그 모습이 할머니의 마지막이었고요.
“아가, 남이 하는 나쁜 말은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마. 아주 흉한 상처가 마음을 덕지덕지 뒤덮어서 너를 병들게 한단다. 겉으로 보이는 이 상처들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리고 이것들은, 작은 생물인 따개비에게조차 우리 품을 내어주며 더불어 살아간다는 증거란다.”
“우리가 약해서 따개비한테도 당하는 거 아니고요?”
“약해 보이니? 네가 아빠 엄마처럼 커지면 다른 고래들이 함부로 괴롭히지 못할 거야. 그리고 여기보다 넓고 깊은 바다로 가보렴. 우리보다 훨씬 큰 대왕고래도 있어.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크고 힘이 세지만 남을 괴롭히지 않아. 그게 강하고 멋진 거야.”
“엄마 아빠보다 커요? 훨씬?”
“비교할 수도 없지.”
“우아, 언젠가 꼭 만나고 싶어요!”

저는 이제 솔피랑 똘이가 놀리든가 말든가 신경 쓰지 않아요. 나중에 제가 게네보다 몸집이 커지면 혼쭐을 내줄 거예요, 흥! 그럼 기분 좋게 먹이를 찾아볼까요? 이렇게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여서 바닥을 뒤지면 돼요.
“고래 밥 찾냐?”

하, 솔피예요. 무시하고 새우나 찾을래요.
“바닥을 뒤져서 밥을 먹어야 하다니 딱하다.”
“….”
“어? 너 곰팡이 늘었어.”
못 참겠어요.
“곰팡이 아니라고 했지! 왜 여기까지 내려와서 이래. 똘이랑 놀러나 가!”
“걔는 자기 가족끼리 놀러 갔다, 왜?”
“그럼 너도 네 무리로 가서 놀아. 남이 밥 먹는 거 방해하지 말고.”
“씨, 내가 알아서 갈 거야!”
솔피가 갑자기 화를 내고는 쌩 헤엄쳐 사라졌어요.
“행복아, 밥 먹었니?”
“네, 엄마. 솔피가 와서 먹다 말았지만요. 엄마, 솔피는 이상해요. 똘이가 없으면 혼자 놀아요. 오늘은 너희 가족한테나 가라고 하니까 화내면서 가버렸어요.”
“행복아, 솔피는… 가족이 없어. 원래 범고래는 대가족으로 살아가는데 모두 나쁜 일을 당했단다. 그나마 살아남은 솔피의 엄마 아빠마저 솔피가 어릴 때 그물에 걸렸다가 빠져나오지 못했지.”
전혀 몰랐어요. 하긴 고래 친구들 중에는 엄마나 아빠가 없는 친구들이 꽤 많아요. 바다가 위험해져서래요. 억센 그물이 곳곳에 깔렸고, 더러워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도 있어요. 아무거나 먹어도 안 된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일 수 있다고요.
“제가 솔피에게 실수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솔피한테 잘해주기는 싫어요. 걔는 저를 괴롭혀요. 가족이 없다고 해서 남을 괴롭혀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맞아, 잘못한 일이지. 그런데 아마 솔피는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럴 거야. 엄마는 솔피가 나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해.”
“솔피가 어떻게 나쁘지 않죠? 저는 솔피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요! 몰라요, 다른 데 가서 먹이나 더 찾을래요.”
저는 토라져서 엄마에게 벗어났어요. 엄마 말이 이해가 안 가요. 그동안 저한테 한 짓을 보세요, 칫.
“훅!”
새우를 양껏 먹으니 배가 차서 기분이 나아졌어요. 에휴, 땅을 파는 사이에 따개비가 또 달라붙었네요. 이제 털어내기도 귀찮아요. 숨 쉬러 얼른 물 위에나 올라가야지.
“후, 날씨 참 맑다!”
“어푸, 어푸.”
물결이 심하게 흔들려요. 물결을 거슬러 시선을 따라가 보니 솔피가 있어요. 심하게 몸부림치면서요.
“너 거기서 뭐해? 사냥해?”
“어푸, 오지 마!”
“뭐… 하는데?”
“그물이야! 걸리면 죽어. 가까이 오지 마!”

솔피가 자꾸 가라앉아요.
“나 그쪽으로 가니까 퍼덕이지 말고 가만있어 봐!”
“바보야! 오지 말… 어푸.”
조심히 물속으로 내려가서 솔피를 떠받쳐 물 위로 올렸어요. 솔피 몸에 그물이 얽혀 있어요.
“물 뿜고, 숨 좀 쉬어.”
“푸우.”
“그물 엉키니까 막 움직이지 말고, 왼쪽 지느러미 흔들어 봐. 됐어. 이번에는 꼬리…. 잘했어. 이제 천천히 왼쪽으로 헤엄쳐.”
솔피가 스르르 움직이더니 매끄럽게 헤엄쳐나가요. 바다 한가운데로 빠져나와서는 벌러덩 눕네요.
“살았다…. 야! 내가 오지 말라 그랬지! 그러다 그물에 걸리면 어쩌려고!”
“몰라! 그냥 그렇게 되는 걸 어떡해!”
“됐고! 고… 마워.”
“뭐? 어….”

더 이상 솔피는 저를 놀리지 않아요. 솔피가 그러니 똘이나 다른 고래들도 놀리지 않고요. 문제는… 솔피가 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 똘이랑 놀라고 해도 별별 희한한 핑계를 대고 옆에서 알짱거려서 무지 성가시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먹이를 못 찾으니까 제 몸에 붙은 따개비를 보고 이것도 먹을 수 있냐는 거예요. 제가 답하기도 전에 떼서 저한테 주겠다고 몸통을 콱 무는데, 아주 기겁했다니까요!
솔피를 구한 날, 엄마 아빠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저를 오래오래 품어주었어요. 자랑스럽다고, 다 컸다고, 무사히 돌아와줘서 고맙다고요. 알고 보니 엄마 아빠는 솔피를 챙겨주고 있었대요. 솔피 엄마 아빠랑도 친구였다고요. 어른 범고래는 무시무시하다던데 친구라니, 신기한 일이죠. 엄마 아빠는 범고래가 바다의 포식자라고 해서 다 포악한 건 아니라고 했어요. 그러니 솔피랑도 가족처럼 사이좋게 지내라고요. 그동안 솔피가 저한테 못되게 군 건 아마, 부러움 때문일 거래요. 솔피처럼 멋진 고래가 왜 저를 부러워하냐고 물으니 엄마 아빠는 빙그레 웃기만 했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저는 지금 솔피랑 둘이서 바다 여행 중이에요. 제가 정말 다 컸는지 엄마 아빠가 갑자기 저의 독립 여행을 선언했거든요. 덩달아 솔피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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