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의 여행 下

엄마 아빠가 저희에게 말했어요.
“너희는 바다 세계의 큰 고래다. 바다를 닮은 아이들이지. 넓은 바다를 경험하며 생각도 마음도 커져야 해. 행복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솔피를 구했지? 그 용기로 파도를 헤쳐가거라. 솔피 너는 아주 영리하고 심성이 고운 아이다. 아저씨가 늘 이야기했지? 너희 부모님은 훌륭한 분이었다고. 너는 부모님을 꼭 빼닮았어. 뭐든 잘해낼 거다.”
“행복아, 누구에게나 너의 넓은 품을 기꺼이 내어주고 품어주라는 엄마 말 기억해. 솔피야, 네가 있어 든든하구나. 우리는 다 바다의 가족이야.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함께하는 길이니 서로에게 힘이 될 거란다. 긴 여행 후에 따뜻한 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자.”
그날 솔피가 하도 울어서 달래느라 저는 제대로 울지도 못했어요.
성가셨던 솔피지만 같이 다니니 심심하지 않아요. 솔피가 말이 많거든요. 호기심도 많아서 뭔가 새로운 것이 보인다 싶으면 냅다 헤엄쳐 가죠. 바다는 신기한 것투성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래요. 솔피는 빠르기만 하지 지구력은 없어요. 쌩 헤엄쳐 저만치 가는가 싶으면 금방 저한테 따라잡혀요. 오히려 저를 못 따라와서 헥헥거리죠. 천천히 오래오래 가라 해도, 그러면 감질난다고 말을 안 들어요.
제가 바다 바닥에서 먹이를 먹는 동안 솔피는 물고기를 잡아요. 작은 물고기는 저도 먹을 수 있어서 솔피가 나눠 주기도 해요. 저는 땅을 헤집느라 몸에 따개비가 더 붙었어요. 이제는 그러려니 해요. 제가 좋다는데 어떡하겠어요, 범고래까지 저한테 붙은 마당에.
“이건 무슨 조개야?”
솔피가 바닥에서 크고 딱딱한 조개껍데기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리저리 굴려요.
“글쎄, 나도 처음 봐. 돌인가? 몸 좀 긁어볼까? 으악!”
조개껍데기에서 뭐가 막 튀어나왔어요! 눈까지 달렸어요!
“예끼, 뭐하는 짓이냐!”
말도 해요! 솔피랑 저는 깜짝 놀라서 둘이 척 붙었어요.
“흠, 덩치만 커서 밴댕이구만.”
“저, 저희 밴댕이 아닌데요. 고래인데요.”
솔피는 이 와중에도 작은 물고기에 자기를 비교해서 자존심이 상하는지 말대꾸를 해요.
“하도 벌벌 떨어서 한 말이다. 거북이 처음 보냐?”
“들은 적은 있어요. 돌처럼 단단한 갑옷을 입고, 오래오래 산다고요. 그 거북이 할머니세요?”
“에헴, 맞다. 근데 너희 둘이 친구냐? 오호, 쇠고래랑 범고래라니… 묘한 조화로군.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제 이름은 행복이고, 얘는 솔피라고 해요. 저희가 잘 안 어울리긴 하죠? 겉모습만 봐도 저는 이렇게 흉하고, 솔피는 멋지게 생겼잖아요.”
거북이 할머니는 고개를 길게 쭉 뻗어서 저를 빤히 쳐다보세요.
“나를 처음 보고 놀랐지? 생소했을 게야. 하지만 거북이라고 하니 거북이로 받아들인 게지. 내 눈에는 그저 건강하고 씩씩한 고래만 보이는구나. 너는 너일 뿐이다. 바다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지. 모습도 제각각이야. 저기 봐라. 아름다운 꽃들이 날아다니지?”
솔피와 저는 할머니가 가리킨 위쪽을 올려다봤어요. 투명하게 빛나는 것들이 춤을 추듯 나부껴요.
“해파리라고 하지. 조심해라. 독 있다.”
우리는 그대로 굳었어요.
“뭐, 나나 너희나 원체 몸이 두꺼워서 독침에 쏘이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속은 다르기도 하니까. 내가 아는 고래 친구가 하나 있지. 그 양반은 덩치만 크지 순둥이야.”
“혹시 할머니 고래 친구가 대왕고래예요?”
“그래, 그 노인네 나이도 백 살이 훨씬 넘었을걸. 흰 수염을 아주 멋지게 길렀지. 만약 너희가 가까이서 보면 한눈에 안 들어올 게다. 옛날에는 그렇게 크니까 사람들이 무서워했어. 겨우 새우나 먹는데 말이야. 그 친구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야. 그냥 파도의 친구고 바람의 친구고 내 친구지.”
“할머니 말씀이 옳아. 내가 곰팡이라고 너를 놀린 적도 있지만 그때는 내가 너무 철이 없어서 그런 거야. 너는 절대 보기 흉하지 않아. 너는 그냥 내 친구일 뿐이야.”
“허허. 그래, 그거다. 아주 좋은 범고래 친구로구나. 내 어릴 때만 해도 고래들을 자주 봤는데 요즘은 보기 어려워. 하긴 다들 그렇지. 바다는 드넓고 아름답지만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너희는 서로를 지켜주는 좋은 친구가 되렴.”
거북이 할머니는 우리 이마를 토닥여주었어요.

거북이 할머니 말씀대로 바다는 아주 넓고 아름다운 곳이에요. 우리는 그동안 알록달록한 물고기, 물결 따라 살랑이는 해초들 그리고 많은 고래 친구를 만났어요. 저만 특이하게 생긴 줄 알았는데 다들 개성 있는 외모를 가진 거 있죠? 아, 덩치 크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물고기도 봤어요. 겉모습만 그랬지 오히려 솔피를 보고 덜덜 떨더라고요. 이름이 상어였나 그래요. 역시 겉만 보고는 모를 일인가 봐요.
지금은 솔피도 저도 먹이를 실컷 먹고 물 위를 뒹굴며 놀고 있어요. 그런데 솔피가 갑자기 다급하게 저에게 달려오네요.
“우리 빨리 여기 빠져나가야 돼! 범고래들이 몰려오는 것 같아!”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범고래니까. 바다에 깡패 같은 범고래가 얼마나 많다고. 일단 피하자. 빨리빨리!”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잠수했는데 너무 늦었나 봐요. 커다란 범고래 세 마리가 앞을 딱 막아섰어요.
“꼬맹이 범고래랑….”
“휘―. 쇠고래네.”
“어이, 꼬맹이. 이 쇠고래가 네 밥이냐?”
“친군데요.”
범고래 아저씨들이 끼릭끼릭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웃어요.
“얘야,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이거’는 먹이야. 이게 더 크면 우리가 잡기 힘들지만 이렇게 작은 건 지금 먹기 딱이라고.”
“꼬맹아, 보아하니 너 무리 없는 고아구나. 우리 무리에 끼워줄게. 이런 먹이랑 친구놀이 그만해.”
솔피만 봐서 몰랐는데 범고래는 진짜 무서운 고래인가 봐요. 그래도 아저씨들이 솔피는 살려줄 것 같아요. 솔피에게 가라고 툭툭 치는데 얘가 꿈쩍을 안 해요.
“아저씨들… 싫어요. 그리고 얘는 먹이가 아니고 제 친구라니까요!”
아저씨들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어요. 일이 날 것 같아요. 솔피가 속삭여요.
“범고래는 잠깐만 빠르지, 너 끝까지 못 따라가. 내가 시간 벌 테니까 무조건 전속력으로 헤엄쳐.”
“뭐?”
“지금이야!”
솔피가 돌진해 아저씨들 머리를 들이받아요. 솔피랑 같이 공격할까 하는데 한 아저씨가 저를 무섭게 쫓아와요. 힘껏 달아나지만 거리가 더 가까워져요. 이렇게 죽나 봐요.
쿵!
제가 죽는 소리가 웅장하네요. 어? 몸은 멀쩡한데? 세상에, 뒤돌아보니 등이 까만 고래 아저씨들이 범고래 아저씨들을 내쫓고 있어요. 힘에 부치는지 범고래 아저씨들이 도망가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피와 저는 착한 아저씨들에게 인사했어요.
“우리는 혹등고래 무리다. 우리가 정찰 중이라 천만다행이었어. 이 일대 범고래들은 자주 행패를 부리거든. 너희는 처음 보는 아이들이구나.”
“저희는 여행 중이었어요. 바다를 한 바퀴 돌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멋진 일이다. 아까 범고래 일당에 덤비는 이 친구의 기지에 우리도 감명했다. 그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용기거든. 그렇게 서로를 챙겨주면서 간다면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대장 아저씨가 눈을 감더니 노래를 불러요. 다른 아저씨들도 따라서 눈을 감고 여러 가락을 소리 내요. 아저씨들의 아름다운 작별 인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나요.

“솔피야, 고마워. 나 구하겠다고 나서줘서.”
“너도 나 구해줬잖아. 그런데 너 진짜 말 안 들어. 내가 바로 도망가라 했잖아. 같이 덤비려 하니까 따라잡히지.”
“어떻게 두고 가! 우리 엄마 말 잊었어? 우린 친구고 가족이야. 생긴 것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달라도.”
“크큭, 알았어. 그런데 네가 먹는 거 이야기하니까 배고파. 아까 너무 힘썼나 봐. 뭔가 어마어마하게 큰 게 느껴지는데 배고파서 그런 것 같아.”
“나도 배고파. 밑으로 내려가보자.”
물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아주 큰 바위가 눈앞에 떡하니 있어요.
“아까 이런 바위 없지 않았어?”
“응. 내가 느낀 게 이건가?”
갑자기 바닷물이 넘실넘실 흔들거리더니 큰 바위가 움직였어요. 솔피와 저는 입을 벌린 채 바위를 바라봤어요. 믿을 수 없어요. 큰 고래예요, 아주아주 큰 고래! 숨 쉴 때 내뿜는 물이 우리 머리 위로 폭포처럼 쏟아져요.
“젊은 친구들이로구만.”
“안녕하세요.”
솔피는 넋이 나가 인사했어요. 저는 너무 신나고 설레요.
“대왕고래 할아버지 맞으시죠? 거북이 할머니 친구분?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큰 분이니까요!”
할아버지가 껄껄껄 웃으세요. 웃음소리에 맞춰 파도가 마구 흔들려요.
“나는 이 넓은 바다의 아주 작은 일부란다. 너희 역시 바다의 일부지. 물고기도, 새우도, 조개도, 산호초도, 모두. 크고 작은 모든 것이 하나로 모여 이 바다를 이룬단다. 그래서 우리 모두 귀하고 큰 존재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는 따로 있어.”
“할아버지보다도요? 어디에요?”
“너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언제나 이 바다처럼 너희를 품지. 우리 모두는 그 품에서 자란단다. 나 역시 이렇게 늙고도 그 품이 그립구나.”
할아버지 말씀이 너무 아리송해요.
“누구인지 알 것 같아요.”
솔피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부모님이요.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어요. 부모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져요. 제가 잘못해도 꼭 안아주셨으니까. 언제나 그 품이 그리워요. 아주 많이 보고 싶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부모님을 대신해서 저를 가족처럼 품어주는 고래들을 만났으니까요.”
솔피가 저를 보고 웃어요. 할아버지도 저를 물끄러미 보고 웃으세요.
“그래, 맞다. 우리는 모두 부모라는 바다에 산단다. 혹 그 품을 떠나게 되더라도 어려울 때는 우리가 서로서로 도우며 바다가 되어주면 돼. 그것이 살아가는 데 가장 강한 힘이 되지. 너희를 보니 내 마음이 참 좋구나. 이제 어디로 가는 게냐?”
“우리 고향 바다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그래, 조심히 돌아가거라.”
할아버지는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깊고 깊은 곳으로 내려갔어요.

우리는 배를 채우고 다시 신나게 바다를 헤엄쳐 가요. 공중제비도 하고요. 다른 고래들을 만나 수영 경주도 했어요. 이제 물이 바뀌었어요. 따뜻해요.
“우리 다 왔어!”
솔피가 외쳤어요.
“솔피야, 나 이제 너보다 큰 것 같아. 내가 너 가리면 아예 안 보이겠는걸. 앞으로 위험하면 이 형 뒤에 숨어.”
“조금 더 큰 것 갖고 유세는. 힘은 내가 더 세거든!”
솔피가 속도를 내서 저를 앞질러요. 금방 따라잡힐 거면서.
“행복아! 솔피야!”
“엄마! 아빠!”
저기 엄마 아빠가 보여요. 집이에요! 따뜻한 우리 바다로 다시 돌아왔어요. 저는 행복한 고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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