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늘은 얼마 안 오잖아. 이제 한두 방울 떨어지는데?”
아이들이 창밖을 보며 이야기한다. 정말로 비가 서서히 그쳤다. 그리고 우산, 빨간 우산은 소녀의 책상 옆에 기대어 있었다. 반장이 소녀에게 다가왔다.
“급식실 금, 토, 일 공사해서 오늘 야자 없는 거 알지?”
“응. 너는 오늘도 학원 가?”
반장이 갸우뚱한다.
“너 처음으로 내 말 안 끊고, 질문까지 한 거 알아?”
소녀는 생각한다. 확실히 반장에게 못하면 못했지, 잘해주지는 않았다.
“내가 그랬나.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괜찮아. 사실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었거든.”
“나랑?”
“응. 말없이 할 일 다하는 게 멋져 보여서?”
“그렇게 봐주다니 고맙네.”
반장은 생각만큼 얄미운 아이가 아니었나 보다. 소녀의 생각이 꼬였을 뿐.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갈게. 학원 잘 가. 다음 주에 보자.”
“그래. 빠이!”

“안녕!”
처음으로 아이가 먼저 인사한다.
“비!”
소녀가 웃으며 아이에게 달려간다. 비는 여전히 똑같은 표정에, 똑같은 차림이다.
“구름이 싹 걷혔어.”
“그러게.”
“나 이제 여기 안 와.”
소녀의 심장이 쿵 떨어진다.
“왜? 왜 안 오는데?”
“말했잖아. 비는 먹구름을 쫓아다닌다고. 이제 먹구름이 없어.”
“뭐?”
갑자기 아이가 배를 잡고 까르르 웃는다.
“이사 가. 그래서 우산은 선물. 혼자 비 맞고 다니지 마.”
마지막이구나, 소녀는 아이의 작은 몸을 꼭 안아준다.
“잠깐이지만 너랑 만나서 즐거웠어. 비야, 너는 나에게 단비였어.”
“어? 내 진짜 이름 단비인 거 어떻게 알았어? 엄마 아빠가 자꾸 비야, 비야 라고 해서 그렇지.”
소녀가 싱긋 웃는다.
“이제 먹구름 아니야. 그러니까 비랑 놀지 말고 햇살이랑 놀아.”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안녕!”
“안녕.”
소녀는 아이가 사라진 골목을 바라본다. 한참이나.
“야!”
우렁찬 목소리가 소녀를 부른다. 반장이다. 반장 손에 빨간 우산이 있다.
“헉헉, 이거. 이거 두고 갔더라.”
“이것 때문에 나 쫓아온 거야?”
“비가 거의 그치긴 했어도 조금씩 빗방울 떨어지잖아.”
“이제 비… 안 올 거야. 여하튼 고마워. 정말.”
“근데 너, 울어?”
“에이, 내가 뭘 울어. 빗물이 튀었나.”

“넌 쉬는 날 뭐해? 난 가끔 학원 보충 가는데.”
“나는 딱히 할 일 없어. 공부? 큭큭, 농담이고. 우리 같이 어디 놀러 갈까?”
“좋지! 마침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거기가 어디냐면….”
비에 젖은 거리 위를 두 소녀가 나란히 걷는다. 거리가 햇빛에, 웃음소리에 반짝인다. 비 온 뒤 맑음. 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