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상태가 심각해 입원하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중환자실에서 나온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족들 모두 아빠가 치료받으면 다시 괜찮아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이 아빠 옆에 있던 저를 부르셨습니다. 처음에는 약의 효과로 고비를 넘겼지만, 더는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아빠가 짧으면 한 달, 길어도 석 달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버티던 마음이 와장창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슬퍼하면 부모님이 더 마음 아파할 것 같아서 그저 조용히 아빠 곁에 있었습니다. 남은 몇 달이라도 아빠에게 효도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빠는 몇 주 만에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내내 아빠의 부재가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냥 부정하고 싶었던 걸지도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아빠의 빈자리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예전에 아빠는 고장 난 물건을 뚝딱뚝딱 잘 고쳤습니다. 그때는 물건이 망가져도 버리지 않고 손이 베이거나 긁히면서까지 수리하는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고된 업무로 아빠는 매일 허리가 쑤시다 했고, 팔다리에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못마땅한 시선으로 왜 힘들게 고치냐고, 새로 사라고 아빠를 타박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빠가 꿋꿋이 물건을 수리했던 이유는 가장의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아빠가 돌아가신 지 반년이 넘었습니다. 아직도 밤마다 아빠가 보고 싶습니다. 굳은살투성이로 물건을 고치던 아빠의 손이 그립습니다.
아빠를 다시 볼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제일 먼저 사랑한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맨날 다투고 장난쳤던 순간순간이 내게는 다 소중했다고, 어두컴컴한 밤이라도 아빠의 투박한 손을 맞잡고 걸으면 무서울 것 하나 없었다고, 아빠의 넓고 듬직한 등은 내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기댈 수 있는 안식처였다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