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필리핀에서 아빠를 만나 결혼을 결심하고
한국까지 오셨고, 아빠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서로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할 뿐,
낯 뜨거운(?) 이야기는 해본 적이 없던 우리 가족.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잠자기 전 불 끄고 함께 누워 대화 나누기!
서로가 생각하는 ‘우리 가족’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그 현장 속으로 함께 가볼까요?
가족에게 고마운 점은?
엄: 딸은 많이 도와주고, 마사지해 줘서 고마워. 아들도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 설거지도 하고, 밥도 짓고, 장 볼 때 짐도 들어줘서.동: 엄마는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맛있는 요리도 해주고,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줘서 고마워. 누나는 없어! 크크크. 장난이고, 숙제 도와주고 어디 갔다 올 때 먹을 거 사다줘서 고마워.
나: 엄마는 제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담아듣고 기억하고 위로해 줘서 고마워요. 무엇보다 ‘우리 엄마’인 것이 가장 고마워요. 동생은 잔일 부탁할 때마다 다 들어줘서 고마워.
가족에게 미안한 점은?
엄: 엄마가 한국어를 잘 못해서. (엄마의 한국어 실력은 어떤가요? 나: 잘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소통이 잘된다. 동: 맞다. 잘한다.)동: 엄마가 뭐 부탁할 때 나쁜 말 하면서 말 안 들었던 거 미안해. 또 누나한테 잘못하고, 누나가 숨겨 놓은 거 몰래 먹고선 거짓말하고, 방 어지럽혀서 미안해.
나: 나를 낳아주고, 나를 잘 기르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엄마에게 힘들다고 투정했던 거, 나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엄마에게 감정의 화살을 돌려 짜증 내고 화낸 거 미안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네(동생)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무작정 화내고, 고마운 일에 고맙다고 많이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해.
가족과 함께라서 좋았던 때는?
엄 : 필리핀 여행 간 거.동: 저녁 먹고 같이 과자 먹으면서 드라마 볼 때랑 필리핀 갔을 때.
나: 나도 필리핀 간 것! 그리고 가족이 옆에서 나를 지지해 줄 때.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엄 : 딸은 동생 사랑하고 싸우지 마. 아들도 말 잘 듣고, 누나 사랑하고 싸우지 마.동: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 누나는 늦게까지 휴대폰 하지 말고 일찍 일어나.
나: 엄마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예요.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 주세요. 고맙고 사랑해요. 그리고 못된 누나라서 미안해. 이쁘고 자랑스럽고 든든한 동생인데 친하다는 이유로 괜히 튕기고, 나쁜 말 할 때도 있고…. 앞으로는 너 먼저 생각할게. 늘 도와줘서 고마워.
하늘에 있는 아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엄 : 보고 싶어. 애들 많이 컸어.동: 건강하게 사세요.
나: 내가 몹시 철없던 때 나를 철들게 해준 아빠, 많이 보고 싶어요. 아빠랑 대화 많이 못 나눈 거,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거 늘 후회해요. 아빠가 내 아빠라 너무 기뻐요. 진짜 사랑해요.
이야기를 나누고 느낀 점
엄: 행복하다. 아들 마음을 잘 몰랐는데 같이 이야기하고 알게 되어서 좋았다.동: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나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렇게 느꼈던 것이지 정말로 마음 하나하나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를 더 잘 아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에게 묻다―
엄마는 언제 필리핀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너희가 아기 때, 엄마가 말을 못하니까 답답하고 힘들어서 매일 돌아가고 싶었어. 지금은 일도 다니고 너희가 많이 크기도 해서 예전에 비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없어. 너랑 동생이 돈 벌고 일 다니게 되면 여유로워지니까 그때는 필리핀 자주 가고 싶어.우리에게 바라는 점은요?
학교 공부 잘 끝마치기. 엄마는 일하느라 몸이 매일 힘들어. 너희는 이렇게 일 다니는 거 싫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 다녔으면 좋겠어.우리가 성인이 되면 어떨 것 같아요?
행복할 것 같아. 지금은 혼자 너희를 돌봐야 해서 걱정이 많은데, 독립적으로 알아서 잘하면 편하고 좋을 것 같아.엄마, 혼자서 너무 고생이 많으세요.
혼자지만 너희가 잘 커서 행복하고 즐거워.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먼저 하늘로 가셨다. 장녀로서 내가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철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아니었다. 더 어렸을 때,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나를 놀린 적이 있다. 그때부터 다문화 가정이라는 꼬리표가 신경 쓰였다. 친구들에게 엄마를 숨기고 싶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는 “친구들 부모님도 많이 안 오시니까 엄마도 안 와도 된다”며 둘러댔다. 참 후회되는 일이다. 엄마도 딸의 첫 졸업식이 궁금하셨을 텐데 내가 그 기회를 뺏은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와 자존감이 올라가고 다문화 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다를 바 없이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셨다. 엄마는 외국인이 아니라 그냥 나의 엄마다. 이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이후로는 엄마를 당당히 자랑했다. 중학교 졸업식에는 엄마가 오셔서 함께 사진도 찍고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진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만 나온다. 나는 엄마에게 응석 부리고 엄마와 싸워 등 돌릴 때도 있는데 엄마는 늘 먼저 다가와 사랑을 주신다. 엄마의 사랑이 나를 변화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사춘기를 보내는 동생은 종종 엄마와 티격태격하지만 우리 가족이 계속 이렇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가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 같이 구원받아 천국 가서도 영원히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