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온유, 엄마 없이 학교에서 잘했어? 오늘 재미있었어?”
온유는 오늘 일어난 일을 떠올려봤어요. 넘어져 손바닥에 피가 난 일, 교실을 찾지 못해 곤란했던 일, 연필이 없어 난감했던 일 그리고 엄마가 생각나 눈물이 날 뻔했던 일…. 온유는 손바닥을 등 뒤로 감췄어요. 입술이 삐죽 나오고 코가 찡해졌지만 온유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친구도 사귀고, 엄청 재밌었어요!”
“정말?”
엄마는 왠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온유는 마음이 콕콕 찔렸지만 참았어요. 엄마는 빙긋 웃고는 온유에게 주기로 약속한 방문을 열었어요. 문이 열리자 온유는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어요.
“우아!”
방에 들어가자마자 책상이 보여요. 온유가 직접 고른 연한 나무색 책상이지요. 그 옆 큰 책꽂이에는 온유가 좋아하는 『예쁜 천사 될래요』 책이 잔뜩 꽂혀 있어요. 작은 장롱 안에는 온유의 여러 가지 색깔 옷이 있어요. 그중에서 온유가 제일 아끼는 옷은 멋진 형들만 입는 정장이에요. 온유는 이 옷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장롱 옆에는 온유가 제일 기대하던 침대가 있어요. 온유는 곧바로 침대에 뛰어들었어요. 깨끗한 이불의 향이 정말 좋았어요. 이불의 시원한 느낌이 온유의 온몸을 감쌌어요.
“마음에 들어?”
“네! 완전 좋아요!”
김밥처럼 이불을 몸에 칭칭 감은 온유가 큰 소리로 외쳤어요. 이제 조금 뒤면 여기서 온유 혼자 자는 거예요. 온유는 빨리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온유야, 이제 자러 가자.”
“네!”
드디어 온유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밤이 되었어요. 온유는 저녁밥도 허겁지겁 빨리 먹고, 하기 싫어하던 양치질도 꼼꼼하게 했어요. 오늘은 모든 일이 다 즐거워요.
“엄마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온유도 잘 자.”
온유는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어요. 책상과 옷장, 침대가 온유를 반겨주었어요.
불을 끄기 전, 온유는 책상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어요. 눈을 뜨니 학교에 챙겨가지 못했던 연필과 지우개가 보여요. 괜히 필기구들이 미웠지만 온유는 가방에서 남색 필통을 꺼내 연필과 지우개를 담았어요. 작은 필통이 꽉 차 마음이 든든해졌어요.
이제 침대에 이불을 펼 차례예요. 어제까지는 엄마 아빠와 함께했지만 오늘부터는 혼자 한답니다. 온유는 얌전하게 개어진 개나리색 이불을 힘차게 펴서 마음껏 ‘이불 펄럭거리기’를 했어요. ‘이불 펄럭거리기’는 이불 모퉁이를 잡고 위아래로 펄럭거리는 거예요. 엄마는 먼지 날린다고 하지 말라고 하시거든요.
‘먼지는 하나도 안 보이는데, 엄마는 안 보이는 먼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걸까?’
온유는 침대에 누웠어요. 불을 끄지 않아 눈이 부시지만 불을 끄고 싶지 않았어요. 부모님과 잘 때도 불을 끄면 심장이 콩닥콩닥하고 눈을 감기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불을 켜놓고 잠들 수 없을 것 같아요. 온유는 뭉그적뭉그적 침대에서 일어나 스위치가 있는 문 앞으로 갔어요.
온유는 계획을 세웠어요. 불을 끄자마자 침대로 달려가는 거예요. 불을 끄고 나면 캄캄해서 침대까지 가는 길을 잃어버릴 수 있어서 조심해야 돼요.

불이 꺼졌어요. 하지만 온유는 움직이지 못했어요. 까맣게 칠한 안경을 쓴 것처럼 너무 캄캄했거든요.
‘엄마랑 같이 있을 때는 불을 꺼도 밝았는데….’
온유는 불을 켰어요. 방이 다시 밝아졌어요. 온유는 뛰어갈 길을 확인했어요. 걸려 넘어질 것은 없는지도 살폈지요. 어두운 방에서 넘어지면 바닥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온유는 검은 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어요.
심호흡하고 천천히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어요.
‘하나… 두울… 셋!’
셋을 세는 동시에 스위치를 꾹 눌렀어요. 온유는 눈을 감고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었어요. 반대편 발이 붕 떠올랐어요. 이제 침대에 뛰어들기만 하면 돼요.
“….”
온유의 발이 뚝 멈췄어요. 방 한가운데서 온유는 굳어버리고 말았어요. 너무 어두워서 온유가 서 있는 곳에서 침대가 보이지 않아요. 스위치도 보이지 않아 불을 켤 수도 없었어요. 어둠의 상자에 갇힌 것만 같았어요.
스르르, 툭!
무언가 움직이고 떨어진 소리가 났어요. 소리가 작았지만 방 안이 조용해서 똑똑히 들렸지요. ‘방에 누가 있나? 이 소리는 누가 낸 거지?’
온유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깜깜하기만 해요. 무엇이 있는지 온유는 볼 수 없어요. 방이 너무 어두우니까요. 시간이 지나니 앞이 조금씩 보여요. 온유는 침대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어요. 온유는 한 발자국씩 조심스레 옮기기 시작했어요. 이제 손만 뻗으면 침대예요!
그런데 온유는 발견해버리고 말았어요. 아까부터 침대 위에서 온유를 바라보던 이불주름괴물을요. 눈은 대각선 위로 길게 찢어져 있고, 입은 금방이라도 온유를 잡아먹을 듯 크게 벌리고 있어요. 이불주름괴물은 몸을 움직여 온유에게 다가왔어요. 괴물은 온유의 키보다 천장보다 아파트보다 높게 높게 올라갔어요.
“엄마! 엄마! 흐어엉, 엄마!”
얼마나 주먹을 세게 쥐었는지 온유의 손이 새하얘요. 눈도 세게 감아서 눈앞이 흐릿하기도 했어요. 온유의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른 자국이, 턱 끝에는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요. 아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침대로 가는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는데 갑자기 환해진 덕분에 다 보였어요.
“온유야, 왜 그래. 엄마 여기 있어.”
엄마가 불을 켜고 들어왔어요. 온유를 두렵게 하던 어둠을 물리쳐 주었지요. 이불주름괴물도 없어진 지 오래였답니다. 온유는 눈물을 매단 채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어요.
“불을 끄고 침대로 가려고 했는데… 너무 어두워서 바닥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어요. 막 이상한 소리도 나고… 이불주름괴물도 만났어요!”
엄마는 온유를 안아주며 말했어요.
“온유야, 엄마는… 온유가 혼자서도 잘하는 모습도 좋지만 엄마에게 어리광부리는 모습을 더 좋아한단다. 온유가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면 엄마는 뭐든 다 해줄 수 있어. 학교도 같이 갈 수 있고, 다친 손바닥을 치료해 줄 수도 있어. 온유가 무서워하는 것들을 다 물리쳐 줄 수 있단다. 온유야,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고 무서워서 눈물이 날 때면 엄마한테 와. 엄마는 온유가 절대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아. 온유는 엄마의 아들이니까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온유는 아침부터 참아왔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어요. 온유의 눈물이 엄마의 어깻죽지를 물들였어요. 엄마는 온유를 더 꼭 안아주었어요. 온유는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슬픔과 서러움을 엄마가 치유해 주는 것 같았어요. 온유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어요.
“학교, 같이 가요. 데려다주세요. 필통도, 훌쩍. 같이 챙겨요. 손바닥도 너무 아파요. 반을 못 찾아서 너무, 흑. 너무 무서웠어요. 흐앙.”
온유는 한참을 엄마의 품에서 울었어요. 엄마는 따뜻한 손으로 온유의 등을 토닥토닥 쓸어내려 주었답니다. 온유가 잠들 때까지요.

“엄마, 이제 나가요!”
“그래, 가자.”
온유는 엄마의 손을 꽉 잡고 현관문을 나섰어요. 손바닥의 상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 나았어요. 엄마랑 함께 걸어오니 등굣길이 짧게 느껴졌어요. 학교 앞에 도착하자 저 멀리 순정이가 보여요.
“온유야!”
“순정아!”
순정이도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순정이가 웃으며 물었어요.
“오늘 준비물 챙겨왔지?”
“당연하지. 엄마가 챙겨주셨어.”
온유는 엄마를 보며 싱긋 웃었어요. 엄마도 온유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