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유는 엄마 아빠와 하나님께 기도드린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가 가운데에 누웠어요. 아직 방이 생기기 전이라 온유는 부모님과 같이 자요. 온유의 방이 생기면 기도도 혼자, 이불을 펴는 것도 혼자, 잠드는 것도 혼자 하겠지요? 온유는 상상만 해도 너무 신이 났어요.
요즘 온유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꼭 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엄마에게 확답을 받는 거예요.
“엄마, 제 방 만들어주는 거 잊지 않으셨죠?”
그러면 엄마는, “기억하고말고”라고 대답해 주셨답니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어요. 온유는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청소기로 넓은 방바닥을 청소했어요. 저 멀리 있던 머리카락들이 저절로 움직여 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물걸레질도 꼼꼼하게 했어요. 열심히 청소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마치 어디든 다 청소하는 엄마가 된 기분이었어요.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 되었어요. 온유는 용감하게 깜깜한 방 안에 있는 침대에 누웠어요.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이제 나는 어른이 된 거야.’
눈 깜짝할 사이 온유는 쑥쑥 자라 엄마 아빠보다 커졌어요. 이렇게 온유는 항상 꿈속에서 어른이 되지요.
오늘은 온유가 목 빠지게 기다렸던 초등학교에 가는 날이에요. 학교에 갔다 오면 온유의 방이 생겨 있겠죠? 온유는 설레서 아침 일찍 일어났어요.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께 더 간절히 기도드렸어요. 그리고 이제 무슨 일이든 혼자 하기로 결심했어요. 방이 생기니까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엄마는 온유의 책가방을 챙겨주고 있었어요.
“제가 할래요!”
엄마가 웃으며 온유에게 가방을 건네주었어요. 가방은 온유가 제일 좋아하는 개나리색이에요. 온유는 가방에 필통, 공책, 알림장을 넣고 마음속으로 외쳤어요.
‘완벽해!’
이제 집에서 출발할 시간이에요. 학교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엄마에게 온유가 말했어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온유가 잽싸게 가방을 멨어요.
“괜찮아요! 엄마랑 자주 지나다녔잖아요. 다녀오겠습니다!”
온유는 엄마가 붙잡기 전에 얼른 집을 빠져나왔어요.
‘이제 곧 방도 혼자 쓰는데 학교쯤은 혼자 가야지!’
저기 모퉁이에 겸손 문구점이 보여요. 저기만 돌면 초등학교가 나와요. 등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온유는 걸음을 빨리했어요. 그때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어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홉 살 수아 형이에요. 온유는 반가운 마음에 수아에게 달려갔어요. 그런데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앞을 보지 못했나 봐요.
“으악!”
보도블록 하나가 빠져 생긴 구멍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어요. 온유는 일어나 옷을 툭툭 털었어요. 다행히 날씨가 춥다며 엄마가 입혀주신 두꺼운 바지 덕분에 무릎은 괜찮았지만 넘어지면서 땅을 짚은 손바닥은 살갗이 하얗게 일어나더니 빨간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어요. 놀란 온유의 눈가에도 투명한 눈물방울이 맺혔어요.
“온유야! 괜찮아?”
수아가 달려와 온유를 살폈어요. 온유는 오늘 아침에 한 결심이 생각났어요.
‘뭐든 혼자 하기로 했는데!’
수아가 자기 엄마에게, 온유가 학교 가는 길에 넘어져 피가 나서 울었다고 말하면 온유의 엄마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예요. 그럼 당분간 아침 등교는 엄마와 하게 되겠지요. 온유는 울음을 그쳤어요.
“수아 형아! 나 괜찮아.”
“피가 났잖아! 형이랑 같이 보건실 가자.”
“그래.”
보건실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온유는 이제 혼자 방을 쓰는 멋진 어른이니까 아는 척을 했어요.
수아는 온유를 학교 2층 복도 끝으로 데려갔어요. 거기에는 ‘보건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어요. 수아가 문을 똑똑 두드리고 인사하며 들어가자 온유도 조심스럽게 따라갔어요. 약 냄새가 훅 끼쳐오고, 그 안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선생님이 계셨어요.
‘보건실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곳인가 봐.’
“안녕, 이름이 뭐니?”
“2학년 1반 여수아입니다.”
“그래, 수아야. 방학은 잘 보냈어? 옆에 있는 친구는 몇 학년 몇 반이니?”
“저, 저는… 1학년 이온유입니다. 반은 몰라요….”
“이름이 예쁘구나. 반가워, 온유야. 누가 아파서 온 거니?”
“온유요. 오다가 넘어져서 손바닥에서 피 나요.”
“아이고, 손 이리 줘 봐.”
보건 선생님은 다정하게 온유의 손을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주셨어요. 온유는 따가웠지만 감사했어요.

엄마 생각을 하자 온유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집에 계세요.”
“정말 혼자 온 거야? 다른 친구들은 엄마랑 같이 왔는데….”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온유의 외침에 보건 선생님이 가볍게 웃었어요.
“엄마가 섭섭하시겠는걸?”
온유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엄마도 씩씩한 온유의 모습을 보고 좋아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수아와 온유는 보건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어요. 온유는 손바닥이 약간 저릿저릿했지만 참을 만했어요.
이제 수아와 헤어질 시간이에요. 수아는 2학년이라 3층, 온유는 2층이에요. 수아와 인사를 하고 온유는 복도를 걸어갔어요. 벽의 기둥도 길쭉길쭉, 교실 문들도 길쭉길쭉, 신발장도 모두 길쭉길쭉해서 난쟁이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복도에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모두 엄마와 함께 왔어요. 엄마들은 복도 벽에 붙은 종이를 보고 친구들과 교실로 들어갔어요. 종이에는 온유와 친구들의 반이 적혀 있었어요. 하지만 온유는 볼 수 없었어요. 종이가 너무 높이 붙어 있었거든요. 온유는 겁이 났어요.

“안녕?”
한 여자아이가 온유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안녕.”
“이름이 뭐야?”
“이온유.”
“나는 순정이야. 오순정.”
순정이도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 손을 잡고 있었어요.
“온유도 4반이니?”
“네?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그래? 어디 보자…. 온유도 4반이구나! 순정이랑 같이 들어가자.”
순정이네 엄마의 도움으로 온유는 무사히 반을 찾아갔어요. 온유와 순정이는 나란히 책상에 앉았어요.
“반가워요.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과 1년 동안 함께할 김유월 선생님이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간단하게 안내사항만 전달하고 끝내도록 할게요. 다들 알림장 가져왔죠?”
“네!”
온유는 큰 소리로 대답하며 가방에서 알림장을 꺼냈어요. 알림장은 온유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빨간색이에요. 선생님이 내일 필요한 준비물을 설명하자 온유가 허겁지겁 필통을 꺼냈어요. 참, 필통은 온유가 세 번째로 좋아하는 남색이에요. 순정이의 필통은 연두색 같기도 하고 하늘색 같기도 한 예쁜 색이었어요. 온유는 다시 시선을 돌려 필통을 열었어요. 하지만 알림장에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어요.
“온유야, 연필 안 가져왔어?”
온유의 얼굴이 빨개졌어요. 남색 필통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당황해하는 온유를 보고 말했어요.
“연필이 없는 친구는 짝꿍에게 빌리도록 해요.”
온유는 순정이가 빌려준 연필로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적었어요. 그리고 조금 후회했어요. 엄마랑 가방을 쌌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다친 손바닥이 더 쓰라린 느낌이에요.
“다들 내일 봅시다.”
“안녕히 계세요!”
드디어 초등학교에서의 첫날이 끝났어요. 온유는 교문에서 순정이와 순정이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달려갔어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부터 온유의 가슴이 콩콩 뛰었어요. 이제 집으로 들어가면 온유의 방이 있으니까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