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 꽃 좀 봐. 정말 곱다!”
“와, 무지개가 떴어!”
어디서 들리는 소리냐고요? 제가 사는 리베 마을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아이의 볼같이 귀엽게 물든 분홍빛 꽃, 빵집 아저씨가 정성껏 구운 갈색빛 빵,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한 시내…. 조화롭게 모인 색들은 리베 마을의 자랑이지요. 마을 사람들과 숲속 동물들이 어울려 사는 행복한 마을이기도 합니다.

“안녕, 에반! 오늘 날씨가 참 좋지?”
“소피, 안녕! 날씨가 정말 좋다. 당근을 캐러 가기에 딱 좋겠어. 같이 갈래?”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돼. 여행을 떠날 거거든.”
“우아, 정말?”
네, 오늘은 제가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기뻐서 웃음이 계속 새어 나오네요.
“여러분, 소피가 여행을 떠난대요!”
마을 사람들과 숲속 동물들이 모여 배웅해 줍니다.
“소피, 조심히 잘 다녀오렴.”
“갔다 와서 재밌는 이야기 들려줘!”
“맛있는 것도 많이 가져와!”
“네, 알겠어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사랑스러운 리베 마을, 잠시 안녕.

‘거의 다 왔어!’
드디어 리베 마을이 보여요. 그런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예쁘고 사랑스럽게 피었던 꽃에도, 따스함이 넘쳤던 햇살에도, 눈부시게 빛나던 시내에도, 그 어떤 것에도 색이 없습니다.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저뿐입니다. 급히 마을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아저씨, 빵집 아저씨! 우리 마을 색들이 다 어디 간 거죠? 아저씨한테도 아무 색이 보이지 않아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
“난 이제 빵을 굽지 않아. 이제부터 날 빵집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거라.”
아저씨가 제 손을 뿌리치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늘 웃던 아저씨였는데….
꽃집 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꽃집 언니도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웃음기 역시 사라졌습니다.
“소피, 넌 색이 있어서 참 좋겠구나. 이 마을에는 이제 색이 없단다. 참, 나에게는 더 이상 꽃도 없으니 꽃집 언니라 부르지 말고.”
이웃 아주머니, 친구들에게도 이유를 물었지만 저를 귀찮아할 뿐 아무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숲으로 가서 동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동물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콩콩
“에반?”
도망치듯 뛰어가던 에반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니, 소피? 여행에서 돌아온 거야? 어때, 여행은 재미있었고? 다시 보니 진짜 좋다!”
반가움도 잠시, 에반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습니다.
“많이 놀랐지? 마을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웃음을 잃어가면서 색이 사라졌어. 걷잡을 수 없었지. 이리 와 앉아, 이야기해 줄게.”
소피 네가 여행을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에 한 여행객이 찾아왔어. 그는 자신을 론이라고 소개했어. 론은 마을이 정말 예쁘다면서 칭찬했지. 마을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졌어. 그런데 우연히 내가 론과 빵집 아저씨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
“론, 빵 한번 먹어볼래요? 방금 구운 빵이라 아주 맛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군요! 저… 이런 얘기 제가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워낙 좋은 분이니 말씀드릴게요. 제가 아까 이상한 말을 들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당신을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마을 사람들이요? 그럴 리가요. …그리고 전 이기적이지 않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당신이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고 수군거리는 거예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서요.”
“뭐라고요? 나는 매일 정성스럽게 구운 빵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정말 실망이네요!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죠?”
소피, 나는 마을 사람들이 빵집 아저씨를 욕하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너도 알지? 토끼의 청력은 월등하다는걸. 다 론의 이간질이었지. 이간질은 계속됐어.
“이렇게 아름답고 착한 꽃집 아가씨를 왜 욕하는지 모르겠네. 아가씨가 누구를 헐뜯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럼요! 저는 항상 마을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했어요. 다시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론은 마을 사람들 사이를 이간했어. 마을에는 크고 작은 싸움들이 매일 일어났지. 그래서 모든 사실을 아는 내가, 사람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려고 했어. 그런데 론이 갑자기 큰 소리로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거야.
“여러분! 동물들이 우리 영역을 침범하려 합니다! 저들과 소통해서는 안 됩니다! 저들을 내쫓읍시다!”
마을 사람들은 론의 말에 모든 동물들을 숲으로 내쫓았어. 나도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났지. 깊은 숲속에서 숨어 지내다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몰래 내려와 봤더니 세상에, 마을에 색들이 사라진 거야. 웃음도 생기도 다 사라져 있었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