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연영이에게 생긴 친구

×월 ×일 월

고등학생이 된 지 한 달. 오늘도 난 적응 실패다. 다른 애들은 웬만큼 친해졌던데 난 아직도 어색하다. 인사만 겨우 하고 있으니….
짝이라는 애는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있다. 나도 숫기가 없지만 황다린은 더 심한 듯.
고등학생이 돼서도 어디 안 가는 이 소심한 성격. 진짜 별로다. 내일은 어떡하지?

×월 ×일 수

진영이한테 만나자고 연락했다. 친구들하고 조별 수행평가 해야 해서 안 된단다. 며칠 전에는 반 친구랑 놀기로 해서 안 된다더니.
이제 다른 학교이기도 하고, 새 친구들과 잘 지내야 하는 건 알지만 7년 친구인 내가 뒷전으로 밀린 것 같아 속상하다. 누구는 말도 잘 못 붙여서 혼자 다니는구만.
휴, 신세타령하면 뭐하냐. 일찍 잠이나 자자.

×월 ×일 금

수행평가 공지가 쏟아졌다. 오늘만 해도 3개. ―ㅅ―;;
영어 수행평가를 모둠별로 발표하라 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앞 번호인 연솔이랑 짝이 됐다. 연솔이는 애들도 잘 챙기고, 수업 시간에 집중도 잘해서 걱정이 없다. 반장답다.
문제는 다린이다. 우리 반 인원이 홀수라서 마지막 번호는 반장이 있는 조에서 같이 하라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봐 왔지만 다린이는 공부든 수행평가든 전혀 관심 없어 보인다.
다린이도 다린이지만 애들 앞에서 어떻게 발표하지? 벌써 떨린다. 덜덜.

×월 ×일 일

다린이는 할머니네 간다고 해서 연솔이랑 둘이 영어 수행평가 때 주고받을 문장을 짰다. 연솔이는 원래 알던 사이처럼 사람을 편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소심한 내가 의견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고등학교 올라와서 친구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게 얼마 만인지!
연솔이네 집은 우리 집에서 5분도 안 걸려서 내일부터 같이 등교하기로 했다.
학교 갈 맛 난다!

×월 ×일 화

학교 끝나고 영어 수행평가 대화를 맞춰봤다. 다린이는 한마디도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연솔이가 별 말 안 해서 나도 아무 말 안 했지, 생각할수록 화난다. 고등학교는 수행평가 점수가 중요해서 관리 잘해야 하는 것 모르나? 같이 하는 수행평가는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여야지. -_-+
세계사 수행평가는 언제 하나. 모르겠다, 머리 아파.

×월 ×일 수

연솔이랑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다른 친구들하고도 가까워진 것 같다. 이게 바로 연솔이 효과?!
어제 일 때문에 그런지 다린이 쪽은 하루 종일 쳐다보지 않았다. 짝꿍이고, 내일 영어 대화 연습 때문에 어차피 마주칠 텐데 너무했나.

×월 ×일 금

다린이가 오늘은 더듬더듬 문장을 외워 왔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잘할 것 같아서 연솔이랑 발음 연습을 도와줬더니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다린이를 나쁘게 말했던 거 취소, 취소!
그나저나 쉬는 시간마다 연솔이랑 다린이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는 거지?

×월 ×일 일

진영이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얼굴 보고 반가워서 삐친 척하기 실패했다.
진영이에게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가 잔소리만 엄청 들었다. 예전부터 해주고 싶던 말이라는 둥, 친구니까 해주는 말이라는 둥 어쩌고저쩌고.
요약하자면, 마음가짐 좀 고치란다. 혼자 지레 겁먹고 소심해져서 입 다물고 있으니까 다른 애들이 못 다가가는 거라면서. 그리고 넌 충분히 괜찮은 애니까 먼저 다가가 보라고.
김진영, 좀 감동이다. 역시 7년 친구.
진영이 말대로 진짜 내가 먼저 다가가도 되는 걸까?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 소심한 성격 좀 버리고 내일 친구들한테 먼저 인사해 보자!
아차! 내일부터 청소 당번이다. ㅠㅠ 내일아, 오지 마라.

×월 ×일 월

오늘은 뒷자리인 예은이랑 소정이한테 먼저 인사했다. 애들도 반갑게 인사해 줘서 기분 좋았다. 학교 끝나고는 나한테 먼저 인사해 줬다. 헤헷.
고등학교 입학 때가 생각난다. 연솔이가 첫날 나한테 먼저 인사해 줬다. 그래서 진짜 연솔이랑 친해지고 싶었다. 그 마음은 나나 다른 애들이나 다 똑같을지도.

×월 ×일 화

연솔이 대단하다. 쓰레기 버리고 올라오니까 연솔이가 다린이 영어 말하기를 도와주고 있었다. 다린이가 공부하기 싫어하는 줄 알았지 어려워한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 걱정만 하느라 다린이 상황은 신경을 안 썼다.
연솔이가 괜히 친구가 많은 게 아닌가 보다. 나도 나만 보지 말고 주위 좀 봐야겠다.

×월 ×일 목

오늘은 셋이 햄버거 먹으면서 내일 있을 영어 대화 수행평가 연습을 했다.
내가 소심해서 발표하기 진짜 떨린다고 털어놓으니 다린이가 자기도 완전 소심하다고 했다. 맨날 엎드려 있는 것도 사실 힘들었다고. 뭔가… 다린이하고 통하는 느낌이다.
연솔이가 계속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 줘서 힘이 났다.
연솔이랑 다린이랑 이야기해 보니까 나랑 비슷한 게 많았다. 취향이나 좋아하는 음식도 그렇고, 성격도 잘 맞는다. 다린이는 말을 한번 트니 은근 말이 많다. ㅋㅋㅋ
다음 주부터는 애들이랑 같이 시험공부 하기로 약속했다. 일종의 스터디 그룹? 수행평가 마치면 열공해야지!

×월 ×일 금

영어 수행평가 무사히 끝! 애들이 발표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부끄럽다. (^///^)
좋은 친구도 생기고, 친구들한테 인정도 받고 기분 진짜 좋다~~~
친구 사귀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꾹 닫았던 내 마음부터 열고, 내가 먼저 다가가면 친구의 마음도 열린다. 그동안 내가 너무 소심하다는 핑계로 꿍하게 있어서 친구 사귈 기회를 놓쳤는지 모른다.
너무 소심하게 굴지 말자, 이연영. 나부터 괜찮은 친구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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