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구 上

“아빠, 저 별은 이름이 뭐야?”
“저건 북극성이야.”
“그럼 저 별들은? 북두칠성하고 모양이 비슷해.”
“작은곰자리. 북극성이 이 별자리에 속한 별이야.”
“와! 나는 곰이 제일 좋아.”
“하하, 아빠도 곰이 좋아.”

크아앙- 달각.
머리맡에서 시끄럽게 포효하는 곰… 시계에 꿀밤을 먹였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잠이 덜 깬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가 온몸을 휘감아 잠이 확 달아났다.
또 그 꿈이다. 시골집에서 할머니랑 아빠랑 엄마랑 살던 어렸을 적, 밤이면 다 같이 대청마루에 앉아 함께 별을 봤다. 아빠는 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을 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했다.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창문을 닫고 거실로 나갔다. 된장찌개 냄새가 난다. 언제나처럼 식탁에 음식이 차려져 있다. 쪽지와 함께.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식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맛이 없다.
탁.
숟가락을 내려놨다. 단숨에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도망치듯 현관을 나왔다. 아, 맞다. 인사.
“다녀올게요.”
사진 속 아빠가 웃는다.

드르륵.
“유혜성 왔다!”
커다란 물체가 날 덮쳤다. 나는 억지로 그것을 밀어내고 시야를 확보했다. 보나마나 홍명찬이다. 우리 학교에서 키도, 몸집도 제일 큰 녀석.
“넌 어떻게 매일 똑같은 수에 당하냐? 이런 애가 과학은 1등급인 게 신기해.”
안경을 들어 올리며 비아냥대는 바가지 머리는 윤재준.
이 둘은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중학교 1학년 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애들이다. 그 뒤로 계속 같이 다녔는데 고등학교도 나란히 진학해 5년째 지겹도록 붙어 있다. 심지어 동아리도 같다.
“아무튼, 이것 좀 봐.”
재준이가 신문을 펼쳤다.
“뭔데?”
그제야 홍명찬은 나에게서 떨어져 신문을 살폈다.
“모레 10시 반쯤에 유성우가 쏟아진대. 그리고 오늘 밤부터 내일까지 하루 종일 비가 오지!”
“그게 뭐?”
“이 답답이들! 이번 달 말에 동아리 전시회 있잖아. 홍명찬은 그렇다 치고, 너는 부장이면서 신경 안 쓰냐? 비 온 뒤면 하늘이 맑을 텐데 유성우가 얼마나 잘 보이겠어. 내 말이 뭔 말인지 알겠어?”
갑자기 뇌가 파박 하고 돌았다. 요컨대 우리 천문부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유성을 포착해서 전시하자 이 말이군. 그러나,
“단순해.”
“뭐가?”
명찬이와 재준이는 동시에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유성우 사진은 인터넷이나 교과서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 그냥 찍으면 뻔하고 재미없을 거야.”
“좋아, 그 적극적인 자세.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그건… 모르지.”
탁탁.
담임 선생님 등장이다.
“곧 고3 될 놈들이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는 거냐?”
“내년부터 바쁘려고요!”
명찬이의 대답에 선생님이 뒷목을 잡았다.
“어이구, 네 마음대로 해라. 참, 모두들 이번 학교 축제 때 동아리 전시회 있는 거 알지? 대충 할 생각하지 말고, 추억 쌓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해 봐. 잘한 동아리는 상금도 준다.”
상금도 있었어? 의욕이 불타오른다.
딩 동 댕 동.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첫 시간은 담임 선생님 과목, 화학이다.
“자, 조용히 하고 수업하자. 교과서 펴라. …오늘 18일이지? 18번, 유혜성이 첫 문단 읽어봐.”
“분자는 물질의 상태와 온도에 따라서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데, 이 운동을 분자의 열운동이라고 한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분자의 열운동이 활발해지며….”
교과서를 다 읽자 선생님이 설명을 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열기구를 예로 들어보자. 열기구가 하늘에 뜰 수 있는 원리가 뭔지 아는 사람?”
“뜨거운 공기요!”
명찬이가 아는 게 나왔는지 웬일로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맞다. 공기가 높은 온도로 가열되면 뜨거워지면서 가벼워진다고 중학교 때 배웠을 거야. 이때 가벼워진 공기가 활발하게 위로 올라가면서 열기구가 하늘에 뜨게 되는 거지. 분자의 열운동도 이 원리하고 똑같다고 보면 돼.”
열기구…? 순간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더 이상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명찬이와 재준이를 동아리실로 불렀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어?”
“열기구를 이용하자.”
“열기구?”
“열기구에 캠코더를 달아서 유성우가 떨어지는 하늘을 찍는 거야. 어때, 근사하지? 잘 찍히면 나중에 동아리 홍보할 때도 쓰고.”
“아이디어는 괜찮은데 문제가 많아.”
재준이가 안경을 들어 올렸다.
“첫째, 동네 불빛이 강해서 여기에서 찍기에는 무리가 있어. 둘째, 열기구는 위험해. 만드는 것도 어렵고. 차라리 드론으로 찍는 게 나아.”
역시 윤재준. 그러나 난 너보다 먼저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네 가서 촬영하려고. 할머니 집 주변이 벌판이라서 별도 잘 보이고, 촬영하기도 좋을 거야. 그리고 드론은 밤에 띄우기에 너무 시끄러워. 그래서 열기구가 딱이지. 열기구는 걱정 마. 안 그래도 저번 주에 과학부에서 열기구 실험했다길래 과학부장한테 빌려달라고 했어.”
“오! 오랜만에 부장답네.”
명찬이가 박수를 쳤다.
“그것보다 우리 할머니 댁이 시골인데 동아리 애들이 갈 수 있을까?”
“학원 다니는 애들이 많아서 아마 거의 못 간다고 할걸. 다 가는 것도 민폐고. 하지만 나는 간다.”
“어이, 유혜성과 윤재준이 가는데 당연히 나도 가야지. 우리 하면 뭐다?”
“의리.”
“그렇지!”
우리는 미리 장비를 챙겼다. 천체망원경, 카메라, 삼각대, 캠코더, 열기구. 혹시라도 열기구가 떨어져 캠코더가 고장 날까 봐 에어캡도 준비했다. 완벽해. 이제 가기만 하면 돼.

철컥.
“왔니?”
엄마다. 엄마가 나보다 먼저 집에 있는 날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침 안 먹었어? 국도 반찬도 그대로던데?”
“입맛 없어서.”
“왜 어디 아파? 된장찌개 먹고 싶다며. 데워줄 테니까 좀 먹을래?”
“아니. …나 모레 동아리 촬영하러 할머니네 가. 돈 좀 줘.”
“할머니가 오랜만이라고 좋아하시겠네. 돈은 내일 저녁에 줘도 될까? 돈을 뽑아둔 게 별로 없어서….”
매번 내 앞에서 기가 죽은 것처럼 말하는 엄마가 싫다.
“됐어.”
나는 방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곧바로 후회가 몰려온다. 그렇게 기분 나빠할 것도 없는데. 하, 오랜만에 엄마랑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좀 좋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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