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성 왔다!”
몸을 살짝 옆으로 틀었다. 날 덮치려던 명찬이가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날아 바닥으로 추락했다.
“와, 유혜성 드디어 피한 거냐?”
재준이가 안경을 고쳐 쓰며 감탄했다.
“아야…. 감히 나를 피하다니!”
명찬이가 손을 털며 일어났다.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물었다.
“다들 부모님께 허락은 맡았어?”
“물론이지. 내일 몇 시에 만나?”
“2시 30분이 출발 시간이니까 버스터미널에서 2시에 보자.”
“오케이. 윤재준, 너 오늘 일찍 자라. 늦잠 자다 차 못 타지 말고.”
“내가 너냐?”
“어쭈, 지금 나랑 싸워보자는 거냐.”
“됐다, 덩치만 커가지고…. 쯧쯧.”
“뭐야? 자, 덤벼.”
시끄러운 것들…. 얘네랑 있으면 조용한 날이 없다.
철컥.
“왔니?”
“오늘도 일찍 왔네?”
집 안 가득 진한 된장찌개 냄새가 난다.
“아들이랑 같이 밥 먹으려고 일찍 왔지. 어서 손 씻고 앉아. 밥 먹자.”
어제 일 때문에 엄마를 마주 보기 민망했지만 담담한 척 식탁에 앉았다.
“후 불어서 먹어. 뜨거워.”
국물을 한 숟가락 떠 후 불어 먹었다. 따뜻하다.
“…혜성아, 할머니네 혼자 갈 수 있겠어?”
“내가 어린앤가. 명찬이하고 재준이도 같이 가.”
“우리 혜성이 보면 깜짝 놀라시겠네. 자… 여기 돈. 늦게 줘서 미안해. 애들하고 잘 다녀와. 갈 때 할머니 선물도 사 가고.”
“알았어…. 맛있네.”
엄마가 웃는다.

여름이면 물 튀기며 놀았던 개천을 지나고, 파도처럼 초록빛 물결을 치는 들판을 지나자 담 위로 할머니 집의 푸른 기와가 삐죽 보였다. 곧바로 달려갔다.
“할머니!”
“아이고, 혜성이 왔구나!”
할머니는 마당을 뛰어나와 나를 꼭 끌어안았다. 할머니 냄새… 그리웠다.
“안녕하세요!”
“그래, 우리 혜성이 친구들이구나. 밥 아직 안 먹었지? 어서 들어와, 금방 밥 차려줄게.”
할머니 집은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어릴 때 내가 그렸던 우리 가족 그림이 아직도 누런 벽에 남아 있고, 삐걱대는 마루와 숨바꼭질할 때 숨던 자개장롱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어라.”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기억 속 어릴 적 그때의 맛과 똑같다.
“할머니, 저희 좀 있다 별 보러 나갈 거예요. 기다리지 말고 주무세요.”
“그래, 그래. 좋을 때지. 별 보는 거 좋아하는 건 네 아빠랑 똑같구나.”
우리는 벌판으로 갔다. 열기구를 띄울 자리를 정하고, 캠코더와 천체망원경을 설치했다. 벌써 10시가 다 되어간다.
“우아, 별 엄청 많아!”
평소 냉철한 재준이가 하늘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의 군무를 보는 듯하다. 역시 도시와는 다른 시골 하늘.
“뭐하고 있어. 열기구 띄워야지!”
열기구 안에 불을 붙였다. 명찬이는 열기구와 연결된 줄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이럴 때 보면 우리는 정말 손발이 척척 맞는다.
캠코더를 단 열기구가 조금씩 하늘로 올라갔다.
“잘 녹화될까? 유성우가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잖아.”
명찬이가 줄을 풀며 걱정했다. 설마 한 번이 안 찍힐까….
“믿어보자. 제대로 찍히면 대박이고.”
우리 셋은 나란히 자리 잡고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한바탕 비가 와서 그런지 별들이 영롱하다. 그때의 기억이 또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빠, 저 별은 이름이 뭐야?’
‘저건 북극성이야.’
‘그럼 저 별들은? 북두칠성하고 모양이 비슷해.’
‘작은곰자리. 북극성이 이 별자리에 속한 별이야.’
유난히 작은곰자리가 빛나 보인다. 아빠가 나를 지켜보는 듯하다.
“혜성아, 저기!”
현재 시각 10시 23분. 첫 번째 유성우가 긴 꼬리를 그리며 비처럼 내렸다. 숨이 턱 막혔다. 아름다운 별 비가 하늘에서 계속 쏟아졌다.

“유혜성, 너 아까부터 계속 기침해.”
“안 되겠다. 이 정도 찍었으면 됐으니까 그만 들어가자.”
“아냐, 괜찮아. 좀만 더 찍고.”
사실 진짜 춥다. 그런데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찍어보겠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너 그러다 몸살 나. 그만 들어가자.”
“명찬아, 얘 이상해. 좀 부축해 봐.”
명찬이를 의지해서 한 발짝 내디뎠다. 순간 몸이 휘청이더니 하늘이 180도 돌았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열기구가 하늘을 날고 있다. 높이 오를수록 별과 가까워진다. 하늘을 꽉 메운 별들이 무척 밝아서 땅에 있는 꽃들까지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엄마, 저 별은 북극성인데 작은곰자리에 속한 거다!”
“우아, 우리 아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빠가 알려줬어. 저 별 할머니한테 줄 거야. 그래도 돼, 아빠?”
“하하, 그럼! 할머니가 좋아하시겠네.”
누군가 내 머리에 손을 얹는다. 따뜻한 손길에 눈을 살며시 떴다. 엄마다. 엄마 옆으로 할머니, 명찬이, 재준이… 모두 날 바라보고 있다.
“아이고, 이제 정신 좀 들었나 보네.”
“혜성아, 괜찮아? 물 좀 줄까?”
“엄마… 어떻게 왔어?”
“아줌마한테는 내가 전화했어. 길이 어두워서 할머니 집을 찾을 수가 있어야지.”
재준이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명찬이도 거들었다.
“아줌마가 할머니께 전화드려서 할머니가 데리러 오셨어. 아줌마도 내려오시고.”
“그냥 몸살인데 뭣 하러 여기까지 와….”
“엄마도… 혜성이랑 별 보고 싶어서.”
아랫목이 따뜻하다.
「아들! 전시회 잘 하고 있어?」
“어, 당연하지. 유성우가 기가 막히게 찍혔잖아. 다들 우리 동아리 사진이랑 영상 보고 난리야.”
「고생한 보람이 있네. …아빠가 좋아하시겠다.」
“…응. 집에서 봐!”
「그래, 수고해.」
동아리 전시회 영광의 1등은 천문부가 차지했다. 과학부는 열기구를 제작해 준 자신들의 공로가 크다고 떠들어댔다. 여하튼 과학부가 운동장에 띄운 열기구 인기도 대단했다.
열기구가 또 떠올랐다. 열기구가 떠오른 하늘은 시골에서처럼 꿈속에서처럼 반짝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눈에는 충분히 반짝거린다.
아빠, 보고 있어? 나는 잘 지내는데, 아빠는? 곰들도 잘 지내?
“어이, 유혜성 부장님! 선생님이 찾으신다. 어여 가서 상금 받아오세요.”
“오케이!”
아빠 있는 데는 늘 반짝이지? 아빠가 볼 때 나도 반짝거렸으면 좋겠어. 별들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