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나라 이야기 下

“먹 장로님, 안녕하세요.”
“오, 한글들이로구나.”
“어? 붓 장로님은 안 보이시네요?”
“훈장 어른이 어제 글씨를 쓰고 나서 말린다고 대청으로 가지고 갔단다. 아마 거기 기둥에 달려 있을걸? 왜, 전할 말이라도 있느냐?”
“아, 아뇨. 그냥 두 분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것이 무엇이냐?”
자음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먹 장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잠잠히 듣고 있던 먹 장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얘들아, 저기 걸린 글들을 누가 쓴 줄 아니?”
먹 장로는 훈장님 방에 걸린 표구 액자를 가리켰습니다.
“그야 먹 장로님과 붓 장로님께서 쓰신 거죠.”
“붓 장로가 없다면 내가 글씨를 쓸 수 있을까?”
“에이, 당연히 안 되죠. 붓 장로님이 있어야 글씨를 쓸 수 있잖아요.”
“맞다. 우리 둘은 함께했을 때 글을 쓸 수 있단다. 그럼 너희 한글은 어떨까? 자음과 모음 중 한쪽이 빠진다면 한글이라 할 수 있을까?”
자음들은 아무 말도 못합니다.
“너희가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했지? 바로 연합이다. 붓 장로와 내가 자신을 내세우기만 했다면 아무것도 쓸 수 없었을 게야. 너희도 모음과 함께 어울려 보렴. 모두 최고가 될 테니.”
자음들은 조용합니다. 한참 후, 지읒이 말합니다.
“장로님, 저희 생각이 짧았어요. 지금까지 자음이 최고라고만 생각했지, 모음이 없는 세상은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정말 감사해요.”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면 정말 다행이구나. 어서 가보거라. 모음들에게 너희의 새로운 의견을 말해줘야지.”
“네, 장로님.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
자음들이 서둘러 회의 자리로 뛰어갔습니다. 모음들이 이미 모여 있습니다. 벼루와 붓과 먹은 한글이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회의를 시작합니다.
“두 번째 회의를 시작할게. 모음부터 이야기해 볼까?”
“사실 아까 붓 장로님을 만났어. 대청에 계시더라고.”
자음들이 깜짝 놀랍니다. 하지만 곧 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자음에게 없는, 모음만이 가진 장점이 없냐고 여쭤봤지. 그런데 붓 장로님은 우리 중에는 아무도 잘난 글자가 없다고 하시는 거야. 자음이든 모음이든 연합하지 않는다면 다 보잘것없대. 붓 장로님도 먹 장로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별 쓸모없을 거라면서….”
“큼큼.”
피읖이 목을 가다듬고 말을 잇습니다.
“실은 우리도 먹 장로님을 찾아갔었어. 붓 장로님과 같은 말씀을 주시더라. 우리가 연합해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고, 올바른 뜻을 전할 수 있다고.”
“우리가 태어난 목적도 백성들이 글로 자신의 뜻을 잘 전하게 하기 위해서잖아. 그러려면 우리가 함께해야만 해.”
“치읓 말이 맞아. 그렇게 하지 않아서 우리가 서당 아이의 글을 망치고 말았지.”
치읓 옆에 있던 에가 말했습니다. 어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낀 벼루가 한글들에게 묻습니다.
“자음과 모음 중에 누가 더 우월한지 가리는 회의는 더 이상 필요없을 것 같은데?”
붓과 먹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자음과 모음, 모든 한글들도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어진골 훈민정음 서당에서 붓글씨 대회가 열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서체를 뽐내며 멋진 글귀를 적습니다. 전에 훈장님에게 혼나서 울던 아이도 보이네요. 뭐라고 썼을까요?

아이 머리 위로 큰 그림자가 앉습니다. 훈장님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합니다. 아이가 해사하게 웃습니다. 화선지 안에서 한데 어울린 한글들도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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