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고 아이들이 모두 떠났어요. 매끈한 길이 말했어요.
“곧 있으면 너도 매끈한 길이 될 거야.”
“그럼 더 이상 아이들이랑 못 놀겠네.”
“어린애들이랑 노는 게 뭐가 좋니? 앞으로는 번쩍번쩍한 차도 지나가고, 멋쟁이 구두를 신은 어른들도 지나다닐 텐데 뭔 걱정이야.”
울퉁불퉁한 길은 자기를 좋아해 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매끈한 길이 되는 날이 천천히 오기만을 바랐어요. 하지만 그날은 아주 빨리 찾아왔어요.
마을 이장님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울퉁불퉁한 길을 둘러봤어요.
“길이 워낙 울퉁불퉁해서 사람이 잘 안 다녀요.”
“딱 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서 이 길도 시멘트로 덮으려고 했는데….”
“이장님, 옆에 시멘트 길이 있는데 또 길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없애는 것이 좋다고 전에도 말씀드렸잖습니까, 차라리 없애고 땅을 파는 게 더 이익입니다.”
울퉁불퉁한 길은 깜짝 놀랐어요.
‘내가 없어지다니!’
“안 돼요!”
누군가가 외쳤어요. 마을 어른들이었어요.
“이장님, 소식 들었습니다. 이 길을 없애신다고요?”
“아… 예, 예. 근데 무슨 문제라도?”
“이장님, 이 길 없애면 안 돼요. 아이들이 여기를 정말 좋아해요. 아이들한테는 놀이터 같은 곳이에요.”
이장님 옆에 있던 사람이 풋 하고 웃었어요.
“아, 죄송합니다. 고작 애들이 논다고 길을 없애지 말라고 하니 어이가 없어서 그만. 여러분, 길을 하나 없애고 안 없애고가 애들 장난인 줄 아십니까. 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저희도 마을을 위해 하는 말이에요.”
“맞아요. 마을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이 길은 아이들이 놀면서 자연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에요. 잘 가꾸면 좋은 교육 공간이 될 거예요.”
“이장님, 우리 민지도 애들이랑 못 어울려서 걱정이었는데, 여기서 친구도 많아지고 활발해졌어요. 이 길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길이에요.”
“아, 여러분들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시 회의를 해보고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장님, 이 길을 없애지 말아달라고 꼭 좀 부탁드릴게요.”
울퉁불퉁한 길은 마을 사람들이 정말 고마웠어요.

매끈한 길이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무섭지 않아? 네가 없어질 수도 있잖아.”
“처음에 나무랑 꽃들이 없어졌을 때는 정말 무서웠거든. 신기하게 지금은 괜찮아. 아이들이랑 같이 놀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마을 사람들이 나를 지켜주려고 한 것도 고마워.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네가 없으면 외로울 거야. 사실은 너에게 매일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풀 내음이 나서 좋았어.”
“고마워.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없어지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다닐 길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오르르 뛰어왔어요.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자기 자리를 잡고 놀 거리를 찾았어요. 소년과 친구, 꼬마 소녀는 웅크리고 앉아 작은 씨앗에서 뻗어 나온 꽃봉오리를 바라봤어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앞으로도 여기서 쭉 놀 수 있대.”
“나도 들었어, 이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계속 꽃씨 심어도 돼?”
“그럼! 이번에는 꽃 말고 먹을 것도 심자.”
“난 토마토.”
“난 블루베리.”
“난 무조건 큰 거 심을래. 음… 수박?”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어요. 울퉁불퉁한 길도, 매끈한 길도 따라 웃었어요.
울퉁불퉁한 길은 여전히 울퉁불퉁 못생겼어요. 매끈한 길은 여전히 매끈매끈해서 차가 많이 다녀요. 그런데 매끈한 길을 달리던 사람들은 한 번씩 차를 멈추고 울퉁불퉁한 길에서 쉬었다 가요. 울퉁불퉁한 길에 활짝 핀 꽃과 싱그러운 나뭇잎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거든요. 여러분도 쉬었다 가실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