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간

누구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빠 엄마입니다. 제가 언제 말하기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걸어 다녔는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아빠 엄마는 기억합니다.
아빠 엄마에게 들은 어린 날의 저는 애교 많고 재롱 많고 개다리춤을 잘 추는 아이였습니다. 아빠에게 뽀뽀도 자주 하는 딸이었다는데, 지금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아빠 엄마가 애교 좀 부려보라고 하면, 경상도 여자라 그런 거 할 줄 모른다고 정색을 합니다.
“다른 집 딸들은 잘도 애교 부리더만 너는 왜 그렇게 애교가 없냐.”
못내 서운하셨는지 하루는 아빠가 푸념을 하더군요. 언제나 저를 먼저 생각해 주고, 제가 먹고 싶은 것 다 사주고,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아빠에게 그것 하나 못해드릴까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애교는 무리였습니다.
예전에 아빠는 저녁에 일을 나갔다 아침에 퇴근하셨습니다. 학교 가기 전에 잠깐 아빠 얼굴을 볼 수 있었죠. 요즘은 오후에 출근했다 밤늦게 들어오시지만 여전히 쉬는 날 빼고는 아빠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학교 가기 전뿐입니다. 아빠와 더 서먹해질까 봐 ―애교는 못 부려도― 괜히 학교 가기 힘들다고 학교까지 데려달라고 조릅니다. 짧은 몇 분이지만 아빠와 같이 차를 타는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이렇게 서로 볼 시간이 없다 보니 어디 놀러 가기도 힘든 우리 가족에게 함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학생캠프 때, 부모님들과 함께 양로원에서 봉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마침 아빠도 이날 시간이 되었지요. 학생들은 어르신들에게 노래와 율동을 보여드리고 양로원을 청소했습니다. 엄마들은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고, 아빠들은 학생들이 하지 못하는 힘쓰는 일이나 수리 작업을 맡았습니다. 아빠 그리고 엄마, 동생이랑 다 같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가 워낙 무뚝뚝해서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요.
우리 가족을 위해 잠을 줄이면서까지 열심히 일하시는 아빠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외로워하지 않도록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흰머리도 뽑아드려야겠습니다. 어릴 때처럼 귀여운 애교를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을 표현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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