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나

요즘 군대에 간 형에게 종종 걸려오는 전화가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막상 통화하면 여전히 어색하지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두 살 차이. 이 사이를 좁히지 못하고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싸움 없는 형제지간이 세상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우리는 꼭 필요할 때 아니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부를 꽤 열심히 하는 편이다. 고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 중학교와 급이 다른 학업량에 너무 힘들었다. 혼자 우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형이 자꾸 말을 걸어왔다.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시큰둥했지만, 형은 계속 장난을 치거나 학교 이야기, 믿음 이야기를 하면서 힘이 되는 말을 해주려 애썼다. 조금씩 우리 사이는 풀렸고 여름휴가 때 가족 여행을 가서 부쩍 가까워졌다. 휴가 이후로는 같이 쇼핑까지 다녔다. 형의 깨알 자랑을 하자면, 형은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 어디를 가나 ‘패피’로 통한다. 패.션.피.플. 형은 내 옷을 골라주었고 패션 조언도 해줬다. 그런 형이 멋지고 고마웠다.
그 해, 형은 아빠 엄마와 종종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살짝 듣기로는 형이 졸업 후 바로 군대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형이 제발 좀 어디 가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는데, 안 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다니 스스로 놀랐다. 어쨌든 형은 부모님 설득에 성공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형은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아끼는 물건과 옷은 나에게 물려줬다. 그리고 그 좋은 봄날, 자기 생일을 6일 앞두고 입대했다.
입대 전날,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밥을 먹고 바닷가를 걸었다. 형이 나에게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어색해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대로 형을 보낼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지지를 샀다. 부모님께 편지를 쓴 적은 있어도 형한테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쓸까 말까, 뭘 써야 하나 엄청 고민했다. 전국에서 특히나 부산 남자가 형제에게 편지를 쓰다니, 정말 손에 꼽힐 일일 것이다. 낯간지러움과 오글거림을 참고 그동안 못했던 말, 하고 싶었던 말을 밤늦게까지 하나하나 써내려갔다. 무려 5장이나 되었다.
학교 갈 준비 하느라 바쁜 아침, 형과 짧은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갔다 와.”
“그래, 잘 있어라.”
나는 미리 사두었던 군인용 시계와 편지를 주고, 부끄러워서 급히 집을 뛰쳐나갔다. 등 뒤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다. 잘 갔다 올게!”
한 번 안아주기라도 할걸 후회됐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휴대폰 전원을 켰더니 장문의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형이었다. 일주일 후, 형이 나에게 보낸 편지도 정말 길었다. 다 미안하다, 고맙다, 힘내라는 내용이었다. 자꾸 눈물이 나서 읽는 데 애먹었다.
주위 사람들이 가끔씩 묻는다.
“형 없으니까 편하지? 좋아?”
그럼 난 이렇게 답한다.
“아니! 없으니까 허전하고 보고 싶다.”
형은 불편하고 어색한 존재였다. 하지만 형은 내가 힘들 때 먼저 다가와 주었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제야 알았지만 형은 소중한 존재다.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행복할 정도로. 사람은 가까이 있을 때 서로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른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다 정작 상대가 없을 때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고 그리워하나 보다.
내 곁에 가까이 머무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과연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수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더없이 특별한 존재다. 나는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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