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살 어린 동생은 어릴 적에 엄청 귀여웠다. 5학년이 돼서는 완전 딴판이다.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 들어오고, 하는 행동마다 밉상이 따로 없다. 요즘은 사춘기가 일찍 온다더니 정말이다. 당연히 엄마는 동생 걱정이 크다. 걱정은 잔소리가 되고 잔소리는 반항을 일으킨다. 그렇게 우리 집 두 여인의 이중창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도 내 골을 울리고 있다.
나는 사춘기가 타격 없이 지나간 사람이라 동생의 일탈에 엄마 못지않게 당황했다. 처음에는 티격태격하는 엄마와 동생을 말리느라 진땀도 꽤나 뺐다.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쨍그랑 -
방 밖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뛰어나갔다. 화분 조각이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동생이 대치 상태였다.
“왜 이래?”
“아, 몰라!”
동생은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다.
“네가 사고 친 건 네가 처리해!”
동생 방으로 쫓아 들어가려는 엄마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엄마는 숨을 크게 한 번 고르더니 쪼그려 앉아 화분 파편을 모았다.
“내가 할게.”
“아우, 대들어도 곱게 대들 것이지 손은 왜 그렇게 흔들어가지고 멀쩡한 화분을 친대.”
나는 엄마를 일으켜 안방으로 밀었다.
뒷수습은 순전히 내 몫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모녀 싸움에 휘말려 애꿎은 화분이 터졌다. 그것도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화초 화분이. 신문지에 조각난 화분을 모아 돌돌 말았다. 다행히 화초는 크게 상한 것 같지 않았다. 바닥에 흩어진 흙을 모아서 화초와 함께 대야에 담았다. 청소기까지 돌린 후, 아빠한테 문자를 보냈다.
「화분 하나랑 흙 좀 사다주세요.
예린이 방 앞에 있는 거실 화분만 한 크기로.」
아빠는 답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아빠였다. 저녁 늦게 들어온 아빠 손에는 화분이 들려 있었다. 아빠는 말없이 화분을 건넸고 나는 말없이 화분을 받았다. 엄마는 아빠의 늦은 저녁상을 차리며 아까의 일을 아빠에게 하소연했다. 아빠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사이 나는 베란다로 나가 대야에 응급 처치 해뒀던 화초를 새 화분으로 조심스레 옮겼다.
화초 이사를 마치고 거실로 들어왔다. 아빠가 동생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한두 시간 사이에 아빠가 퍽 수척해 보였다.
엄마와 동생이 크게 싸우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동생을 깨웠고 저녁에는 화기애애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아침에 엄마는 동생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동생도 계속 삐친 척했지만 어지간히 당황한 눈치였다.
저녁 식사 자리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아빠와 나는 원래 말이 없다. 식탁에서 떠들 사람은 엄마와 동생뿐인데 그 두 사람이 냉랭하니 식사가 고역이었다. 아빠는 서둘러 수저를 내려놓고 TV 앞으로 갔다. 그런 아빠를 두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기가 뭐해서 베란다로 피신했다. 표면적으로는 내 손으로 옮긴 화초를 살펴야 한다는 구실이었다.
화초는 큰 줄기와 작은 줄기가 서로 어울려 살았었다. 작은 줄기가 큰 줄기에 기어올라도 큰 줄기는 밀어내지 않고 자기 어깨를 내어주는 것 같았다. 큰 줄기는 어제의 비극 이후 영 힘을 못 냈다. 대신 작은 줄기만 쌩쌩해서 꼭 큰 줄기를 감고 괴롭히는 모양새였다.
동생은 아빠 옆에 앉아 TV를 보고, 엄마가 식탁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방으로 들어왔다.
“비상사태야, 비상!”
동생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엄마와 싸우고 서로 말 한마디 안 하는 사태를 말하나 싶었다.
“오늘 서희랑 싸웠는데….”
거기까지 듣고도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됐다. 아이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법이다. 서희라는 아이와 동생은 절친한 나머지 싸우기도 자주 싸웠고, 화해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빨랐다. 그런데 오늘은 안 그랬다는 말이었다. 평소라면 엄마에게 떠드는데 냉전 중이니 나를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아, 그랬구나.”
“아니 오빠가 돼서 뭐가 이렇게 성의가 없어. 지금 동생 마음이 아프다잖아.”
성의를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처참히 깨진 화분처럼 초딩 싸움에 고딩 등이 터질 수는 없었다. 내 등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답했다.
“괜찮아.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어.”
“윽, 오글거려. 오빠가 아저씨야? 그래, 이야기 좀 하자. 오빠 말 없는 건 알겠는데 진짜 말 센스 없더라. 저번에는 말이야….”
등 지키려다 따발총 맞았다. 어릴 때는 쫑알거려도 귀여웠는데. 불현듯 어제 동생 방에서 나오던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살짝 거울을 들여다봤다. 딱 그 얼굴이었다.
이틀째 집이 싸늘했다. 엄마의 저기압 영향이었다. 동생은 혼자 집에 들어가기가 불편했는지 학교 끝나면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내가 학교 끝날 때까지 친구 집에서 놀고 있겠다고. 꼼짝없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고, 집 앞 골목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골목을 돌자 동생이 달려왔다.
“오빠!”
어른들은 동생 보고 덤벙거리고 달뜬 아이라고 했다. 이 말을 증명하듯 동생은 신나게 달려오다 제 발에 걸려 혼자 넘어져 버렸다.
“으아앙!”
바지 무릎이 찢어졌고 피로 젖어들었다. 잘 다치는 애인 줄은 알았지만 내 눈앞에서 피가 나니 당황스러웠다. 동생을 업고 집으로 뛰어갔다. 동생의 울음소리에 엄마가 방에서 급히 나왔다.
“무슨 일이야?”
“오다가, 헉헉. 넘어졌어.”
엄마는 침착했다.
“예린이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구급상자 좀 갖다 줘.”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화장실에서 엄마와 동생은 실랑이를 벌였다.

“깨끗이 씻고 약 발라야 돼. 조금만 참아.”
“으아앙. 아파, 아프다고!”
“괜찮아. 다했어.”
엄마는 씻긴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예찬아, 과일 깎아놓을게. 둘이 알아서 먹고, 아빠 오시면 저녁 먹자.”
엄마는 동생 치료만 해주고는 주방으로 갔다. 한랭전선이 오래 머물 기세였다.
동생은 저녁이 먹기 싫어서 자는 척하는 건지, 아까 울어서 정말 피곤한 건지 일찍 잠들어 버렸다. 동생이 있으나 없으나 저녁 식사는 어색하고 조용했다. 밥을 다 먹고 아빠는 TV 앞으로, 나는 베란다로 향했다. 화초의 큰 줄기는 역시나 힘이 없어 보였다.
엄마가 베란다로 나와 내 옆에 앉았다.
“크게 충격받았는데 금세 회복될 줄 알았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거야. 네가 그렇게 뚫어져라 안 봐도 엄마가 낮에 잘 관리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들락날락 안 해도 돼.”
어쩐지, 화초를 대충 옮겼던 것 같은데 흙이 잘 정돈되어 있다 했다.
“그리고 예찬아, 고등학교 올라와서 많이 힘들지? 엄마가 너를 믿어서 하는 말인데 이번 중간고사 결과가….”
“아! 숙제.”
나는 벌떡 일어나 방으로 갔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