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도, 친구도, 가족도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자 작은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폭력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너무 괴롭고 우울한 싸움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제 문제를 아시고 여러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아빠는 당신 때문이라며 제게 미안해하셨지요. 다행히 아빠의 건강도 회복되고 상황이 차차 안정되면서 저는 일상을 되찾아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 중간고사 날, 2주 동안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에 갔습니다. 패혈증, 급성신부전 등을 진단받고 바로 입원했습니다. 얼마간은 열이 42도까지 오르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습니다. 다행히 호전되어 퇴원했지만 마음이 피폐해졌습니다. 학교생활을 잘해보는가 싶더니 또 꼬여버린 상황에 진저리가 난 것입니다.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랄까요. 저는 집에만 틀어박혀 날마다 울며 폐인처럼 생활했습니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봤습니다. 집에서 먹고 게임만 하니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한심해 보여 운동을 결심했습니다. 정신적인 변화를 위해서 독서도 시작했습니다. 점점 마음과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무렵 인천으로 이사했습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들과 새 출발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데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성격 탓에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저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조심스레 엄마가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습니다. 저는 신을 원망했었습니다. 그래도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엄마를 따라 예배를 드리고 이따금 목회자분과 성경 말씀을 살폈습니다. 성경 진리가 맞다고 느꼈지만 괜한 자존심을 내세워 마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순절이 다가왔습니다. 성령을 내려주시는 절기라는 말에 ‘진짜 새 시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기도주간 동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이 아픔과 우울함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제게 중요한 무언가를 깨닫게 해달라고요. 오순절 당일, 가슴이 터질 듯 두근두근 뛰고 하나님 말씀이 머리가 아닌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이후로 갈팡질팡하던 태도가 사라졌습니다. 진리를 인정했고,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성령 축복을 받은 것이 확실했습니다.
여름방학에 열린 학생캠프는 하나님과 형제자매님들에게 마음을 활짝 여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성경 교육 시간에 살핀 사도들의 행적이 감명 깊었습니다. ‘저 정도의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갈 수 있겠구나’ 싶어 성경 공부와 기도에 소홀해질 때면 ‘사도들이 목숨처럼 여겼던 가치 있는 일을 내가 이렇게 가볍게 여겨도 될까’ 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또 내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다 해도 2천 년 전 사도들이 당한 고난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과는 레크리에이션과 여러 활동을 하며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은 제가 소외되지 않도록 따뜻하게 챙겨주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누가 잘못해도 웃기만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형제자매님들이 조금 바보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니 형제자매님들의 모습이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우리를 정죄치 않고 하늘에서 이 땅까지 오셔서 우리에게 사랑만 주셨습니다. 그것만도 죄송한데, 저는 2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스펙터클하게 보내면서 하나님께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가족에게도 참 힘들게 했습니다. 엄마는 아픈 저 때문에 많이 울었습니다. 울다가 어떻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요. 그래도 엄마는 언제나 제 편이 되어 “괜찮다”, “그럴 수 있다” 위로해 주고, 저를 위해 오래도록 기도해 주셨습니다. 착한 동생은 부모님의 관심을 아픈 형에게 모두 빼앗기고도 서운한 기색 한 번 비치지 않았지요.
저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가졌던 헛된 욕심이나 높은 마음이 들 때면 하나님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을 떠올리며 저를 낮추려 노력합니다. 계속 노력하다 보면 남을 존중하는 모습,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 형제자매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모습으로 멋지게 변화되지 않을까요.
외로움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온 시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제가 외롭지 않고, 원하는 일을 다 이루었다면 지금까지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겁니다. 시련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고, 믿음 안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변화 중이라 어렵고 힘든 일이 종종 생기지만 어떤 일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성숙한 인격과 믿음을 완성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