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혼자 서울에서 유학 생활 중인 고3입니다. 새로운 곳에서 학생의 막바지를 보내는 동안 제 영혼도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중학생 시절은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노는 데 푹 빠져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학교를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아빠에게 크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절정은 중3 때였습니다. 연년생 여동생―중2!―과 툭하면 싸우고, 막내는 개구쟁이 일곱 살이라 집이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학교와 집에서 모습이 이런데 믿음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엄마가 몹시 힘들어하셨습니다. 어릴 적에는 성경 말씀을 좋아하고 자기 일을 알아서 하던 큰딸이 중학교에 가서는 완전히 엇나가니 상심이 크셨을 겁니다.
중학생 시기를 넘기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해놓은 것은 없고,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슬슬 미래가 불안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그때,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들어왔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일도 사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으니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철없는 믿음은 여전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님’이란 뿌리가 내려져 있었는지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고민을 다 들어주시고 힘을 주시는 기분이었습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아 마음을 다잡고 서울에 가서 공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모님도 저를 믿고 적극 지원해 주셨지요.
서울 생활은 순탄했습니다. 원래 독립심이 강해 혼자서도 잘 지내는 데다가 친구들도 금세 사귀었습니다. 문제는 시온이었습니다. 새로 옮긴 시온이 낯설기도 했지만 학생부 활동을 제대로 한 적이 없던 터라 어색할 수밖에요. 예배 날 시온에 있으면 어디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이런 저를 학생부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이 알뜰살뜰 챙겨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엄마처럼 또는 언니처럼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학생들은 혼자 사는 저를 위해 집 앞에 몰래 간식을 두고 가거나 시온에서 집으로 갈 때 반대 방향이라도 꼭 저를 먼저 데려다주었습니다. 차차 시온이 편해지고 식구들과 사이가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편한 사람에게 쉽게 짜증을 부리는 제 성격 탓에 곧잘 투정을 부리게 되더군요.
하루는 만사가 힘겨워 애꿎은 선생님에게 다 하기 싫다고 짜증을 냈습니다. 제 손을 잡고 다독여 주는 선생님의 손마저 뿌리쳤습니다. 선생님은 제 손을 다시 붙잡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잘할 거라 믿어요.”
‘믿는다’는 한마디에 적잖이 감동했습니다. 안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저를 믿는다니요.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먼저 입에 달고 살던 “안 해요”, “못해요”, “싫어요”를 저만의 금지어로 정하고 뭐든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오랫동안 멀리했던 성경을 들여다봤습니다. 수험생이라 입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시간을 알차게 써서 그런지 날마다 즐거웠습니다. 또 하나님 안에서 분명한 꿈을 갖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시온의 학생들을 보며 하나님께서 내가 가야 할 길로 나를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겨 ‘나의 미래는 어떨까?’ 하는 설렘으로 무궁한 꿈을 꾸게 되었지요.
그러는 사이 한 친구를 시온으로 인도했습니다. 저와 성격도 잘 맞고 하나님 말씀도 좋아하는 그 친구는 얼마 전에 저와 함께 다른 친구를 열매 맺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잠깐 믿음의 방황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말을 안 들을 때, 엄마는 딸이 엇나갈까 봐 큰소리 한 번 못 내고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전부 속으로 삼키셨을 테니까요. 그리고 묵묵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겠죠.
예전에는 기분이 안 좋으면 엄마에게 풀었는데, 이제는 화가 나도 옆에 화풀이할 가족이 없으니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찬찬히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모두 저에게 있더군요. 그동안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도리어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겁니다. 요새는 어릴 때처럼 엄마와 전화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합니다. 부드러워진 딸을 보고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영의 부모님이신 하나님도 저를 보며 대견해하시겠지요?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는 엄마,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는다”고 말해준 학생부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에게도 고맙습니다. 이따금씩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걱정될 때면 학생부 자매님들이 격려와 칭찬으로 큰 힘을 줍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믿음 덕에 현재 제 믿음은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받기만 했던 신뢰와 좋은 에너지를 이제는 저도 주변에 나눠주려 합니다. 힘들어하는 자매님이 보이면 고민을 들어주고 “할 수 있다, 믿는다”고 격려해 주면서요.
오랜 시간 방황한 저에게 이제라도 시온에서 누리는 기쁨과 축복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학생으로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 하나님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천국 축복을 쌓겠습니다. 그래서 청년이 되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