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

저희 학교에는 50년 넘게 이어진 전통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충무공 탄신 기념 행군’입니다. 교직원과 전교생 등 1000여 명이 21㎞나 되는 거리를 걸으며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싸운 이순신 장군과 수많은 백성들의 애국과 충의를 기립니다. 매우 뜻깊지만 아주 고된 행군이라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행군 날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4월의 봄이었습니다. 이런 완벽한 날에 행군이라니, 시작은 좋았습니다. 친구들도 음악을 듣거나 즐겁게 대화하며 걸었습니다. 2시간이 지나자 친구들의 말수는 급격히 줄었고, 땅만 쳐다보며 묵묵히 걸었습니다.
점심에 1시간의 휴식이 주어졌습니다. 충분히 쉴 줄 알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밥을 먹고 나니 10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재빨리 화장실에 들르고 물통에 물을 채워 오후 행군을 준비했습니다.
오후의 햇살은 살을 태울 듯 뜨거웠고 아스팔트 도로에는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올라왔습니다. 찜통처럼 푹푹 찌는 날씨에 여기저기서 불평이 들렸습니다. 다음 휴식지에 도착하자마자 다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몇 모금 남은 물을 친구들과 나눠 마시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이 고난의 시간이 빨리 끝나길 바랐지만, 끝난 것은 짧은 휴식이었습니다. 누가 툭 치면 맥없이 쓰러질 것처럼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발은 떨어져 나갈 듯이 욱신거렸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눈이 따가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코스가 산행이라니.
“조금만 더 가면 끝나니까 참고 가자.”
선생님은 우리를 다독이셨습니다. 겨우겨우 아픈 다리를 옮겨 산 정상부에 이르자 최종 목적지인 학교 교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없던 힘이 솟아 학교까지 열심히 걸었습니다.
출발한 지 7시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도저히 못할 것만 같았던 21㎞ 행군을 완주했다는 성취감, 행군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3일간 후유증에 시달리긴 했지만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고 전진 또 전진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천국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서도 한 발 한 발 내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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