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에는 두 가지 평등이 있다.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이다. 절대적 평등이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과 조건을 적용하고 똑같이 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그 생명은 소중하기에 모두가 동일하게 보호받아 마땅하다. 또한 일정 학력만 갖춘다면 남녀노소 누구라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를 수 있다. 이것이 절대적 평등이다.
상대적 평등은 차이가 있다. 각 사람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기준을 다르게 적용한다. 말하자면 이렇다. 다섯 살짜리 아이와 육상 선수가 달리기를 한다고 치자. 당연히 육상 선수가 이긴다. 절대적 평등으로 보면, 육상 선수는 어린아이와 같은 출발점에서 출발해서 결승점에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정정당당하게 이긴 것이다. 그러나 정말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상대적 평등이 필요하다.
상대적 평등은 양성평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된다. 남자와 여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등 똑같은 사람이지만 서로 간에 차이가 있다. 무조건 동일한 조건으로 제도와 규율을 만든다면 사회는 더 불공평해지고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을, 이렇게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서로 간의 격차가 좁아지고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도 상대적 평등을 실천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을,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노약자를. 교회에서도 그렇다.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안 되거나 아직 믿음이 자라지 못한 형제자매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다. 그분들에게 믿음이 있는 분들만큼의 신앙을 요구한다면, 마치 육상 선수가 어린아이에게 “같은 거리인데 그것밖에 못 달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믿음의 눈높이를 이해하고 손잡아 이끌어줄 때, 모두가 천국을 향해 나란히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서로를 배려하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곳에서 진정한 평등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