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 함께해 주지 못해 미안해
우리 집은 언제나 시끌시끌하지. 아들만 넷인 대가족이니까. 너희 한 명 한 명이 아빠한테는 정말 애틋해. 사실 너희 위로 누나가 있을 뻔했거든. 엄마 배 속에서 잘못되는 바람에 엄마가 많이 고생했지. 그래서 너희가 태어날 때마다 ‘내 자식이 태어났구나’, ‘내가 아빠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하고 행복했어. 부모가 되면 누가 기쁘지 않을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동시에 책임감이 커지고. 아빠는 너희가 네 명이라 책임감도 네 배지.신혼 때 엄마와 월세방에 살았었는데 너희 생기고 나서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도 쉬지 않고 일했어. 아빠는 원래 노는 데 돈 쓰느라 돈을 못 모았던 사람이야. 그런데 나 말고 책임질 사람이 많으니까 일을 해도 어영부영할 수가 없더라. 엄마는 새벽에 신문 배달하고 전단지 돌리면서 너희를 돌봤지. 너희가 있어서 아빠 엄마가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
아빠는 조선소에서 취부라는 일을 해. 철판과 철판을 용접해서 연결하는 일인데, 일종의 블록 조립이라고 생각하면 쉬워. 배가 크니까 부분 부분을 나눠서 만들다가 마지막에 연결해서 하나로 붙이는 거야. 아빠 같은 경우는 계약된 날에 맞춰 일을 끝내놔야 해. 만약 제때 물량을 못 맞추거나 불량이 나면 다음에 계약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신경 써서 해야 돼. 그래야 신뢰도가 쌓여서 계속 일이 들어와.
안식일을 지키려면 평일과 일요일에 그만큼 일을 해둬야 해. 보통 아침에 일을 시작하면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일만 하다가 와. 쉬는 시간이 없지. 또 우리 가족은 남들보다 많잖아, 아빠가 더 일해야 우리 가족 통닭값이라도 벌지. 엄마도 마음 편히 집에서 너희를 돌보고 가정을 이끌어갈 수 있고.
집에 오면 밤 10시, 11시라 주중에는 너희와 이야기할 시간이 거의 없네. 아빠도 너희와 자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한테는 내 몫까지 너희들과 많이 이야기해 주라고 말해놨어. 아빠도 나름대로 시간 날 때마다 너희와 이야기하고 놀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예배 날 함께 차 타고 시온에 오가는 10분이 이야기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지. 같이할 시간이 많이 없는데도 너희가 이야기를 잘해줘서 아빠는 정말 고맙다.
지옥 같은 뜨거움 속에서 너희를 생각한다
3D 직종이라고 하지. Difficult, Dirty, Dangerous(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 조선소가 그래. 배를 조립하다 보면 파이프 연결 구간 같은 밀폐 공간이 생기거든. 이때 사망 사고가 더러 일어나. 용접할 때 나오는 유독가스나 화재 폭발 때문에. 지금이야 산소 측정하고 환기도 자주 해서 사망 사고가 줄긴 했지만, 한번 사고가 났다 하면 밀폐 공간이라 빠져 나오기가 힘들어. 그리고 엄청 덥다. 겨울에는 괜찮지만 여름에는 괴로워. 배 안은 태양열에 달궈져 있고, 용접 때 나오는 화기로 더 뜨거워지니까.에어 조끼라고 있어. 호스를 통해 바람을 넣어주는 조끼야. 용접 재킷 안에 입으면 공기를 순환시켜서 땀을 식혀줘. 용접 재킷도 무거운데 에어 조끼까지 입으면 더 무겁지. 이걸 한겨울 두 달 정도 빼고는 항상 차고 일해. 봄가을은 그나마 시원해서 괜찮은데 한여름은 소용없어. 에어 조끼에서 나오는 바람까지 뜨거워서 금방 옷이 땀으로 다 젖거든. 그래도 그거 없으면 10분도 일을 못해. 어휴, 정말 찜질방이 따로 없다.
일할 때는 수도 없이 불똥에 맞아. 그래서 아빠 손, 팔에 흉터가 많은 거야. 불똥이 신발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어. 안전화이긴 해도 신발 속으로 들어가면 별 수 있나. 빨리 신발을 벗으면 되지만 비좁은 공간에서 일할 때는 몸이 꽉 낀 상태라 몸을 못 움직여. 그냥 발만 털지. 진짜 뜨겁다. 그때 뭘 느끼는지 아니? 아, 지옥은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이런 뜨거움을.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나기도 해. 20년 가까이 조선소에서 일하다 보니 몸은 성한 곳이 없고. 요즘에는 손목까지 뻐근하네. 치료하려면 일을 쉬어야 한다는데, 말이 되니? 일해야지. 나에게는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데. 한번은 30㎏ 쇠가 머리로 날아온 적이 있어. 그대로 주저앉아서 몇 분을 멍하니 있었을 거야. 그리고 일어나서 또 일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야 피가 났다는 걸 알았지. 이런 상황에서도 아빠가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가족이야. 홑몸이었다면 절대 못하지.
원래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 치고 목, 어깨, 허리 안 아픈 사람이 없어. 하지만 조선소 사람들은 지금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어. 조선소 경기 침체 때문에 임금이 많이 삭감되어도, 평생 일해온 직장이라 다른 일은 찾기도 힘들거든.
일도 고되고 마음도 고된 요즘이다. 그래도 너희만 생각하면 일하다가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와. 집에 있는 너희 엄마, 너희 덕분에 아빠는 매일매일 힘이 난다.
아빠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야. 너희도 행복한 사람이야
너희도 곧 하나둘 사춘기에 접어들겠지. 아빠 엄마가 너희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많지? 아빠 엄마는 너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건데, 때로는 너희가 원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를 때가 있겠지. 너희 입장에서는 답답할 거야. 이해는 돼.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호기심이 많은 때잖아. 너희 또래가 당연하게 하는 일도 못 하게 하는 것들이 있으니 더 그럴 거야.예전에 어떤 식구분의 가족이 교회에 단란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봤어. 어렸던 자제분들이 다 큰 성인이 되어 있었지. 그 모습이 보기만 해도 좋더라. 아빠는 우리 가족도 믿음 안에서 끝까지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커가는 중에 너희가 엇나가지 않도록 지금 믿음이 바로 섰으면 하는 거야.
다행히 지금까지 탈 없이 잘 커줘서 하나님께 감사해. 특히 사춘기 문턱에 선 큰아들. 네가 학생부에서 열심히 해서 아빠는 좋아. 엄마랑도 이야기해, 네가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복을 많이 받았다고. 학생부 모임 가지, 성경 공부 하지, 성가 하지, 네가 제일 바쁘더라. 너 스스로 성경 말씀을 살피면서부터는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많이 바뀌었어. 시온에서 보고 배운 좋은 것들을 학교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기 좋고. 아빠 엄마가 놀랄 때가 많아. 학생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가 봐. 말씀이 마음 중심에 새겨져야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 지금처럼 시온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 말씀 잘 따르면, 많은 축복을 받으리라 믿어.
아마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많아질 거야. 아빠도 사실 하고 싶은 거 많아. 남들은 기분 푼다고 흥청망청 노는데, 아빠라고 다르겠니. 너희도 친구들이랑 아무 때나 놀고, 하고 싶은 거 맘대로 다 하고 싶겠지. 그때마다 우리 천국을 생각하자.
아빠가 밤늦게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피곤하다? 빨리 쉬고 싶다? 힘들다? 다 아니야, 이거야.
‘뿌듯하다!’
왜냐면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나에게는 천국이란 약속이 있으니까. 그러면 정말 기분 좋다.
너희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천국에서 받을 축복을 생각하고. 어쩌면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국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 아닐까 해.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도 많이 느끼지. 우리를 위해 하늘 아버지께서 행하신 고된 일, 하늘 어머니께서 감당하시는 수많은 일들… 아빠는 이 일도 힘든데, 어떻게 다 웃으시면서 하셨을까 하고. 진짜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부모님이시구나 날마다 느낀단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있으니, 천국이 있으니 아빠도 엄마도 행복한 사람이다. 너희도 행복한 사람이야. 우리 힘든 일 있어도 잘 참자. 믿음 안에서 우리 가족 끝까지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