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야기 1. 아들에게

거제에 내려온 지 만 16년째구나. 처음에는 화장실이 밖에 있던 집에 터를 잡고 갓 태어난 너와 엄마와 살았었지.
아빠도 참 잘 놀던 사람이었는데 네가 태어난 이후로는 달라졌다. 친구 만나는 일도, 취미도 뒤로 하게 되었지. 가족이 항상 먼저가 된 거야. 그렇게 아빠는 가장이 되었단다.
그동안의 아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너는 잔소리로 들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거친 삶 가운데서 너를 만났다

아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어, 얼마 후 IMF가 와서 그만두게 됐지만. 다시 일하려고 해도 계속 취업에 실패했어. 임시직 몇 명 뽑는 데도 수천 명이 모였거든. 그러다 김해에 있는 제조 공장에 다녔어. 그리고 울산에 있는 공장으로 옮겼지. 엄마 배 속에 네가 있을 때야. 거기서 사고로 아빠 손이 크게 찢어졌었어. 그때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는지 아니?
‘손을 제대로 못 쓰면 어떡하지. 처자식 어떻게 먹여 살리나.’
내 손이 다친 게 문제가 아니었어. 막일이라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내려온 곳이 여기, 거제 조선소야. 그리고 네가 태어났지. 아빠는 실감이 안 났어. 그저 멍했지, 신기하기도 하고. 시간이 좀 지나니까 책임이라는 무게감을 느꼈다. 비로소 어른이 된 건가 싶기도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했지.
아빠가 조선소에서 처음 한 일이 ‘취부’야. 설계도대로 철근을 용접하고 조립하고 부착하는, 조선소에서 가장 기초적인 일이지. 용접기, 절단기를 써본 적이 없었으니 생소했어. ‘퍼벅’ 하는 기계 소리가 하도 커서 겁도 났다. 무엇보다 텃세가 굉장히 심했어.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것도 기술이라고 안 가르쳐주더구나. 그래서 한 명 붙잡고, 일 끝나면 10분만 알려달라고 졸라서 일을 배웠어. 노력하는 만큼 될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은 ‘보온’ 일을 한다. 말 그대로 내장재를 써서 선박 내부의 온도를 보호하는 작업이지. 10년 넘게 일하니 작업자에서 관리자가 되었구나.
옛날에는 아빠가 집에 오면 쓰러져서 잠만 잤었지? 몸이 녹초였으니까. 지금이야 육체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신경 쓸 것이 더 많다. 일 자체도 힘들지만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래. 위에서는 누르고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고, 중간에서 아주 스트레스지. 쇠를 다루는 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칠어, 말부터 행동이 전부.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뒤통수 맞는 일도 많고. 요즘은 조선소 경기가 안 좋아서 분위기가 더 어수선하구나. 그래도 가족이 있어 버틴다.

후회는 절대 앞서지 않는다

너와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은데 아빠 말이 잔소리로 들리지? 같은 말만 반복하니 짜증 날 거야. 아빠도 아는데 했던 말을 또 하게 돼. 먼저 인생을 산 선배로서 너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서 그래. 늘 하는 말을 이번에도 또 하게 되는구나.
첫 번째로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네가 하고 싶다면 아빠는 하게끔 도와주고 싶어. 아빠는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지금 이 일을 하게 됐지만, 너만큼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한다. 아빠처럼 힘든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 지식, 상식이 필요해.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을 어떻게 알 수 있겠니? 하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도 기본 바탕은 필요하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해.
두 번째로, 경험해 봐라. 경험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어. 직접 부딪치고 느끼고 실패하면서 몸과 가슴으로 배웠으면 좋겠다. 꿈이 분명해질 때까지 해볼 수 있는 것은 이것저것 해봐. 경험이 쌓이면 서른쯤에는 자리를 잡고 원하는 일을 찾게 될 거야. 아빠 엄마는 조급해 하지 않고 기다려줄게.
세 번째는, 이 길을 가야겠다 싶으면 섣불리 가지 말고 충분히 생각하고 가라.
아빠가 5학년 때, 선생님이 칠판에 이런 말을 적었어.
“후회는 절대 앞서지 않는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 한참이 지나서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 맞는 말이야, 어떤 일이든 하고 난 뒤에야 후회가 오지. 후회를 줄이려면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최소 3번은 생각해야 해. 5분이고 10분이고, 한 달이든 석 달이든 이 길이 정말 맞는가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해. 네가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네 몫이란다.
너도 이제 중학생이니까 자기 생각과 의지가 있겠지. 선택도, 그에 따른 책임도 질 수 있는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아빠 엄마는 그저 방향만 잡아줄 뿐,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너의 인생이니까.

아빠의 아빠는 말이다

너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이 있어. 아빠도 나의 아버지랑 제대로 대화라는 걸 해본 기억이 없다는 거야. 지금도 전화하면 “식사하셨어요?”, “잘 지내시죠?” 이게 전부다.
사실 아빠가 좀 일찍 탈선해서 부모님 속을 엄청 썩였다. 고등학생 때는 가출도 했고. 어느 추운 날에는 집에 있던 오토바이를 갖고 친구들과 놀러 나갔어. 아버지가 산 지 얼마 안 된 새 오토바이였거든. 마을 커다란 나무 앞에서 쉬고 있는데 너무 추운 거야. 오토바이 기름 호스를 빼서 불을 붙였지. 순간 오토바이가 타버렸다. 나무까지 홀랑.
아버지한테 말도 못하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사실대로 이야기했어. 아버지는 현장으로 나섰지.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냥 가자 하시는 거야. 그러고는 아무 말씀 안 하시더라.
네 할아버지는 항상 그랬어. 언성을 높이거나 매를 든 적이 없지. 결코 무서운 분이 아닌데, 아빠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어. 이제라도 친해지고 싶었지만 세월이 너무 흘러서인지 그게 참 어렵다. 너도 나처럼 아빠가 부담스럽고 멀게 느껴지지? 내 자식하고는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서 나름대로 너에게 다가서려 해봐도 표현 방식이 잘못된 건지 잘 안 되네. 아빠는 내 아버지처럼 조용히 자식을 지켜보는 스타일도 못 돼, 네가 잘못하면 성질부터 내고 마니까.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어.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살갑지는 못해. 하지만 표현을 못할 뿐이지,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 못지않아. 널 구하려고 불 속에 못 뛰어들까. 하늘 아버지를 생각해 봐.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그 큰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는데, 왜 또 오셨겠니? 아버지란 그런 거야.

아빠 엄마가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마

내리사랑이란 말을 부모가 되어서 이해한다. 네가 옆에 있어주는 것, 그 존재만으로 고맙고 행복해. 사춘기라고 반항하면 밉기도 하지만, 너를 보기만 해도 좋아. 그런데 정말이지 사랑한다는 말은 안 나오는구나. 아빠가 남자라서 그런지, 네가 나보다 덩치가 더 커져서 그런지 여하튼 좀 부담스러워. 너도 싫어하고. 그래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실이다.
너희 또래는 부모가 서운하게 하면 주워온 거 아니냐고 하지? 혹시나 진짜 그렇게 생각할까 봐 노파심이 든다. 부모님은 너희를 사랑하고, 항상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줬으면 해. 이런 믿음을 주려면 물론 내가 잘해야겠지만.
아빠의 경험상, 부모가 바르면 자식이 끝까지 엇나갈 수는 없다고 봐. 아빠도 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계셨기에, 방황도 한때로 그칠 수 있었어. 나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고,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내 본연의 자리를 찾게 했지.
하늘 아버지 어머니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셨단다. 너도 알다시피 아빠의 영혼도 엄청 방황했잖니? 집에 오자마자 말은 안 하고 밥 먹고 자고 출근하고… 교회 이야기는 듣지도 않았지. 시간이 지나니 성경을 배워보고 교회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보이지 않지만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내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간 것 같다.
아빠는 다시 일탈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 시간이 없고 주위 환경이 소란스러워도 성경 말씀을 보고 들으려 하고, 식사 전이나 시시때때로 기도하려는 습관을 들이려 해. 어른이라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유혹거리가 참 많아. 순식간에 휩쓸릴까 봐 겁이 난단다. 너도 청소년이란 시기에 많은 유혹이 있겠지. 우리 같이 이겨내자. 우리에게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니까. 더군다나 너에게는 아빠 엄마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주시지 않았니?
아빠가 많이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잊지 말아줘. 어떤 순간에도 아빠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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