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에는 선생님이 키우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이름은 아롱이와 깜시. 아롱이는 사람을 잘 따랐고 깜시는 겁이 많았다. 동물을 좋아해서 학원 가는 것이 두 배로 행복했다. 아롱이와 깜시는 동시에 새끼를 가졌다. 활발하던 아롱이 몸이 둔해졌다. 원래 길고양이라 밖에 나가 놀기를 좋아하는데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새끼를 위해 제 몸을 소중히 돌봤다. 아롱이보다 어린 깜시는 출산 경험이 없어서인지 자신의 몸 상태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아롱이와 깜시의 출산 날,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땀을 뻘뻘 흘리며 부리나케 학원으로 달려갔다. 작고 예쁜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아롱이의 새끼들이었다. 눈도 못 뜨고 꼬물대는 게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학원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깜시가 새끼를 낳긴 한 것 같은데 어디에 낳았는지 알 수가 없어.”
깜시는 사람을 무서워해서 학원 안으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 평소처럼 밖을 돌아다니다가 어딘가에 새끼를 낳고 사라진 게 분명했다. 그때, 밖에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깜시의 새끼인 것 같았다. 창문을 열고 소리가 나는 쪽을 둘러봤다. 한참 만에 지붕 위 귀퉁이에서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를 찾았다. 안도감도 잠시, 새끼 고양이와 두 뼘 안 되는 거리에 낭떠러지가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 고양이는 계속 꼬물꼬물 몸을 움직였다. 너무 위태로웠다.
“야옹.”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창문을 넘어 난간 위에 올라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2층 높이라 조금 무서웠지만 어떻게든 고양이를 구해야 했다. 다행히 난간이 넓어서 중심을 잡기 수월했다. 새끼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너무 깊숙이 있어 손이 잘 닿지 않았다. 새끼 고양이는 기척을 느꼈는지 힘차게 울었다. 더 힘껏 손을 뻗었다. 겨우 손이 닿아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너무나 작고 여린 고양이. 가슴이 벅차올라 울컥했다. 이렇게 내 손으로 생명을 살리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살리실 때 이런 심정이셨을까?’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지금까지도 이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나는 그날 벼랑 끝에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면서도 가슴을 졸였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영혼이 혹여 잘못될까 매일 애태우며 쉼 없이 기도해 주신다. 그리고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다. 마침내 한 영혼이 살면 그 어떤 일보다 기뻐하신다.
이 세상에는 진리를 모른 채 울고 있는 영혼들이 많다. 나는 그들을 구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신 것처럼, 위험에 처한 영혼이 어디 있든 달려가는 ‘영적 구조대’가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