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라 서러운 인생


×월 ×일 수

닭은 왜 다리가 달랑 두 개뿐이란 말인가! 하나는 오빠 거, 하나는 동생 거. 이것이 보이지 않는 우리 집 치킨 룰. 나는…!
진짜 서럽다, 서러워. 내가 둘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이게 뭐냐. ㅠㅠ
오빠도 참 그렇다. 동생들이 좀 먹게 두지, 냅다 다리만 쏙 골라서 먹냐.
그렇다고 누나로서 동생 걸 뺏을 수도 없고.
오늘은 오빠 휴가 기념으로 시킨 치킨이니까, 군대에서 힘들게 훈련받으면서 먹고 싶은 거 제대로 못 먹을 테니까, 이번에도 내가 참는다.
아오, 나도 닭 다리 먹고 싶다아!!!!


×월 ×일 목

이제 준영이도 초등학교 2학년이다. 이쯤 되면 실내화 가방하고 준비물 챙기는 것쯤은 혼자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런데 엄마는 매일 나보고 준영이 등교 준비 좀 도와주라고 한다.
아까도 숙제하느라 정신없는데 엄마가 준영이 알림장 확인했냐고 물어서 짜증이 확 났다.
어리다고 자꾸 오냐오냐 도와줘 버릇하면 다른 일도 혼자 못한다는 걸 엄마는 왜 모를까.
내가 어릴 때는 오빠가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며 하나도 안 도와줬다.
높은 서랍장에 손이 닿지 않아서 낑낑댈 때도 의자를 밟고 올라가면 된다는 말이 끝이었다.
내가 다 겪어봐서 안다. 준영이도 혼자 할 수 있다. 동.생.수.발. 절.대.사.절. ㅡ_ㅡ^(찌릿)

×월 ×일 금

오빠는 이 밤늦은 시각까지 안 들어오고 뭐하는 걸까. 휴가라고 아주 놀자 판이다. 엄마는 하루 종일 오빠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디서 뭐하는지 궁금해하다가
계속 안 들어오니까 엄청 예민해졌다. 아빠도 말만 안 하지 좌불안석이다.
오빠가 어린애냐고, 곧 집에 들어올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가 잔소리만 들었다.
동생이 돼서 오빠 걱정도 안 되냐고.
집에 안 들어오는 건 오빤데 왜 내가 혼나는 거지?
그러면서도 엄마는 준영이가 잠 설칠까 봐 아주 큰 소리는 못 냈다. 진짜 섭섭하다.
강찬영, 이 군인 아저씨야. 빨리 집에 들어 와!


×월 ×일 월

오빠가 복귀했다. 오빠가 복귀하는 날이면 엄마는 우울해한다.
가끔은 오빠한테 편지 쓰면서 혼자 울기도 한다. 휴가라도 나오는 날에는 고기, 치킨, 고기, 피자가 줄줄이 밥상에 놓인다. 아니, 원래도 엄마는 오빠를 애틋하게 생각했다.
귀한 첫째, 장남이니까. 나중에 준영이가 군대 가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무섭다.
나도 군대를 가야 엄마의 사랑을, 무한대 고기를 받을 수 있으려나.


×월 ×일 수

학교가 일찍 끝나서 기분 좋게 엄마랑 시장 갔다가 스트레스만 받고 왔다.
오빠 다음 휴가 때 뭘 해줄까 계속 고민하는 것이다. 오빠가 복귀한 지 이제 겨우 3일째인데! 그러고는 준영이가 떡볶이 먹고 싶다고 했다면서 헐레벌떡 떡집으로 갔다.
나도 먹고 싶은 거 많은데…. 엄마는 바로 옆에 있는 나를 생각하긴 하는 걸까?
집에 와서는 택배가 와 있길래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던 옷인 줄 알고 박스를 뜯었다.
그런데 죄다 준영이 거였다. 엄마는 인터넷에서 할인해서 샀다고 했다.
나는 용돈을 모아서 옷을 산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옷도 많으면서 또 샀냐고 뭐라고 한다. 준영이가 덩치가 작아서 옷이 적어 보이는 거지, 개수로 따지면 준영이가 나보다 옷이 훨씬 많다.
매번 오빠랑 동생한테 밀린다. 나는 왜 둘째인 걸까?
열 손가락 깨물면 다 아프다던데 난 느낌조차 없는 손가락일 거다.


×월 ×일 목

오빠 친구가 파일 하나를 보냈다. 오빠가 휴가 나왔을 때 만든 영상이라며 엄마 생신날 엄마한테 보여드리라고 했다. 저번에 오빠가 집에 늦게 들어온 게 이거 때문이었나 보다.
영상에는 오빠의 아기 때 사진, 어릴 적 오빠와 내가 같이 찍은 사진, 우리 삼 남매 사진이 시간 순대로 지나갔다. 그리고 오빠가 화면에 나왔다.
오빠는 동생들이 생긴 뒤로 엄마랑 많이 멀어진 것 같아서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멀리서도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엄마가 되어주고,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자기도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닭 되는 줄.
그런데 마음이 좀 이상하다. 내가 오빠, 준영이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오빠도 느끼다니.
생각해 보면 준영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 집 앨범에 내 사진이 제일 많았다.
오빠도 서러웠을까? 난 짜증이라도 내는데, 오빠는 장남이라 티도 못 냈겠지?


×월 ×일 금

오랜만에 엄마랑 목욕탕에 갔다 왔다. 확실히 때를 밀고 나니 몸이 가볍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목욕탕에 간다.
어릴 때는 나도 엄마 따라 꼬박꼬박 목욕탕에 갔는데 언제부터인가 잘 안 간다.
오늘은 딸이랑 같이 가는 게 엄마 소원이라고 하도 졸라서 따라 갔다. 곧 엄마 생일이기도 하고.
엄마는 그동안 혼자서 심심하고, 등이 간지러워서 혼났다고 했다.
엄마랑 딸이 같이 오는 걸 보면 부러웠다면서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모른다.
하긴 이럴 땐 딸이 좋긴 하지.


×월 ×일 일 ♥축 엄마 생일♥

엄마 생일 기념 온 가족(아, 오빠는 빼고) 외식 데이트! 오빠 입대할 때 외식하고 진짜 오랜만이다.
아빠가 엄마 몰래 나한테 귓속말했다.
엄마랑 대화 좀 많이 하라고. 엄마는 나랑 있는 걸 제일 편해 한다고.
한 번도 그렇게 느껴본 적 없다. 엄마는 나보다 준영이랑 오빠를 더 좋아하니까.
하지만 엄마는 장 보러 갈 때도 나를 찾고, 오빠한테 보낼 물건도, 준영이 옷도 꼭 나랑 같이 고른다.
그게 내가 편해서였나? 집에 여자라고는 우리 둘뿐인데 내가 엄마를 너무 멀리한 건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엄마는 지금 오빠가 만든 영상을 보고 우는 것 같다.
내일 엄마가 오빠 타령을 해도 다 받아줘야지. 친한 친구처럼.

×월 ×일 월

야자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준영이가 쪼르르 달려와서는,
어제 남은 케이크를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냥 먹지 누나 올 때까지 기다렸냐고 하니까
형 누나보다 자기가 먼저 먹으면 엄마 아빠한테 혼난다고 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잠도 안 자고 누나를 아니, 케이크를 목 빠지게 기다린 것이냐.
준영아, 너도 막내라 서러운 게 있구나.
그래, 닭 다리쯤이야 너 먹어라.
어차피 오빠 없는 동안 나머지 하나는 내 거니까. 으힛.


×월 ×일 수

엄마가 갑자기 다음 주에 오빠 면회를 가자며 나한테 시간을 비우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아빠랑 준영이 데리고 다녀오라고 했겠지만 이번에는 안 튕겼다.
엄마가 돌아오는 길에 같이 쇼핑도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준영이는 아직 멋모를 때라 인터넷에서 괜찮은 옷 세일할 때 막 사두면 돼.
근데 너는 다 큰 숙녀잖니. 직접 보고 예쁜 거 입어야지.”
헤헷, 벌써 설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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