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일개미 담당 어르신이 길게 늘어뜨린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애벌레에서 의젓하게 성장한 일개미들이 어르신 앞에 모여 있었어요.
“안녕, 수리!”
“어, 헤이! 너 언제 왔어?”
“여기에 도착한 건 임명식 시작 때, 너한테 온 건 약 3.5초 전?”
헤이의 장난스러운 말에 잔뜩 굳어 있던 수리는 웃음을 터트렸어요.
“기대되지 않아? 알에서 깨어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터로 가다니. 너무 신나!”
“글쎄, 난 좀…. 잘 모르겠어.”
헤이는 손으로 수리의 어깨를 탁 치며 말했어요.
“아하, 너 긴장했구나? 괜찮아. 이 형님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거기, 쉿! 다들 잘 듣거라.”
어르신의 호통에 헤이는 작게 “네”라고 대답하고 자세를 반듯이 했어요.
“우리 개미왕국 일개미의 일터는 ‘소망일터’와 ‘사랑일터’ 두 곳이다. 각 일터에서 일개미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파견되는 신참 일개미의 수도 다르지. 파견 기준은 여왕님만 아시니 그대들은 각자 정해진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네. 자, 그럼… 첫 번째로 봉이의 일터를 발표하지. 자네는… 소망일터일세.”
개미들은 열띠게 환호했어요. 소망일터는 수리네 개미왕국이 생길 때부터 있었던 일터예요. 큰 규모와 최고의 시스템을 갖췄고, 멋진 엘리트 개미들이 많이 있어 일개미들이 일하길 소망하는 곳이지요.
“달이 자네는… 사랑일터로 임명됐네.”
일개미들이 크게 박수 쳤어요. 하지만 아까보다는 박수 소리가 작았어요.
“헤이, 사랑일터는 소망일터보다 인기가 없나 봐?”
“인기가 없다기보다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알려진 게 별로 없어. 아마 소망일터보다 규모가 작겠지? 눈에 띄는 엘리트도 없는 것 같고. 당연히 일개미는 소망일터를 더 선호하지.”
그때 어르신 입에서 헤이의 이름이 나왔어요.
“헤이의 일터는 소….”
“야호!”
“허허, 그래. 소망일터라네.”
어르신이 ‘소’까지만 이야기했는데도 헤이는 하늘로 솟구칠 듯이 뛰며 소리를 질렀어요. 다른 개미들은 웃으며 헤이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어요.
“정말이지 못 말려.”
수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신참 일개미들의 일터가 모두 정해지고 이제 수리만 남았어요.
“큼큼. 여러분 모두 애벌레 시절부터 우리 개미왕국의 역사를 잘 배웠을 줄 아네. 왕국 건립 이래 놀랍게 성장한 소망일터는 우리 왕국의 유일무이한 최고의 일터다. 하지만 계속 커지는 우리 왕국에 일터가 하나라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그래서 여왕님의 특별 지시에 따라 사랑일터가 새로 생겼지.”
“뭘 말씀하시려고 저리 서론을 길게 하실까. 수리 너도 소망일터였음 좋겠는데….”
수리는 마음이 초조했어요.
“그래서 현재 우리 왕국에는 두 군데의 일터가 있지. 앞으로 일터를 더 확장할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분석하기 위해 소망일터와 사랑일터, 이 두 곳의 시스템을 비교하고 관리하는 일꾼이 필요해졌다네. 한마디로 새로운 일이 생겼다는 건데, 남은 신참이….”
순간 모든 개미의 눈이 수리를 향했어요.
“저, 저요?”
“그래. 수리 자네가 이 일을 전담하게 됐네. 잘 부탁함세.”

“오, 수리!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멋진데!”
“하, 그러게. 대체 ‘무슨’ 일일까.”
일개미 임명식이 끝나고 어르신은 수리를 어르신의 사무실로 불렀어요.
“수리, 아까 들었듯이 앞으로 자네가 할 일은 각 일터의 상황을 파악하는 거라네. 헌데….”
어르신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어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 자네는 각 일터의 업무 방식, 성장률, 신참 일개미의 수용 정도를 분석해야 하는데, 이 종이를 한번 보게. 지금까지의 성장 데이터를 보면 사랑일터보다 소망일터가 월등하게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일터의 규모도, 엘리트의 인원도, 시스템 운영도 하늘과 땅 차이지. 그런데 종이 맨 마지막에 빨간색으로 강조해 놓은 글씨 좀 읽어보게나.”

“그래, 내가 말한 이상한 점이 바로 이거야. 어디를 봐도 사랑일터보다 소망일터에 일개미를 많이 보내야 하는데, 얼마 전부터 여왕님이 사랑일터에 신참을 더 보내신다네.”
“왜죠?”
“허허. 알았으면 내가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겠나. 그래서 자네의 임무가 중요하네. 각 일터의 상황만 파악하는 데 그치지 말고 여왕님이 왜 일개미들을 사랑일터로 더 많이 보내시는지 알아야 하네.”
“아… 네.”
대답은 했지만 수리는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컸어요.
출근 첫날, 수리는 먼저 소망일터로 갔어요. 규모가 으리으리해서 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우아!”
“이번에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는 신참 개미군요?”
“아, 네! ‘수리’라고 합니다.”
“저는 소망일터의 제1구역 책임자 ‘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수리는 흐트러짐 없는 머리, 먼지 한 톨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정장 차림, 딱 부러지는 말투의 고참이 멋있어 보였어요.
‘이래서 다들 소망일터, 소망일터 하는구나.’
수리는 책임자의 안내를 받아 수많은 개미들이 모인 곳으로 갔어요. 문 위에는 ‘잘함 사무실’이라는 간판이 떡하니 붙어 있었어요.
“이곳은 신참 개미들의 첫 일터이자, 소망일터의 3단계 분류 중 가장 낮은 1단계 일터 ‘잘함 사무실’입니다. 신참 개미들이 일을 배우느라 가장 바쁜 곳이죠.”
수리는 사무실을 둘러봤어요. 알관리 팀, 식량저장관리 팀, 운송 팀, 진딧물협업 팀 등 모든 부서의 개미가 시계 초침처럼 멈추지 않고 바쁘게 움직였어요. 능숙하게 일하는 개미들은 전혀 신참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수리에게 업무를 설명하던 책임자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어요. 책임자는 전화를 받고 허리를 연신 굽히며 “예, 예” 하더니 수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구석진 곳에 가서 통화를 했어요.

잘하자
그때, 누군가가 수리와 부딪혔어요.
“앗!”
“아야야….”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
수리는 90도로 사과하는 개미의 얼굴을 보고 놀랐어요.
“헤이!”
“수리? 와, 이게 얼마 만이야. 정말 반갑다!”
“겨우 하루 만이야. 누가 들으면 몇 년 동안 못 본 사이인 줄 알겠다.”
“아, 그런가?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근데 미안. 내가 지금 바빠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어어, 그래. 일해야지.”
“그럼 나중에 보자.”
수리는, 장난 많고 농담을 잘하던 헤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우면서도 왠지 낯설었어요.
통화를 끝낸 책임자는 수리를 또 다른 사무실로 안내했어요. 사무실 문고리는 때가 탈까 봐 만지기도 두려울 정도로 반짝반짝 윤이 났어요. 사무실 이름은 ‘완벽 사무실’.
“완벽 사무실은 소망일터의 2단계 일터입니다.”
책임자는 은빛 문고리를 밀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누군가를 보고 정중하게 인사했어요.
“안녕하십니까. 수리 씨, 이분은 완벽 사무실 제2구역 일터장님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래, 그 새로운 일을 맡았다는 신참이로군. 보다시피 소망일터는 최고라네. 이웃 개미왕국 일터와 비교해도 최고지. 대규모 일터이자 수많은 엘리트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이곳은 사랑일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거야. 자네도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면 엘리트가 될 걸세.”
“그나저나 반, 아까 전화한 내용은 언제까지 처리할 수 있겠나?”
“신참 교육이 끝나는 대로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일터장은 수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어딘가로 바삐 걸어갔어요.
책임자도 서둘러 수리를 소망일터 3단계 사무실, 고위직 개미들이 일하는 곳으로 안내했어요. 하지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사무실 문 앞에 ‘회의 중’이라고 팻말이 걸려 있었거든요. 책임자가 한창 설명하는 중에 사무실 문이 열리고, 개미들이 우르르 나왔어요. 책임자는 그 개미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어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개미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나쳤어요. 표정도 하나같이 어두웠어요. 그중에는 아까 만난 일터장 개미도 있었어요.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신참 개미 수용 어쩌구 하는 말이 들려왔어요.
“마침 회의가 끝났으니 사무실을 둘러보죠.”
하지만 책임자도, 수리도 사무실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했어요. 몇몇 개미들이 사무실에 남아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요.
“그럼 수리 씨, 오늘 견학 업무는 끝내야겠습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아, 아뇨.”
“그래요. 그럼 저는 다음 일이 있어 가보겠습니다. 일 잘 마무리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네, 네.”
소망일터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수리는 침대에 푹 쓰러졌어요.
“너무 피곤해. 소망일터가 이런데 사랑일터는 더 힘들겠지?”
수리는 녹초가 되어 그대로 잠들어 버렸어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