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고 싶은 곳은? 下

“안녕하십니까!”
사랑일터에 들어선 수리는 깍듯이 인사했어요. 수리 앞에는 사랑일터 책임자 개미가 서 있었어요. 깔끔하고 반듯한 차림은 소망일터 책임자와 차이가 없었어요. 부드러운 미소만 빼면요.

“네, 안녕하세요. 사랑일터 제1구역 책임자 ‘랑’입니다. 신참 개미라면… 수리 씨군요!”
“아, 네!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새로운 임무를 맡고 오늘 사랑일터로 온다고 들어서 이름을 외워뒀지요. 정말 반가워요.”
“저도 반갑습니다.”
“소망일터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잘 둘러보시고 업무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아니에요. 사랑일터 역시 일개미도 많아지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고 들었는걸요.”
“더 분발해야죠. 자, 그럼 둘러보실까요?”
수리는 긴장을 풀고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어요. 책임자의 안내를 따라 처음 들어간 곳은 ‘열심 사무실’이었어요. 정말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차도 마시고, 주변을 돌아보며 다른 개미 일을 도와주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어요.

‘여유가 있나 보네. 소망일터보다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열심 사무실은 신참 개미들이 일을 배우는 곳이에요.”
“정말요? 다들 여유로워 보이는데요? 신참은 일을 배우느라 정신없을 것 같은데.”
“하하, 수리 씨처럼 말하는 개미들 많아요. 그럼 이제 ‘온전함 사무실’로 안내해 드리죠. 일터장 개미들이 일하는 곳이에요.”
온전함 사무실의 문을 여니 사무실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어요. 온전함 사무실은 열심 사무실보다 크기가 훨씬 작았어요.
“일터장 개미들이 일하는 곳이라 하지 않았나요? 왜 아무도 안 보이죠?”
“아, 일터장님들은 다 열심 사무실에 가셔서 그래요. 아까 신참 개미들에게 차 갖다주는 개미들 보셨죠? 일터장님들이세요. 신참 개미들과 같이 일하면서 기술도 알려주고 조언도 해주죠. 열심 사무실에서 느낀 여유는 일터장님들의 그런 수고 덕분일 거예요, 하하. 암튼 이 사무실은 일터장님들끼리 회의가 있을 때만 쓸 목적으로 작게 만들었답니다.”
그때 사무실 안으로 일터장 개미들이 들어왔어요. 서로 먼저 들어가라고 양보하는 일터장 개미들의 얼굴은 부드러웠어요. 한 일터장 개미가 책임자와 수리를 보고 다가왔어요.
“랑 책임자님, 안녕하세요!”
“아, 일터장님! 건강은 괜찮아지셨어요?”
“덕분에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새로운 임무를 맡고 온 신참 개미 수리 씨예요.”
“오호, 그래요? 수리 씨, 환영해요! 그런 의미로 차라도 한잔….”
“감사하지만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맞아요, 일터장님. 우리 다음에 마셔요. 그리고 이제 곧 회의 가셔야 하잖아요?”
“하, 그랬지? 너무 아쉽네요.”
“저희도 회의장을 방문해야 하니 같이 가시죠.”
“오호, 좋지요!”
수리는 일터장과 책임자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회의장으로 갔어요. 회의장은 사랑일터 고위직 개미들이 일하는 사무실이었어요. 회의 중에는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들려왔어요. 회의가 끝난 후, 사무실에서 나온 간부들이 책임자와 수리를 보고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었어요. 수리는 어쩔 줄 몰랐어요.
‘사랑일터는 아직 체계가 안 잡혀서 그런가. 분위기가 부드럽네.’
그날 수리는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어요.

수리는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소망일터와 사랑일터에서 다른 일개미들과 똑같이 일했어요. 소망일터에서는 동료들과 인사할 틈도 없이 바쁘게 일했어요. 사랑일터 역시 일이 많았지만 여러 동료를 사귀었어요.
어느 날, 어르신이 수리를 급히 찾았어요.
“자네, 지금 어서 나갈 준비를 하게.”
“네? 이제 일하고 왔는데요?”
“여왕님이 자네를 부르셔. 새로운 업무 때문인가 봐.”
수리는 두려웠어요. 신참 개미 파견 기준이 무엇인지, 개미왕국 일터가 어떤 방향으로 일을 해야 좋을지 아직 파악하지 못해서요.
“저를요? 어떡하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
수리는 서둘러 개미왕국 왕궁으로 달려갔어요. 병정개미가 수리의 신원을 확인한 후, 왕궁 문을 열어주었어요. 안으로 들어서자 여왕님이 인자한 표정으로 수리를 반겨주었어요.
“어서 와요. 수리 씨. 갑자기 오느라 놀랐지요?”
“어, 어, 네, 네. 아, 아닙니다.”
“새로운 일은 어떤가요? 힘들지는 않은가요?”
수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어요.
“힘들다기보다… 일주일씩 일하긴 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소망일터와 사랑일터의 시스템을 비교 분석해서 앞으로 업무 방향을 잡는 거라고 들었어요. 그리고… 여왕님이 왜 사랑일터에 더 많은 신참 개미를 분배하시는지도 파악해야 했고요.”
여왕님의 눈이 조금 커졌어요.
“맞아요. 그래서 알아냈나요?”
“휴우,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수리 씨,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소망일터와 사랑일터가 일하기 어땠는지 편하게 말해주겠어요?”
“아…. 먼저 소망일터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망일터는 규모가 정말 컸어요. 체계적인 시스템에 따라 일개미들의 업무, 직위도 정확하게 구분돼 있어서 각자 맡은 일을 잘 해냈고요. 선이 확실해서인지 일터는 질서 있게 운영되고 있어요. 그리고 사랑일터는… 겉으로 보면 사랑일터도 3개의 사무실이 있고, 직위도 구분되어 있어서 소망일터와 비슷해 보였어요. 하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었어요. 일할 때 굉장히 여유롭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여유롭게 느껴졌지요?”
“다른 개미들의 일을 도와준다거나, 도와줄 동료가 없나 둘러보는 모습이요. 그리고 일터장 개미는 신참 개미 사무실에서 함께 일해요. 소망일터보다 업무량이 적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직접 일해보니 소망일터와 업무량이 크게 차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수리 씨는 어느 일터에 신참 개미들을 더 많이 보내고 싶나요?”
“소망일터입니다. 완벽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바쁘게 일하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요.”
“그렇군요. 그럼 수리 씨가 일하고 싶은 일터는요?”
“네? 제가 일하고 싶은 곳이요?”
수리는 예상치 못한 여왕님의 질문에 깜짝 놀랐어요.

“저라면… 사랑일터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여왕님은 묘한 웃음을 띠었어요.
“편하니까요. 아! 편하게 일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면서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거예요!”
수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왕님을 바라봤어요. 여왕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수리 씨가 말한 사랑일터의 여유는 일의 양이 적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에요. 오히려 신생 일터라 손이 가는 곳이 더 많지요. 사랑일터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는, 시간적 여유라기보다 서로 간의 관심, 사랑에서 나오는 마음의 여유일 거예요.”
“관심, 사랑이요?”
“일터의 규모, 엘리트의 수, 시스템의 완성… 중요하죠. 하지만 우리 개미왕국을 견고히 유지하는 데는 서로 간의 결속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래서 소망일터를 처음 일궜을 때도 일터의 제1원칙이 사랑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보다는 체계가 강화되었어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실력으로 일터를 운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식으로만 일터를 팽창하면 일터도, 개미왕국도 언젠가 무너지고 말 거예요. 이번에 사랑일터를 새로 일구면서 소망일터에도 그 첫 사랑을 일깨우고 싶었어요.”
“제가 여왕님 계획의 시작이 된 건가요?”
“그래요. 먼저 수리 씨를 보내 과연 개미들은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어할까 의견을 듣고 싶었어요. 이후로 소망일터와 사랑일터의 일개미들을 교차 임명하고, 사랑일터에 신참 개미를 대거 보낼 예정이에요. 소망일터의 기술에, 사랑일터의 마음까지 더해진다면 우리 개미왕국은 더욱 발전하겠지요?”
“물론이죠! 제가 이 일의 시작이었다니, 큰 영광입니다.”
“수리 씨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요. 소망일터 그리고 사랑일터에서 배운 좋은 것들을 모아 다른 개미들에게 잘 전해주세요.”
“네!”

“수리, 안녕!”
“헤이, 언제 왔어?”
“출근 시각 10분 전. 너한테 온 건 약 3.5초 전?”
수리는 웃음을 터트렸어요. 한동안 같이 일해도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헤이는 이제 예전처럼 유머러스해졌어요. 일이 많아 고단한 날에도 수리와 동료들을 웃겨주지요. 일하는 동안 콧노래도 부르고요. 너무 못 불러서 문제지만요.
“안녕하세요. 수리 씨, 헤이 씨!”
“반 책임자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죠? 차 한 잔 드릴까요?”
“좋아요!”
개미왕국 일터의 아침은 언제나 상쾌해요. 일터에 사랑이 가득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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