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생활 적응기


4월 3일 일

일요일은 꼭 이틀 같다. 낮에는 신나다가 저녁만 되면 기분이 다운된다. 하루 만에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 월요병인가?
초등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 집에서 8시 20분에 나가도 지각 안 했는데 지금은 8시에 나가도 지각이다. 아침마다 미어터지는 버스를 타면, 내가 땅에 발을 딛고 있는지 사람들 틈에 껴서 떠 있는지 분간이 안 된다. 특히 차 막히는 월요일은 더 심하다.
내일 생각을 하니까 벌써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있는 것처럼 어깨가 무겁다. 아, 초딩으로 돌아가고 싶다.


4월 5일 화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뻗었다. 일어나니 7시였다. 허겁지겁 밥 먹고 준비해서 예배 직전에 시온에 도착했다.
진우 형제님이 왜 늦었냐고 했다. 난 안 늦었다. 기분 나빴다.
요즘 나한테 왜 그렇게 잔소리하는지 모르겠다. 처음 학생부에 올라왔을 때는 형제님이 재미있고, 같은 중학교 3학년 선배라기에 좋았다. 형제님이란 호칭이나 존댓말도 형제님이 도와줘서 금방 적응했다.
근데 형제님이 점점 아줌마처럼 변하는 것 같다. 성전에서 뛰면 안 된다, 휴대폰 말고 성경을 보면 어떻겠냐, 잠깐 이야기하고 있으면 진리 발표하자….
안 그래도 학교 다니느라 피곤한데 형제님 잔소리 때문에 더 피곤하다.


4월 7일 목

어제부터 수업 끝나고 학교에 남았다. 과학의 날 조별 과제 때문이다. 다행히 똑똑한 진성이랑, 말은 많아도 뭐든 열심히 하는 정우랑 같은 조였다. 가만히 있어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니까 편했다.
덕분에 빨리 끝나서 학생부 모임에 갔다. 진우 형제님이 모임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냥 먼저 간다고 했다. 왠지 같이 있기 불편하다.


4월 8일 금

다음 주부터 한 주 동안 ‘311’이다. 하루 3번 환기하기, 하루 1번 교실 문 유리 닦기, 일주일에 1번 교실 알림판에 붙은 좋은 글 갈기. 처음에 이런 걸 당번으로 정한다 했을 때 귀찮겠다 했는데 벌써 내 차례다.
학생부 모임 때 학교생활 잘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나타낼 수 있다고 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귀찮다. 아침부터 버스 전쟁까지 치르고 나면 하루 종일 졸리고 힘들다.

4월 9일 토

오늘 기분 진짜 별로다. 같은 조 애들이 다음 주 과학의 날 발표를 나보고 하라고 문자로 통보했다. 「한 것도 없는데 발표라도 잘해」라면서. 내가 화난 표정 이모티콘을 보냈더니 농담이라 했다. 기분 나빠서 예배에 집중을 못하고, 청소도 대충 했다.
아, 생각할수록 기분 진짜 별로다.


4월 10일 일

학생부 모임 끝나고 진우 형제님이 요즘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말하기 귀찮아서 가만 있었다. 그러다 계속 물어보길래 학교 다니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진심이다. 내일부터는 311 때문에 신경 쓰인다. 이틀 뒤에는 과학의 날 발표도 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나?
과학의 날 발표 어떡하지? 막막하다.


4월 11일 월

진우 형제님이 점심시간에 우리 교실에 찾아와서 비타민 음료랑 초콜릿을 줬다. 내가 어제 했던 말 때문에 걱정한 것 같다. 좀 감동.
학교 끝나고 형제님이랑 같이 시온에 갔다. 형제님은 무슨 일 있냐고 또 물었다. 중학교 와서 힘들고, 학생부 활동까지 하고 나면 너무 피곤하다고 말했다. 형제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뭐라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그냥 엄청 위로해 줬던 것 같다.
과학의 날 발표도 하기 싫다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학생부 앞에서 진리 발표도 해보지 않았느냐면서. 그거랑 좀 다를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털어놓고 나니까 후련하다.


4월 12일 화

오늘 발표 성공했다. 아이들이 “오~” 하고 박수 쳐줬다. 선생님한테는 이해가 쏙쏙 되게 잘 설명했다고 칭찬받았다. 희한하게 별로 어렵지 않았고, 아이들 앞에 서도 떨리지 않았다.
학생부 올라와서 했던 진리 발표가 진짜 도움이 됐나 보다. 하기 싫어서 뺀질거린 적 많은데 형제님들이 많이 도와줬다. 형제님들한테 고맙다. 특히 진우 형제님.
아! 오늘 설교 시간에 항상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고 들었다. 이것도 하나님께 먼저 감사해야겠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4월 13일 수

도덕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진우 형제님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 선생님 반에 진우란 애가 있는데, 다들 하기 싫어하는 청소나 궂은일을 나서서 한다고 엄청 칭찬했다. 이런 애가 공동체 생활에 꼭 필요한 아이라고.
진우 형제님 다시 봤다. 올~
진우 형제님한테 도덕 시간 이야기를 했다. 엄청 부끄러워해서 웃겼다. 형제님은 하나님 자녀답게 행동하려고 하니까 칭찬받은 거라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좀 찔린다. 나는 311도 제대로 한 적 없는데. 남은 이틀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


4월 14일 목

오늘은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갔다 왔다. 어제 진우 형제님이 알려준 방법이다. 학교까지 15분밖에 안 걸렸다. 야호! 미어터지는 버스여, 이제 안녕~
311도 열심히 했다. 틈틈이 교실 창문을 열고, 신문지로 교실 문 유리를 닦고, 보너스로 교탁 위에 있는 화분에 물 주고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올려놓았다. 기분이 좋았다.
이번 주 알림판에 갈아 낀 좋은 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나도 꿈을 하나 만들었다. 하나님 자녀답게 행동하기. 꿈이라고 말하기는 그런가? 그래도 목표가 생기니까 학교 가는 게 그렇게 싫지는 않다.
내일이 마지막 311이다. 자전거 타고 신나게 학교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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