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중2는? 아빠가 내 나이였을 때

때는 1985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아빠의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빠의 아빠, 즉 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당시 할아버지는 많이 편찮으셔서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빠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네 교육을 다 못 시키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
할아버지가 떠난 후, 가장이 없어진 데다 할아버지의 수술비로 지출된 돈이 만만치 않아 가계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할머니는 5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장사, 공장일, 식당일 등 온갖 일을 하며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아빠는 집안에 도움 될 만한 일을 찾다가 신문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신문을 돌리기 위해 학교를 조퇴했습니다. 그렇게 5개월쯤 지났을 때, 담임 선생님이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네가 버는 돈이 크게 느껴지겠지만, 공부를 포기하면 나중에 더 큰 손해가 될 거다.”
선생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한 아빠는 바로 신문 배달을 그만두고, 수업에 충실하게 참여하며 쉬는 시간에도 공부했습니다.
아빠가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할머니 덕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든 돈은 마련할 테니 걱정 말고 공부하라며 아빠를 안심시켰습니다. 할머니는 먼 지역을 마다하지 않고 품팔이를 나갔고, 모내기 중 유리 조각에 발을 찔려 상처가 깊게 났는데도 꿋꿋하게 일했습니다. 할머니의 희생을 옆에서 지켜본 아빠는 할머니를 더 힘들게 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바르게 생활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철없을 적 아빠는 ‘아버지는 왜 일찍 돌아가셨을까’, ‘나는 왜 가난한 집에 태어났을까’ 하며 자신의 처지를 자주 원망하셨답니다. 그런데 지금, 아빠가 그 시절의 할아버지 나이가 되고 당시 자기 나이의 딸을 가져보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조금은 이해된다고 합니다. 살아 계셨다면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효도할 텐데 그럴 수 없어 아빠는 마음 아파합니다.
항상 웃는 아빠에게 이런 아픈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엄마는 고난을 이겨낸 아빠가 자랑스럽고, 자녀를 위해 헌신한 할머니가 존경스럽다고 했습니다. 저도 딱 지금 제 나이 때에 아픔을 딛고 일어선 아빠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만약 제가 그런 상황을 겪는다면 어떨까요?
편안하게 살면서도 불평불만을 많이 한 제가 부끄럽습니다. 아빠 엄마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저와 함께해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 삶에 감사하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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