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미워도 내 자식이니까 다 예뻐”

제가 본 엄마 아빠의 삶은 고작 19년입니다. 부모님이 살아온 세월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이지요. 그런데도 저는 엄마 아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 생각보다 내 생각이 옳다고 반항한 적도 많습니다. 과거를 되짚어보니 저는 엄마 아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저 부모님을 ‘나를 도와주는 존재’로만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의 종점에 선 지금, 그동안 보지 못한 부모님의 생활, 마음을 보고 이제는 달라지려고 합니다.


◆아빠 인터뷰


아빠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너랑 정말 비슷했어. 아침에 일어나면 너처럼 폭탄(?) 머리가 돼서 머리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말투도 비슷했지. 가끔 너랑 엄마가 다툴 때 보면, 아빠가 할머니와 다퉜던 때를 보는 것 같아. 아빠도 할머니 말씀 안 듣고 아빠 할 말만 했거든. 너도 그러더라. 하하하. 그래서 네 속이 어떤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

헉, 제 속을 들여다보신다고요? 일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지금 직장 일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아빠가 다니는 회사는 옛날에 할아버지가 다니셨던 회사야. 아, 너까지 여기 입사하라는 건 아니다! 아빠는 처음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어. 힘든 일도 많았지. 시간이 흘러 정규직이 됐고. 너랑 누나가 어릴 때, 아빠가 일 때문에 늦게 집에 들어가면 엄마 혼자 너희 둘 재우느라 고생하던 게 기억난다.

저도 기억나요! 자고 있는데 아빠가 막 뽀뽀했던 거.
하하, 자주 그랬었지. 너 어릴 때 정말 귀여웠어. 예전에 사람들이 너는 엄마 닮고, 누나는 아빠 닮았다고 했었는데 크면서 아빠 얼굴이 나오더라? 아빠는 뿌듯하다.

취미 생활은 뭐였나요?
사진 찍기나 비디오 촬영하기. 너희들 어릴 적에 아빠가 비디오 많이 찍었어. 보행기 타고 다닐 때, 옹알이할 때, 소풍 가서 울고불고할 때, 깨끗이 씻겨 놨더니 옷도 안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 교회에서 개구리 모자 쓰고 나와서 율동할 때…. 그 영상들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져.

아, 유소년부 재롱 잔치 때 아빠가 교회 오셨던 거 엄마가 이야기해 줬어요. 그럼 교회는 어떻게 다니게 되신 거예요?
정말 하나님 은혜였지. 너희랑 엄마가 시온에서 가족 행사 있다고 아빠를 초대했는데 아빠가 싫다고 했던 거 기억나니? 그때 방에서 너랑 누나 그리고 엄마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아빠를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마음을 바꿨지. 그날 우리 가족이 요리대회 1등을 했잖아. 그 뒤로 꾸준히 장년들과 운동도 하고, 성경 공부도 했었어. 그러다 결심했지, 교회 다녀보기로.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어. 벌써 십수 년 전 이야기네.

혹시 저에게 해주실 말씀 있나요?
아빠가 너에게 싫은 소리 많이 하지? 그건 정말 다 너를 위한 거야. 아빠가 먼저 살아본 결과, 너의 잘못된 부분은 꼭 고쳐주고 싶거든. 네가 막내여서 어리광도 부리고, 마음도 여리지만 가끔은 단호해야 할 때도 있어. 앞으로 차근차근 알려줄게.


◆엄마 인터뷰


자, 일단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그런 것도 해야 하니? 그냥 넘어가면 안 돼?

기자 흉내 내본 거예요, 크크.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엄마는 시골에서 자랐어. 시골 아이 치고는 점잖게 논 편이었지. 뱀 잡고 돌아다니면서 골목대장으로 불렸던 막내 이모에 비하면 더더욱. 어린 시절은 별로 할 말이 없네. 그냥 재밌게 놀고, 행복하게 지냈어.

학창 시절은요?
엄마가 놀라운 사실 알려줄까? 엄마가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옆 학교가 아빠가 다니던 학교였어! 심지어 타고 다니던 버스 정류장도 같았지. 근데 그때는 아빠를 본 기억이 없네, 쩝.
엄마는 꿈이 선생님이었어.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했지만, 어린 시절에 꿈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야. 꿈이 있으면 매일 즐겁거든.

결혼 전의 엄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너무 밋밋해서 할 얘기가 별로 없네. 가정을 꾸린 후로 더 많은 추억을 쌓게 되었으니까.

그럼 저 태어난 후로는 어떻게 지냈어요?
너 어렸을 때 진짜 온종일 울었던 거 아니? 거기다 맨날 “안아줘, 안아줘” 하면서 엄마 다리 꼭 붙잡고 걷지도 못하게 하고, 잠깐 집 앞 마트에 나왔는데 버스 타자고 하질 않나, 엄마가 잠깐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 찻길을 당당하게 건너질 않나…. 너무 힘들었어. 그래도 네가 막 애교 부리면 쌓였던 피로가 싹 사라졌지. 참 귀여웠는데, 지금은 네가 어리광 부리고 애교 부리면 솔직히 징그러워.

너무해요….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 철렁한 이야기가 있어. 어린 네가 강풍으로 돌아가는 선풍기에 손을 넣었을 때.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너는 세상이 떠나갈 듯이 엄마 찾으면서 울고….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식겁해. 너를 안고 시장통을 지나서 병원에 가는데, 어찌나 애가 타던지 나도 모르게 막 소리를 지르게 되더라고. 비켜달라고. 다행히 네 손가락에 큰 문제는 없었지.

하하, 죄송해요. 제가 좀 커서는 반항을 참 많이 했잖아요. 제가 생각해도 제 모습이 미운데, 엄마는 어땠어요?
자기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아무리 미워도 내 자식이니까 다 예쁘지. 미운 감정이 생겨도 잠깐 안 보면 또 보고 싶고, 싫은 소리 하고 학교 보내면 계속 생각나고 그래.

저를 어떤 마음으로 키우셨는지 궁금해요.
사랑스러운 마음, 든든한 마음. 엄마는 너에게 항상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입히고 싶어.

오, 감동이에요. 그럼 제가 가장 사랑스러웠을 때는 언제예요?
잘 먹을 때. 항상 잘 먹어서 좋아. 힘들게 아침밥을 차렸는데 식구들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면 힘 빠지거든. 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잘 먹어서 좋아.

그래서 ‘든든하다’ 한 거군요?
생각해 보니 그렇기도 하네. 아무튼 아들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데. 엄마들은 이런 기분 다 알 거야. 딸 없는 엄마들은 딸 있는 사람을, 아들 없는 엄마들은 아들 있는 엄마를 부러워하기도 해. 근데 엄마는 딸도 있고 아들도 있어서 행복해.

더 해주실 이야기 있나요?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지. 그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엄마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다 네가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니까.



부모님과 싸우고 돌아서면 후회하죠. 모든 학생이 공감할 겁니다. 괜한 자존심 때문에 다가가지도 못하고요. 저도 마찬가지인데 그때마다 부모님이 먼저 다가와 주십니다. 우리 집은 용서의 의미가 ‘저녁 밥상에 고기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아침에 싸워도 저녁에 엄마가 고기를 굽고 계시면 ‘화해’가 성사되지요. 엄마 아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제 생각 하느라 고민이셨겠죠. 이제야 부모님의 사랑을 헤아리게 됩니다.
표현이 서툴러서, 질풍노도의 시기라 부모님께 모진 말을 뱉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진심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만큼, 저도 부모님을 사랑하니까요. 앞으로는 말도 ‘잘’ 하고. 당부하신 것처럼 아빠 엄마가 해주신 말씀도 ‘잘’ 아로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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