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3이 되자 저는 부쩍 짜증이 늘었습니다. 가뜩이나 진로가 고민돼 답답한데, 부모님이 매일같이 공부 이야기를 하니 부담스러웠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대화로 풀었겠지만, 학교와 학원을 바삐 오가느라 부모님과 저녁 먹을 시간도, 속마음을 꺼내 대화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짐을 싸려고 책을 정리하다가 처음 보는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딸에게 사랑받는 아버지들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아빠, 이 책은 뭐예요?”
“아아~ 그 책 오랜만이네! 너 어릴 때 아빠가 사왔던 거야.”
아빠가 직접 산 책이라니 의외였습니다.
“오래돼서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안 나.”
저는 ‘그럼 그렇지’ 하고 무심히 넘겼습니다.
다음 날, 엄마에게 어제 본 책에 대해 말했더니 엄마가 아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책, 네가 중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아빠가 서점에서 사와서 열심히 읽더라. 너한테 사춘기가 오면 멀어질까 봐 걱정됐던 모양이야. 아빠가 그렇게 너를 사랑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빠는 원래부터 성격이 서글서글한 딸바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딸에게 사랑받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 온 겁니다. 그런 아빠에게 저는 효도는 못할망정 고3을 벼슬 삼아 짜증을 부렸습니다. 공부하라는 말도 다 나를 위하는 말인데 왜 그렇게 듣기 싫어했는지 후회됐습니다.
언젠가 아빠에게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예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아봐 주는 네가 더 좋은 딸이야.”
하늘보다 땅보다 큰 아빠의 사랑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빠는 부족한 딸에게 넘치게 훌륭한 아버지이고, 이미 사랑받는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