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행군


제가 다니는 학교에는 특별한 전통이 하나 있습니다. 전교생이 왕복 27㎞를 걷는 행군입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학교 연례행사지요.
행군이 있는 날,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 바르고, 점심도 가볍게 챙겨 가방 무게를 최소화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신나게 걸었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못 가 말소리는 사그라들었습니다. 강렬한 땡볕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고, 땀방울도 계속 떨어졌습니다. 왜 이런 행군을 하는지, 마음속에서 짜증과 원망이 꿈틀거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주위의 친구들을 둘러봤습니다. 친구들은 노래를 듣거나, 말없이 걷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더위와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보며 저도 힘을 내 걸었습니다.
3시간쯤 걸려 중간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1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휴식이라 해봤자 땅바닥에 앉아 숨만 쉬는 게 다였지만 이보다 좋을 수 없었습니다. 달콤한 휴식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학교로 되돌아오는 행군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가는 길보다 오는 길이 더 힘들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돌아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했기에 그것만 생각하며 참고 견뎠습니다.
드디어 행군이 끝났습니다. 장장 6시간 만이었습니다. 하늘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가볍고 편한 차림으로 걷는 것도 힘든데, 아버지께서는 하늘 자녀를 찾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메시고 험한 길을 매일같이 다니셨습니다. 저는 고통을 나눌 친구들이라도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긴 시간을 외로이 홀로 걸으셔야만 했습니다.
올해 졸업하는 저에게 27㎞ 행군은 마지막입니다. 하지만 행군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낀 하늘 아버지의 희생은 마음에 길이 남을 듯합니다. 아버지의 큰 사랑을 받은 자녀답게 믿음의 길도 멋지게 행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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