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용돈이 부족할 때. 나는 아빠한테 용돈을 받는다.
두 번째, 늦게 일어났을 때. 학교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아빠가 차로 태워다주셔야 한다.
세 번째, 무거운 짐이 있을 때. 나 혼자서는 무거운 짐을 들기 어렵다.
이때 말고는 딱히 아빠를 찾은 기억이 없다.
아빠 생신을 앞두고 선물을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아빠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고민은 생신 전날 밤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없어서 그냥 편지를 쓰기로 했다. ‘생신 축하해요’만 쓰고 끝낼까 하다가 아빠랑 하고 싶은 일, 아빠에게 섭섭했던 일, 화가 났던 일들을 쭉 써내려갔다. 빈 종이가 제법 꽉 찼다.
마지막으로 죄송했던 일을 적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나는 평소 아빠한테 말도 잘 안 걸고, 대들거나 함부로 행동한 적도 많았다. 또 아빠에게 혼나면 짜증만 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내가 잘못한 거였는데…. 나 때문에 아빠가 더 힘들었을 것 같았다.
편지를 본 아빠는 나에게 대화를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긴 이야기 끝에 “같이 고치고 발전해 나가자”고 말씀하셨다. 이후 아빠가 달라졌다. 장난도 먼저 걸어주고, 유머 책을 보고 웃긴 이야기도 해주신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은 자상하고 자녀에게 아낌없이 주는 분이 ‘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 아빠도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나를 엄청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낀다. 아니, 아빠는 늘 표현하셨지만 내가 외면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아빠를 두고도 몰랐으니까.
아빠가 노력하시는 것만큼 나도 살가운 딸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제 아빠에게 존댓말을 쓰고 아빠 말씀을 잘 들으려 한다. 아빠랑 둘이 있으면 어색하고 대화만 하면 얼굴을 붉혔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웃으며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 부녀는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나의 생각도,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아빠와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