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와의 거리 上

“엄마, 엄마! 이거 봐봐. 우리 여기 나갈까?”
나는 엄마 앞에 가정통신문을 들이밀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멈추고 가정통신문을 대충 한 번 훑었다.
“가족 일기 대회?”
“응! 수상자한테 상품도 준대!”
나는 들떠서 방방 뛰었다. 엄마는 다시 설거지를 하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엄마는 이게 문제다. 뭘 하자고 하면 시큰둥하다. 힘 빠지게시리….
“한 달 동안 일주일에 일기를 세 편 이상 쓰면 되는 거야. 어때, 쉽지?”
열심히 설명하면서도 걱정됐다. 이럴 때 엄마는 늘 거절했으니까.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엄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아싸! 진짜지? 진짜로 하는 거지?”
“그렇다니까. 그런데 대회면 뭔가 특별하게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응. 집에 오면서 생각해봤는데 그날그날 엄마랑 나랑 있었던 일을 쓰고, 끝에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라고 느끼는지 쓰는 거야. 어때?”
“너랑 엄마 사이의 거리? 괜찮네. 아빠는 바쁘시니까 엄마만 써도 되니?”
“응, 가족 중에 한 명만 써도 된대.”
“언제까지 쓰면 돼?”
“다음 달에 제출해야 하니까 이번 달 말까지 써야 해. 일주일에 세 편 이상. 알았지? 꼭 세 편 이상이야, 꼭!”
“알았어, 알았어.”
엄마는 귀찮은 티가 역력했다. 그래도 웬일인가 싶다. 학교 대회에 엄마와 함께 출전하다니. 내일부터 무슨 일이 생길지 기대되고 신난다.

새 신발이 생긴 날

“엄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 신발 사달라고 그렇게 졸라도 안 사주더니.”
“잔말 말고 사준다고 할 때 골라. 안 그럼 안 사준다.”
“아냐, 아냐. 나는 이거! 완전 갖고 싶었던 거야.”
“그럼 이걸로 사. 또 조르기 없기다?”
“당연하지! 엄마, 짱!”
나는 기분이 좋아서 엄마한테 엄지를 척 들었다. 엄마도 기분 좋아 보였다. 그래! 오늘 일기는 이걸로 써야겠다.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

엄마가 방문도 안 두드리고 불쑥 들어오는 바람에 스마트폰을 얼굴 위로 떨어뜨렸다.
“악! 왜 갑자기 들어오고 그래. 깜짝 놀랐잖아.”
“너 또 스마트폰 하지? 안 자고 밤늦게까지 도대체 뭘 보는 거야?”
“아, 정혜하고 잠깐 문자 하고 있었어.”
“정혜는 아직도 안 잔다니?”
“이제 자려고 했어!”
“그럼 빨리 자. 내일 학교 가서 졸지 말고. 또 걸리면 그땐 스마트폰 압수할 거야.”
정혜랑 문자 한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다. 엄마는 정혜라면 내가 집에 늦게 들어와도, 밤늦게까지 문자를 해도 별로 뭐라 하지 않아서 종종 써먹는 방법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하고 인터넷 기사를 보거나 블로그에 들락날락했다. 또 문이 벌컥 열렸다.
“박해나, 너 일찍 잔다며!”
엄마가 내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이리 내. 지금부터 스마트폰 사용 금지야!”
평소 다른 건 신경도 안 쓰다가 내가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꼭 사사건건 간섭이다.
“내가 얼마나 했다고! 다른 애들도 이 정도는 다 한단 말이야!”
“그래서 그게 잘하는 거니?”
“아, 몰라! 나가!”
쾅!
엄마를 내쫓듯이 밀어내고 방문을 잠가버렸다. 시계를 봤더니 벌써 12시다. 오늘은 일기 안 쓰려고 했는데 잠이 확 달아났다. 이거라도 써야지.

엄마, 미안해

똑똑.
“해나야, 숙제하니?”
“응.”
“배 안 고파? 아까 저녁 안 먹었잖아.”
“밥 먹을 시간이 어딨어.”
“그래도 밥은 먹고 하지. …뭐 좀 해줄까?”
“됐어, 생각 없어. 조별 과제라서 빨리 해야 돼.”
“그래…. 얼른 하고 자라.”
며칠 전부터 엄마랑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엄마랑 진짜 한마디도 안 했다. 엄마는 겨우 말을 걸었을 텐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미안했다.
하, 이번 주 일기는 너무 대충 썼다. 조별 과제 하느라 일기 대회는 신경 쓰지도 못했다. 생각만큼 화려하고 감동적인 일기를 쓰지 못해 아쉽다. 다른 친구들은 가족들이랑 재밌는 데 놀러간 이야기를 쓸 텐데….
어제 늦게 자서 그런지 목이랑 어깨가 뻐근하고 피곤하다. 그래도 일기는 쓰고 자야겠다.

가족 일기 제출

“엄마! 일기 줘. 오늘 제출해야 해.”
어젯밤 엄마한테 미리 일기 받아놨어야 했는데 까먹었다. 아침에라도 생각난 게 다행이다.
“여깄다. 어휴, 누가 내 일기를 본다고 생각하니까 부끄럽네. 글씨 좀 예쁘게 쓸 걸 그랬나.”
“그런 건 안 봐.”
“그래도….”
“빨리 줘. 나 늦었어.”
집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버스를 한 대 놓쳤다. 백 퍼센트 지각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교실까지 전력 질주했다. 힘겹게 숨을 고르고 교실 뒷문을 열었다. 선생님이 이제 막 들어오신 듯했다.
“안녕하세요.”
멋쩍은 듯 선생님께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1분 전이다. 앞으로 일찍 다니도록.”
“네.”
휴, 다행이다. 지각은 면했다. 나는 조회 후 곧바로 선생님께 일기를 제출했다. 선생님 책상에는 일기장이 많이 쌓여 있었다. 대회에 참여한 애들이 많은가 보다.
“선생님들끼리 심사하고 금요일에 시상식이 있을 거예요.”
선생님이 나가시자 애들은 술렁였다. 다들 서로 쓴 일기 내용을 궁금해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 일기를 읽어본다는 게 급하게 오느라 못 읽어봤다. 엄마는 뭐라고 썼을까? 다른 애들은 얼마나 잘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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