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 사랑을 더해야

냄비와 뚝배기의 차이를 아시나요? 냄비는 빨리 뜨거워졌다가 훅 식고, 뚝배기는 천천히 뜨거워지는 대신 오래 열기를 유지합니다. 제 믿음을 둘 중 하나에 비유하자면 ‘냄비’였습니다.
어릴 적에 엄마를 따라 믿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와서 성경은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식과 믿음이 비례하지는 않았습니다. 시온에 있으면 믿음이 금세 끓어오르는 듯싶다가도 시온만 나서면 순식간에 식어버렸지요.
믿음도, 자제력도 턱없이 부족한 어린 학생 시기에 눈에 보이는 유혹들은 너무나 달콤했습니다. 그동안 보고 들은 말씀이 떠올라 머리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놀고 싶은 대로 노는 게 좋았습니다. 점점 공부는 뒷전이 되었고, 갖가지 핑계를 대며 시온도 멀리했습니다.
사춘기가 오면서 방황은 정점에 다다랐습니다.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아이가 있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괜히 시비를 걸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선생님들께 경고를 받아도 거친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친했던 친구들과도 조금씩 충돌하다가 아예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친구가 제일이었던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자신감이 줄고 외로움을 탔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고,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공부에만 몰두했습니다. 자투리 시간도 없이 학교, 학원만 오가다 보니 바닥을 기던 성적은 전교 석차 상위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방황하던 시점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입학할 고등학교가 정해져 학원 수업을 종강한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시간이 남아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동안 쉼 없이 공부만 하느라 취미도 없었습니다. 불현듯 시온이 떠올랐습니다. 시온에 나를 알아보는 식구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제 발은 무작정 시온으로 향했습니다.
시온 문을 열자 학생부 형제님들이 보였습니다. 형제님들은 저를 보고 놀랐습니다. 자매님들도 신기하게 보더니 이내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시온은 가기 귀찮았던 곳이고 평소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던 곳인데 왜 가고 싶다는 신호가 왔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분명했습니다. 그날 후로 예배와 학생부 모임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믿음이 조금씩 차오르게 되었으니까요.
고등학생이 되어 시온에서 다른 학생들을 챙겨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은혜롭지 못한 모습만 보여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되면서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말과 행동에 각별히 주의하며 정성껏 형제님들을 챙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초반에는 성격을 못 이겨 금방 화를 내서 자책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상고하고, 수많은 하늘 자녀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조금씩 변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냄비 믿음이 또 발동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변화받자’ 다짐하다가도 머지않아 머릿속에서 잊혔습니다. 모임은 귀찮아졌고, 봉사도 학생들을 챙기는 직책도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하겠지’ 하고 미루는 제 모습은 구경꾼 같았습니다. 이런 제가 한심해서 자포자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천국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어릴 적부터 누누이 천국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온과 멀어져 방황할 때도, 친구들을 잃고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할 때도 이상하게 천국만은 잊히지 않고 가슴에 남아 있었습니다. 뜨거웠다 식었다를 반복하는 믿음일지라도 저에게 다시 찾아주신 천금보다 더 값진 천국의 축복을 허무하게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옥천고앤컴연수원에서 열린 교회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행사에 여러 번 가봤지만 그날 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을 받았습니다. 행사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뮤지컬을 통해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로만 안다고 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뜨겁게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 희생이 담긴 뮤지컬을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제가 믿음의 굴곡이 심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였습니다. 누구나 유혹을 뿌리치고 싶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지만, 저는 제 능력과 자신감만으로 스스로 믿음을 성장시키려 했습니다. 다짐이 금방 풀어지고, 금방 포기할 수밖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음을 계속 달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제 믿음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어떤 봉사를 하든 감사가 나오고 학생들을 챙기는 일이 기쁘기만 합니다. 성경 공부 모임이 없어도 학생들과 성경 공부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제 믿음은 여전히 냄비 같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냄비에 끊임없이 열을 가한다면 뚝배기보다 더 오래 열기를 유지하지 않을까요?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며 형제자매를 대하고, 그 사랑을 널리 전해서 식지 않는 뜨거운 믿음으로 천국을 소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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