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끊을 수 없고, 끊지 않아야 하는 끈

큰딸과 두 살 터울 아들을 키우고 있는, 우리 엄마 아빠. 두 분을 모시고 대담을 나눠본다.

1남 1녀를 둔 소감이 어떠신가요?

엄마(이하 엄): 잘 자랐다! 세상을 다 가졌다!
아빠(이하 빠): 모든 걸 다 이루었다!

엄마는 처음 임신했을 때 무엇이 힘들었나요?

엄: 입덧이 심해서 웩웩거리고, 좋아하는 고기도 못 먹은 것.

그때 아빠가 많이 도와줬나요?

빠: 도와줬지.
엄: Never.
빠: …맛있는 거 많이 사줬지. 그런데 엄마가 먹고 싶어 하지 않아서…. 미안해.

아빠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엄마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나요?

빠: 먹고 싶은 게 없다 하면 업고 다닐 거 같아.
엄: 업고 다닐 마음으로 지금 잘해요, 지금 업고 다녀.

저 낳을 때 아프지 않았어요?

엄: 엄마는 잘 낳았어. 많이 안 힘들었어.
빠: 키우는 게 힘들었지.

저를 처음 봤을 때 어땠나요?

엄: 생각이 잘 안 나.
나: 설마 잊어버렸어요?
엄: (웃음)
빠: 신기하고 좋았어. 길쭉길쭉하고.
엄: 손도 길~쭉, 다리도 길~쭉, 아기가 그냥 길~쭉. 살도 없고.
빠: 쭈글쭈글하고. 그런데 갓 태어난 너를 신생아실에서 따로 재운 일이 지금도 마음이 아파. 엄마가 너를 낳고 힘드니까 신생아실에서 따로 재웠거든. 그날 밤새 어떤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우리 애는 아니겠지 하고 잤어. 다음 날 물어보니까 네가 울었다더라고. 그래서 너를 데리고 와서 봤는데 기저귀에 변이 가득 차 있는 거야. 그 병원이 아기들을 잘 관리하지 못했나 봐. 우리 딸이 세상에 갓 나와서 혼자 밤새 힘들고 무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미안했어. 신생아실 맡기지 말고 그냥 데려와 재울걸.

저는 언제 가장 귀여웠어요?

빠: 하루하루 다 귀여웠어. 막 기어 다니는 게.
엄: 몸이 가벼워서 잘 뒤집었었지. 그런데 잘 안 먹어서, 먹는 걸로 엄마를 되게 성가시게 했다.

엄마 먼저 불렀어요, 아빠 먼저 불렀어요?

엄: 엄마 먼저 불렀지. 기분이 신기하고 정말 내 딸이구나 싶었어.

자식들 때문에 가슴 철렁했을 때는?

엄: 네가 네다섯 살 때인가, 장 보고 있는데 애가 없는 거야. 잃어버린 거지. 마침 어떤 아줌마가 애 혼자 사거리를 건너려 하니까 잡아줘서 찾았다. 한번은 이모네 음식 좀 갖다주려고 너한테 동생 잘 보고 있으라 하고 나갔는데, 네가 현관문 열어두고 엄마 따라 나와서 나중에 동생도 맨발로 밖에 나왔잖아. 그때 슈퍼 아저씨가 동생 붙잡아 줘서 다행이었지.
빠: 아빠는 네 동생이 놀이공원 가서 다쳤을 때. 난간을 잡고 올라가려다 떨어져서 날카로운 데 머리가 스쳐 피가 났어. 아빠가 잘 따라다녔어야 했는데. 가서 잡아줬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재밌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빠: 가족이랑 빙어 낚시를 갔는데, 네가 처음으로 고기를 낚은 거야. 그런데 들어 올린 고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네가 낚싯대로 막 고기를 때리니까 고기가 팔딱팔딱 뛰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엄청 웃겼지. 그리고 또 (물고기를) 잡더라.

딸이 자랑스러웠던 적은?

빠: 자율동아리 상 탔을 때. 주도적으로 뭔가를 개척해서 완수하고 좋은 결과를 얻어 인정받은 거니까.

딸에게 바라는 점은?

엄: 우리 딸은 정리 좀 잘했으면 좋겠어. 일찍 자고.
빠: 아빠도. 딸이 빨리 일어났으면 해. 생활이 불규칙해지고 시간에 쫓기게 되니까.

엄마는 엄마 하기 싫을 때 있어요?

엄: 맨날 하기 싫어. 엄마가 다 해주니까 딸 하고 싶어.(웃음)

우리 가족에게 바라는 점은?

빠: 시련이 오면 잘 극복했으면 좋겠어. 좋은 하루와 좋지 않은 하루는 반복돼. 좋은 날은 잘 지나가지만 시련은 극복하기 힘들 수 있어. 그때 잘 헤쳐가야지.

가족이란?

엄: 애물단지다. 버릴 수도 없고.(웃음)
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웃음) 운명 공동체다,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 미워할 수는 있어. 그래도 가족만큼은 서로 미워해서는 안 돼.
엄: 끊을 수 없는 실이야. 연결되어 있어서.
빠: 끊지 않아야 하는 끈이지.

누가 딸 바꾸자고 하면 바꿀 거예요?

엄: 백억 주면 바꿀 거야.(웃음)
나: 1조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엄: 그런가? 그럼 대기업 주면 바꿀래.
빠: 그걸 엄마한테 줄 일이 없으니 못 바꾸는 딸이네.


◆ 2탄. 이어진 아빠 인터뷰!

많은 아빠가 그렇듯 우리 아빠도 “아빠는 공부 잘했지. 친구들도 나를 잘 따랐어”라고 말한다. 딸인 나는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에게 학창 시절 이야기를 자세히 물었더니, 고2 때는 ‘강제 자율학습 폐지’ 시위에, 고3 때는 잘못된 교육방식에 대한 시위에 참가했다고! 학생들이 잘못된 사회 방침에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강제적으로 실시하던 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적으로 바뀌었고, 교육 방침도 개선됐다고 한다. 나와 같은 10대 시절에 행동으로 정의 구현에 앞장선 아빠.

지금 생각해도 시위를 할 것 같나요?

할 것 같아. 그런 일을 통해 정치,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깊이 생각하게 됐거든.

시위에 참여하는 게 무섭지는 않았어요?

무서웠지. 전경들이 대기하는 것을 봤을 때는 망설여지기도 했고. 또 수백 명 앞에서 마이크 잡고 말하는 것도 두렵고.

무서웠는데 왜 포기하지 않았어요?

신념이 생겨서. 신념이 무서운 거야. 독립운동도 신념으로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불이익을 당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지금은 쉽게 못할 것 같은데, 그때는 젊어서 물불 안 가릴 시기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학생들의 의견을 안 들어줄 수도 있었잖아요.

그 시절에는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간 거야. 되든 안 되든. 그때의 신념을 말하자면 정의였지.

내 눈에는 그냥 다정하고 잘생긴(!) 40대 아저씨지만, 40대에 이르기까지 내가 알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이 있었다. 정의라는 신념으로 세상에 대항하는 아빠라니.
아마 모든 아빠가 자식들이 모르는 진짜 영웅담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간과하지 마시라. 현재 내 눈에 보이는 아빠가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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