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예보가 끝나기 무섭게 가방을 대충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가방 좀 똑바로 메고 갈 수 없느냐는 엄마의 말은 잔소리로만 들렸습니다.
매일 등교하며 큰 가방으로 항상 가리고 다니던 것이 있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교복입니다. 특히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교복이 어찌나 싫었는지 모릅니다.
“엄마, 내 교복은 왜 이래요? 창피해서 못 입고 다니겠어요.”
“글쎄다, 엄마도 잘 모르겠네. 세탁을 잘한다고 하는데 왜 그러지?”
“그냥 세탁소에 맡기면 안 돼요?”
“엄마가 잘 빨아볼게. 미안해.”
엄마에게 수없이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저를 타이르셨죠.
간혹 친구들이 제 교복 치마를 보고 물었습니다.
“어? 네 치마 신기하다. 되게 반짝거려! 나도 그런지 좀 봐봐.”
“아, 티 많이 나?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왜 내 것만 그렇지? 휴….”
교복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졌습니다. 항상 밝고 자신감 넘쳤는데, 언젠가부터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행동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선생님께 혼나는 것을 감수하고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있기도 하고, 이동 수업이 없는 날에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일어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조금씩 마음과 생각의 크기가 커지면서, 스스로 교복 세탁을 하며 스스로 등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매주 교복을 손빨래하고 다리미질을 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번거로운 일을 정성으로 해주셨던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교복을 빳빳하게 다리기로 했습니다. 몇 분 동안 다리미의 온도가 높아지길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교복에 갖다 댔습니다. 다리미가 지나가는 순간, 교복이 반질거리는 것입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 교복이 반질거렸던 원인은, 매일 정성으로 교복을 다려주신 엄마의 손길이었다는 것을요. 제가 단정한 모습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챙겨주신 엄마의 사랑이 교복에 꾸준히 새겨진 것이었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단지 창피하다는 이유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고 죄송했습니다.
교복을 다려 입고 등교하기 전, 엄마 품에 안겨 말했습니다.
“그동안 괜한 일로 짜증 부려서 죄송해요.”
“우리 딸, 다 컸네?”
엄마는 제 등을 토닥여주시며 방긋 웃으셨습니다.
하늘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 위에 새겼다”는 말씀처럼 어머니는 항상 자녀들을 생각하십니다. 자녀의 아픔을 당신의 아픔보다 더 크게 여기시고, 오랜 시간 우리의 마음에 영원한 사랑을 새겨주셨지요. 엄마의 사랑으로 반짝이던 교복처럼, 어머니의 사랑이 제 마음속에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