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에요. 저는 마을 변두리에 있는 커다란 비둘기장에 사는 비둘기랍니다. 다른 새들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화려한 깃털도 없지만, 저에게는 사람들이 부탁한 편지를 전달하는 사명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전서구(傳書鳩)라고 불러요. 솔직히 말하면 정식 전서구는 아니에요. 아직 훈련만 받고 있으니까요.
저를 돌봐주시는 주인님은, 제가 엄마 아빠를 닮아 빠르고 길도 잘 찾는다고 칭찬하고는 하세요. 저희 엄마 아빠는 최고의 전서구였거든요. 저도 엄마 아빠의 뒤를 잇기 위해 멀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도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훈련 중이에요. 마을은 여전히 활기가 넘쳐요. 제가 나중에 모든 훈련을 잘 끝내면 마을 사람들의 편지를 원하는 곳으로 잘 전달할 수 있겠죠?
“구우구우, 안녕!”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얀색 비둘기 한 마리가 저를 향해 날개를 흔들고 인사하네요. 빨리 돌아가야 하지만 인사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안녕!”
“나는 여기 파란색 이층집 지붕 창고에 사는 비둘기야. 넌 날갯짓을 참 시원하게 하는구나. 너는 저기 전서구 비둘기장에 사는 비둘기 맞지?”
“응, 맞아. 근데 미안해. 지금 훈련 중이라 어서 돌아가야 해. 다음에 또 만나자.”
“그래? 그럼 내일 다시 여기서 보자.”
“어어… 그래.”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약속을 해버렸어요.
집에 돌아오자 주인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세요. 항상 제일 먼저 돌아오던 저였는데 늦게 돌아와서 그런가 봐요.
“어이구, 왜 그러지? 몸이 안 좋나?”

“아함, 잘 잤다!”
저는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 날개를 퍼덕였어요. 그런데 그만 제 소리에 옆자리 친구가 깨버렸어요.
“깜짝이야! 조용히 좀 일어나면 안되겠어?”
“미안, 미안. 다음부터는 조용히 일어날게.”
사실 저는 어제 만난 흰 비둘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거예요. 주인님이 일어나기 전에 얼른 만나고 돌아오려고요.
익숙한 비둘기장 냄새를 뒤로하고 마을을 향해 날개를 폈어요. 아침 공기가 참 상쾌해요.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에요. 사방이 고요해서 저의 날갯짓 소리만 하늘을 울리고 있어요.
어제 갔던 길을 더듬어 날아가자 파란색 지붕이 보였어요. 그 친구도 지붕에 나와 몸을 풀고 있네요.
“와, 안녕! 약속을 지키다니, 고마워. 다시 만나니까 정말 반갑다.”
“나도 반가워. 근데 너 참 부지런하다, 이 시간에 일어난 걸 보면.”
“아침 공기가 신선하고 좋잖아.”
“그나저나 왜 나를 만나자고 한 거야?”
“나는 여기서 매일 전서구들을 보고는 해. 그중에 네가 가장 잘 날고 눈에 띄더라고. 한번 인사하고 싶었지.”
잘 모르는 친구한테 칭찬을 들으니까 엄청 쑥스럽군요.
“고, 고마워. 나는 훌륭한 전서구가 되고 싶어. 그래서 마을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면서 열심히 훈련 중이야.”
“훈련을 항상 하나 봐?”
“응.”
“힘들지 않아?”
“힘들긴 해도,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러 다니는 전서구라면 해야 할 일이니까.”
“해야 할 일? 풋, 원래 ‘해야 할 일’이란 없어.”
“무슨 말이야?”
“비둘기는 편지나 전해주는 동물이 아니라고. 여기 비둘기들을 봐. 너희가 힘들게 훈련받고 있을 때 우린 항상 새로운 먹이를 먹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하루를 보내지. 자유롭고 환상적이지 않아?”
“어… 좋아 보여. 하지만 각자 역할이 있는 거야. 나는 나의 일에 만족해. 그리고 나에게는 항상 나를 돌봐주는 주인님도 있는걸.”
“네가 실력이 좋아서 너를 이용하려는 것뿐이겠지, 너는 빠르고 잘 나니까. 분명한 건, 너를 위해서는 아니라는 거야.”
뭐라고 말은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어요.
붕–
항해를 나가는 뱃고동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니 집집마다 창문에 불이 하나둘 켜지고 있어요. 벌써 마을이 기지개를 펴는 시간인가 봐요.
“그, 그만 갈게. 시간이 늦었어.”
“그래. 다음에 또 보자.”
저는 서둘러 집으로 날아갔어요. 주인님은 벌써 일어나셨네요. 저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세요.
“휴. 이 녀석, 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다녀온 거냐. 오늘은 좀 쉬어야 한다.”
저는 제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요. 비둘기장 밖 비둘기들은 자유로워 보였어요. 주인님이 돌봐주시는 건 사실이지만, 저는… 자유롭지 않아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