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결혼하시고 10년 만에 얻은 금쪽같은 첫 자식이었다. 그것도 할머니의 용모를 쏙 닮은, 예쁘고 귀한 딸. 게다가 가게도 운영하고, 큰 복숭아 밭도 가지신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에 엄마는 어려운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모르는 공주같이 자랐다.
다만 큰 괴로움이 하나 있다면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와 떨어져 친척 집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밤낮 쉼도 없이 일하셨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방학 때 종일 집에 있는 엄마와 외삼촌을 잘 돌봐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엄마는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떠난다는 자체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엄마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엄마의 행복한 일상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든든한 후원자,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엄마는 한두 밤만 자고 나면 외할머니가 돌아오실 줄 알았다. 하지만 열 밤이 지나도, 스무 밤이 지나도 외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로 엄마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집 근처 강에서 빨래를 하고, 어린 외삼촌을 돌보고, 일찍 일을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는 외할아버지를 챙겼다.
분명 엄마도 외할머니의 사랑을 더 받고 싶고,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안마를 해드리며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때부터 이미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빠도 계시고 엄마도 계시고 친구 같은 동생도 있고, 완벽한 가족 구성원을 둔 나로서는 엄마의 아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나에게 엄마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어릴 때의 엄마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 느껴졌다. 외할머니를 잃고 수십 번, 수백 번 통곡했을 엄마의 모습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엄마는 더 이상 엄마의 아픔을 다른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가슴속에 묻어둔 아픔들을 온전히 승화시켜 사랑으로 표출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루하루를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사랑을 베푼다. 내게는 그런 우리 엄마가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답다.
엄마는, 그 누구보다 엄마의 존재가 자녀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