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나와서 마음으로 들어간다. 말

「샘, 이거 쓰느라 ㅎㄷㄷ 햇어여 ㅈㅅ ㅅㄱ」
청소년들이라면,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세대를 자부하는 성인이라면 해독(?)이 가능합니다. 이 말이지요.
「선생님, 이거 쓰느라 후덜덜(떠는 모양을 나타낸 신조 의태어) 했어요. 죄송(해요), 수고(하세요).」
요즘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러한 통신 매체상에서는 빠른 시간에 글을 쓰려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 등장합니다. 복잡한 받침을 없애고, 소리 나는 대로 적고, 말을 줄여 쓰는 경우인데, 이것을 통신 언어 혹은 인터넷 언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위의 글은 통신 매체상의 글이 아닙니다. 한 대학생이 학교에 제출한 보고서에 버젓이 쓴 내용입니다. 문자 단순화 현상, 좀 더 강하게 말하면 언어 파괴 현상이 현재는 통신 공간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소통하는 수단, 언어

올해부터 한글날(10월 9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글날은 훈민정음 훈민정음(訓民正音): 한글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이름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진 훈민정음이었다. ‘한글’이라고 처음 이름 붙인 사람은 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이다. 양반들이 우리글을 ‘언문(상막을 적는 문자)’이라 낮춰 부르며 경시했기에, 그는 1910년 무렵부터 ‘크고 바르며 세상에 둘도 없는 글, 대한의 글’이라는 뜻으로 ‘한글’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즉 한글의 반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1443년(세종 25년)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한글은, 3년 동안의 시험 사용 기간을 거쳐 1446년 음력 9월 10일경(추정) 공식적으로 반포되었습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합쳐 24자입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ᄀ, ᄏ, ᄋ, ᄃ, ᄐ, ᄂ, ᄇ, ᄑ, ᄆ, ᄌ, ᄎ, ᄉ, ᅙ, ᄒ, ᄅ, ᅀ’ 등의 자음과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등의 모음으로 28자였습니다. 자음의 기본 글자 ‘ᆨ, ᆫ, ᆷ, ᆺ, ᆼ’은 입술에서 목구멍에 이르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모음의 기본 글자 ‘ㆍ, ㅡ, ㅣ’는 하늘의 둥근 모양, 땅의 평평한 모양,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각각 본떠서 만들었습니다. 일명 천지인(天地人)이라고 하지요.
한글이 매우 과학적인 문자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을 겁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 표음문자(말소리를 그대로 기호로 나타낸 문자)이고, 점 하나(ㆍ)와 작대기 두 개(ㅡ, ㅣ)의 간단한 모음 체계로 다양한 모음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한글은 쉽습니다. 24자만을 알면 대부분의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키보드나 휴대폰으로 한글을 입력할 때도 간편합니다.
무엇보다 한글의 놀라운 점은 창제자와 창제 목적이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로버트 램지 교수가 “서양의 알파벳은 수백 년 동안 여러 민족을 거쳐서 변형되고 개량되어 온 것이지만 한글은 ‘발명’된 것”이라고 극찬했을 정도지요. 그럼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요?

훈민정음 서문
오래전 우리나라는 중국의 말인 한자를 사용했는데, 한자는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서 일반 백성들은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할 수 없으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고발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세종대왕은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누구나 자기의 뜻을 펼치기를 바랐습니다.
언어는,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며 서로 소통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언어가 제 역할을 못하면 소통은 단절됩니다. 한 성군의 노력으로 다행히 오늘날의 우리는 쉽게 글을 배우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가로막는 벽, 언어

국립국어원은 중∙고등학생 4358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언어 실태에 관한 설문을 했습니다. 설문 결과 설문에 답한 청소년 100%가 은어를 사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은어(隱語)란,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청소년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은어의 상위 10위 안에는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하는, 모음을 생략한 단어가 8개나 됩니다. ㅅㄱ(수고), ㅈㅅ(죄송), ㄴㄴ(no no∙안 돼) 등등입니다. 통신 언어가 청소년들의 은어가 되어 평소 언어생활에까지 영역을 뻗친 것입니다.
실생활에서 자주 등장하는 통신 언어의 예를 몇 개 더 살펴보겠습니다.

•소리 나는 대로 적거나 틀린 표기를 그대로 쓰기:
시러(싫어), 마니(많이), 머시따(멋있다), 추카(축하)
•단어 줄이기:
멜(메일), 샘(선생님), 열공(열심히 공부),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한글 표기 해체하기:
ㅋㅋ(크크, 키키), ㅎㅎ(흐흐, 하하), ㄱㅅ(감사)

이전에는 단지 편하게 쓰기 위해 문자를 단순화했지만 최근에는 새롭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일부러 맞춤법에 어긋나게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덩말(정말), 안뇽(안녕), 이쁘당(예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어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새롭게 생긴 말, 또는 새말을 만들어내는 현상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청소년들이 만드는 말을 보면 오히려 창의적이고 개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무분별하게 사용할 때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사용했고, 친구들과 직접 만나는 것보다 인터넷 또는 휴대폰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것에 익숙하지요. 인터넷 공간에서 계속 통신 언어로 이야기하다 보니 현실 공간에서도 통신 언어가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올바른 표기는 왠지 어색하고 딱딱하고, 그러다 나중에는 올바른 표기가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넘겨버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컴퓨터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나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통신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언어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의미를 축약된 문자로 나타내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할 때도 짧게, 줄여서 이야기하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함축해서 전달한 말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면 무조건 ‘말이 안 통한다’고 간주하지요.
무분별한 은어 사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동이랍니다.

언어 폭력, 가장 큰 피해자는?

쌀밥을 넣은 밀폐통 두 개를 똑같은 환경에 둡니다. 그리고 한 쌀밥에는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한 쌀밥에는 “싫어, 짜증나”라는 말을 합니다. 한 달 뒤,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들은 쌀밥에는 뽀얀 누룩곰팡이가 피어 구수한 냄새가 났습니다. 반면 “싫어, 짜증나”라는 말을 들은 쌀밥에는 시커먼 푸른곰팡이가 피었고, 지독한 악취를 풍겼습니다.
언어의 힘을 알 수 있는 유명한 실험입니다. 단지 좋은 말과 나쁜 말만 들려줬을 뿐인데 차이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만약 그 쌀밥이 ‘나’라면 어떨까요? 또는 가족이나 친구라면요?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은어에는 욕설이나 비속어와 관련한 표현이 많습니다. 은어, 욕설을 빼고는 1분도 말하기 힘들 정도로, 일반적인 대화가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다고 합니다. 스스로 욕을 쓰고 있는지조차 모르지요.
기분이 나빠도 욕, 기분이 좋아도 욕, 친구와 싸워도 욕, 친구와 친해도 욕. 감정을 표현하는 대체 수단이 죄다 욕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언어 능력을 떨어뜨려 자신의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듭니다. 기분이 나빠도 왜 나쁜지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욕 한마디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욕설과 같은 막말은, 불안과 공격성의 감정을 주관하는 뇌의 변연계에 자극을 줍니다. 그래서 막말을 들으면 심장이 빨라지고 이성이 마비되어서 물리적인 공격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교내 폭력이 거의 사소한 말싸움에서 시작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계속 욕설과 같은 공격적인 언어 표현을 사용한다면, 타격을 입은 상대방도 나를 공격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물리적인 공격은 몸에 상처를 입히지만 언어의 공격은 인간의 내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깁니다. 일종의 폭력입니다. 나의 귀는 내가 하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결국 나도 언어 폭력의 피해자입니다.

말이 곧 마음이다

언어 습관은 감정 조절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말이 거칠어지고, 말이 거칠어지면 행동이 거칠어집니다. 이성적인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즉흥적인 청소년기에는 친구들뿐 아니라 가족, 교사들과 자주 대화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평소에 사용하는, 짧고 재미있는 어휘도 좋지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 보세요. 어느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이, 나의 마음을 가장 쉽고 빠르게 전달하는 방법이랍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옵니다(마태복음 12장 34절). 그리고 입으로 나온 말은 다시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아름답고 좋은 말을 할수록 생각도, 마음도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밝아지지요.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계십니다. 이제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참조: 국립국어원 〈청소년 언어실태 언어의식 전국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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