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 베개

오늘도 거실 소파 위에서 선잠이 들었다. 우리 집 소파는 일반 소파에 돌침대를 이어 붙인, 우리 가족이 손수 개조한 소파다. 추운 겨울에 이 돌침대 쪽에 누워 불을 올리고 이불을 덮으면 잠이 쏟아진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피곤하면 누구나 소파에서 잠이 든다.
“희원아, 최희원! 얼른 일어나, 들어가서 자.”
가족들과 TV를 보면서 소파에 몸을 뉘고 있자니 따뜻해서 얼핏 잠이 든 모양이었다. 등허리를 때리는 언니의 손에 나는 잠을 깼다. 상냥한 목소리였지만 내 잠을 깨우는 언니가 미워서 잠꼬대인 척 신경질을 냈다.
“저리 가! 으으으, 졸려. 잘 거야! 가!”
“들어가서 자라니까 왜 여기서 잠을 자.”
아빠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의 숙면을 방해하는 아빠와 언니, 둘 다 미웠다. 한참 달콤하게 잘 자고 있었는데.
“깨우지 마! 잘 거야!”
짜증을 내고 이불을 올려 얼굴을 감춰버렸다. 어느새 잠도 확 달아났다. 언니나 아빠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화가 났다. 아빠가 또다시 나를 깨웠다.
“몰라! 난 잘 거야. 절대 안 일어나!”
이상한 오기가 생겨 이불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더 이상 대꾸도 안 할 참이었다. 그때였다.
“아빠, 그냥 둬. 여기 따뜻하잖아. 얘 자기 방 추워서 이불 두 겹씩 덮고 잔대. 그냥 여기서 자는 게 덜 추울걸.”
“그래? 그럼 여기서 자게 해야겠다.”
언니의 말에 기분이 얼떨떨했다.
‘어라, 안 깨우네? 근데 내가 이불 두 겹 덮고 자는 건 어떻게 알았지? 아, 맞다. 내가 말했었지.’
며칠 전, 언니가 아침잠 많은 나를 깨우러 왔다가 이불 두 장을 덮고 자는 걸 보고 왜 그렇게 자냐고 물었었다. 잠결에 “추워서 두 겹 덮어야 돼. 안 그럼 자다 깨” 하고 대강 대답했다. 말한 나도 까맣게 잊었던 말을 언니는 머릿속에 담아뒀던 것이다.
고집만 세서 미안해할 줄 모르는 내 가슴에 순간 ‘미안함’이 피어올랐다. 거실에서 자는 내가 걱정돼서 방으로 가서 자라고 한다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내 잠을 깨웠다고 소리 지르고, 짜증을 부렸으니….
“이불 제대로 덮어주고. 얘, 뭐 베고 자야 할 텐데.”
“내가 가져올게.”
아빠와 언니는 내가 잠든 자리를 봐주고 있었다. 계속 잠든 척을 하는 내 몸 위에, 아빠가 이불을 하나 깨끗하게 펴서 덮어주었다. 머리맡에는 언니가 가져온 베개가 놓였다.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방금까지 짜증을 낸 내가 뭐가 예쁘다고…. 아빠도 그렇지만 내가 추울까 걱정해 주고 싫은 소리 없이 베개까지 괴어주는 언니에게 정말 미안했다.
내가 언니였다면 “아, 몰라. 여기서 잔다니까 자게 둬”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을 것이다. 사춘기인 언니이지만 그래도 언니는 여전히 ‘언니’다. 늘 미운 소리만 골라 하는 동생이라도 기분 나쁜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챙겨주는, 머릿속에 ‘동생’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는 우리 언니. 그런 언니를 헤아리지 못하는 내가 동생인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차마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이 마음은 꼭 전하고 싶다.
“아빠, 엄마. 그리고 언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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