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월요일 아침, 뭔가 불안했다. 눈뜨고 바로 메시지함을 확인했으나 어느 누구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유진이도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기만 하고 답장하지 않았다. 소하에 대해 다른 의견을 말해서 기분이 상한 걸까. 그래도 전부터 소하를 인신공격하는 게 싫었다. 이참에 소하를 이유 없이 미워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잘 말할지는 모르겠지만.생각은 무한 도돌이표가 되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은 화단에 소하와 지우가 없었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세 친구를 찾았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 자리로 가서 가방을 책상 옆에 걸다가 지우, 소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린 듯 둘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매일 아침 저들과 만나면 즐거웠는데 오늘은 웃으며 인사할 기분이 아니라 힘없이 손 인사만 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리고 세 친구가 들어왔다. 지영이는 나를 향해 비소를 날리며 은채에게 속닥댔고, 유진이는 나와 눈이 마주쳤으면서 어떤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로 갔다. 나는 이 교실에서 다시 혼자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셋은 쉬는 시간이 되면 사라졌다가 수업 시간이 되기 직전에 교실로 돌아왔다. 오해를 풀어야겠다 싶어 다음 쉬는 시간에 셋을 따라갔으나 놓치고 말았다. 분명히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화장실에 들어온 김에 볼일을 보려고 화장실 칸에 들어갔다. 그 순간 지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아까 정은지가 은따들이랑 인사하는 거 진짜 어이없지 않냐?”
“내 말이. 친구 없는 게 불쌍해서 끼워줬더니 은혜를 이렇게 갚네? 완전 배신감 느껴. 안 그래, 유진아?”
“애초에 우리랑 놀 레벨이 아니었어. 이제라도 잘 됐지.”
“크크, 정은지 걔도 진짜 노답이야. 말하는 것도 우리랑 완전 안 맞고, 그동안 진짜 힘들었어. 앞으로 완전 무시하자.”
“정은지도 욕할 거 진짜 많아. 나는 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맘에 드는 게 없었어. 특히 그 애매한 치마 길이. 같이 다니기 창피했다고.”
손이 덜덜 떨려왔다.
“뭘 해도 애매한 애들 있잖아.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애들 말이야. 걔가 딱 그래.”
그나마 친하다고 느낀 유진이의 마지막 말은 마음에 비수로 날아와 꽂혔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 아이들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든 그 아이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유행에 뒤처지는 애로 보일까 봐 교복 치마도 줄여 입었고, 단체 채팅방에서 내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화제를 돌리는 일이 여러 번 있어도 화를 내본 적이 없다. 그저 무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애초부터 그 세계에 내 자리는 없었기 때문에.
#5
일주일 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이유 없이 잠만 쏟아졌다. 부모님은 내가 몸살인 줄 알고 걱정했다. 나는 잠에 빠져 정신이 없는 중에도 의식의 깊은 바닥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잠을 핑계로 현실에서 도망치는 중이라는 것을.“은지야, 은지야! 일어나 봐. 친구 왔다.”
친구라는 말은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데 충분한 자극이었다. 벌떡 일어나 엄마한테 물었다.
“친구? 방금 친구라고 했어요?”
“응, 너 몸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이제 괜찮으니까 들어오라고 했어. 거실에 나가 봐.”
‘누가 친구라고 집까지 찾아온 거지? 설마… 유진인가? 그날 들은 이야기는 모른 척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지낼까?’
이렇게라도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내 자신이 서글퍼지려는 그때, 방문을 여니 뜻밖의 인물들이 내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안녕, 은지야! 몸은 괜찮아? 너… 푸풉!”
“푸하하! 은지 너 몰골이 왜 그래?”
거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일주일 동안 씻지도 않고 잠만 잤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엄마에게 떠밀려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왔다. 지우랑 소하가 갑자기 왜 찾아온 거지?
지우는 내 컨디션이 괜찮다면 보여줄 게 있다고 같이 나가자고 했다. 삼십 분 남짓 걸으며 “씻어서 개운하냐”, “그동안 어디가 그렇게 아팠던 거냐” 등등 지우와 소하는 계속 조잘조잘 말을 걸어왔다. 현실 세계에서 도망치는 중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둘과의 대화에 정신이 맑아졌다.
“자, 얘들아. 짜잔!”
도착지는 동네 뒷산 정자였다. 그리고 정자 난간에 망원경이 있었다.

“저렇게 작은 별들을 보고 있으면 저 별보다도 작은 지구에서의 일은 별것 아니라고 느끼게 돼. 그래서 언젠가 너희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우리 셋은 뭔가 다 상처를 가진 것 같았거든. 하하.”
“….”
지우는 대답 없는 나를 보고는 겸연쩍은지 뒷머리를 긁으며 화제를 돌렸다.
“은지야, 저기 밝게 빛나는 별 보여?”
“저 국자 모양 별자리 옆에?”
“응! 그게 북극성이야. 봄이나 여름에는 네가 말한 북두칠성 별자리로 쉽게 북극성을 찾을 수 있어. 어때, 예쁘지?”
“나도, 나도!”
소하에게 망원경을 양보하고 다시 본 밤하늘에는 북극성이 정말 환하게 빛을 냈다. 지우가 말을 이었다.
“가만 보면 별들마다 빛의 정도가 다 달라. 환하게 빛나기도 하고, 덜 빛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덜 빛나는 별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야. 그리고 밝게 빛나는 별들도 모두 주위 별들과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아? 있는 그대로,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해.”
난데없이 울음이 터졌다.
“으… 엉엉! 너네도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떠돌이라고 생각해? 나는 왜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거야! 엉엉!”
둘은 당황하더니, 소하의 훌쩍임을 시작으로 지우까지 대성통곡하며 펑펑 울었다.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쳤다. 그리고 함께 울어주는 이 둘이 너무 고마웠다. 소하와 지우는 나를 중심에 두고 안아줬다. 마치 한 별을 중심에 두고 다른 별들이 감싸고 또 감싸서 결국은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모인 은하계처럼.
#6
어느덧 바람이 선선해졌다. 소하가 우리를 화단으로 이끌었다. 화단에는 소하가 예쁜 말을 들려주던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얘들아, 코스모스가 우주를 뜻한다는 거 알아?”
우리 중 가장 아는 것이 많은 지우가 말했다.
“아니야. 꽃 코스모스는 우주가 아니라 ‘장식하다’라는 의미야.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이름이지.”
“오, 우리 소하. 요즘 더 똑똑해졌어.”
소하는 배시시 웃다가 땅에 떨어진 코스모스를 주웠다.
“코스모스 가운데를 ‘관상화’라고 해. 이 부분이 코스모스의 진짜 꽃이야. 꼭 별 같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하의 말대로 무수히 많은 별이 모여 있었다. 수많은 별을 품은 하나의 우주처럼.
얼마 전까지 우주 공간에 나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는 진짜 친구들이 내 옆자리를 채우고 있다. 별로 가득한 코스모스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친구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