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1남 5녀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아빠는 열 살 때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은 시기에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고추밭 일을 시작으로 풀을 베어 소여물을 만들고, 모내기까지 했습니다. 사춘기 시절에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아빠의 아빠)를 따라 산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장작을 팼습니다. 동생들과 놀아주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학창 시절은 학교 다니기, 부모님 도와드리기가 전부였습니다.
아빠가 스무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빠는 도로 포장, 터널 공사 등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동생들에게 당시 유행하던 카세트를 선물하며 가장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타지에서 직장 생활 하면서도 주말마다 본가에 내려와 할머니(아빠의 엄마)를 도왔습니다. 심지어 군대에서 교육 우수자로 4박 5일 포상 휴가를 나왔을 때도 논에서 모내기를 했습니다. 홀로 계신 할머니를 도우려는 주말 시골행은,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가족에게 청춘을 바친 아빠는 다시 우리 가족을 위해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빠의 인생에 아빠는 없습니다.
저는 편안하고 풍족하게 학생의 시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사는지도 모르고, 제 삶에 만족하지도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헌신하기만 하는 아빠에게 감사했습니다. 저도 아빠처럼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딸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